'아들 우선'도 역사 속으로...남녀평등에 한발짝 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1일 민법상 제사 주재자 선정의 '아들 우선' 원칙을 폐기함에 따라, 한국 법 체계와 그 해석 속에 남아 있던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남녀 차별이 또 하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유족 간에 벌어진 유해 인도 소송 상고심에서 "제사 주재자는 공동상속인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망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민법 제1008조의3은 제사의 주재자가 분묘에 속한 임야와 묘토, 제구 등을 승계하도록 한다. 유해나 분묘의 관리 의무와 함께 관련 재산에 대한 권리도 부여한 것이다.

유족 간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장남·장손자 등 남성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한 2008년 전합 판례가 15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대법원이 이날 새롭게 수립한 판례에 따라 이제 여성 상속인도 남성과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갖는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대법원은 옛 판례를 두고 "여성 상속인은 망인에게 아들·손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배제되고 성별로 인해 남성 상속인보다 열위에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남성 상속인이 제사 주재자의 지위에 따른 의무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적장자 중심의 종법(宗法) 사상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과거 전원합의체 판결을 계속 고수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법부는 그동안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와 법 체계의 안정성이라는 양 측면을 고려해 느리지만 꾸준하게 뿌리 깊게 박혀 작동해 온 가부장제의 벽을 허물어 왔다.

사법부의 '결단'으로 옛 유교 관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종중 제도에서 남녀평등에 반하는 부분의 효력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가족'의 개념도 다양화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5년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관습법이 "남녀평등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여성도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여성 종중원에게 소집 통지를 하지 않고 개최되거나 종중 재산을 성별에 따라 달리 배분하는 내용의 종중 총회 결의를 무효로 판결해 차별적 관습에 제동을 걸었다.

어머니의 성씨와 본관을 따르게 된 사람은 어머니 쪽 종중의 구성원이 된다는 명시적 판단도 작년 6월 나왔다. 당시 대법원은 "모계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관습도 법적 규범으로서 효력을 가진 관습법으로 남아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05년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것"이라며 부계혈통주의의 근간이던 호주제를 폐지해 큰 획을 그었다.

다양성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대 사회의 양상에 맞게 이른바 '정상 가족'에서 제외된 이들을 위한 법적 공간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2020년 아동의 '출생 등록권'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미혼부가 딸의 출생 신고를 받아달라며 낸 신청 사건에서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는 법률로써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라며 그의 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올해 3월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위헌 판단을 내렸다.

외손자의 입양을 허용한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 동성 사실혼 배우자의 건강보험법상 피부양 자격을 인정한 올해 2월 서울고법 판결도 있다.

이날 유해인도 사건 판결을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어떤 가족제도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며 "전통이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 현대적 의미로 포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한지희기자 jh198882@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