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좋아서 15년간 주식 사모았더니…퇴직 후 '충격'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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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레전드의 귀환
(3) ‘배터리 독립’의 꿈
테슬라, 배터리 업체와의 ‘투쟁과 연대’ 20년
초기 LG화학 “불나면 끝장, 당장 배터리 빼라”
'2인자' 스트라우벨, 설득 끝에 전용공장 건설
"15년 바친 테슬라, 내 꿈이자 가족만큼 소중"
돈만 생기면 주식매입… 현 지분가치 8600억
(3) ‘배터리 독립’의 꿈
테슬라, 배터리 업체와의 ‘투쟁과 연대’ 20년
초기 LG화학 “불나면 끝장, 당장 배터리 빼라”
'2인자' 스트라우벨, 설득 끝에 전용공장 건설
"15년 바친 테슬라, 내 꿈이자 가족만큼 소중"
돈만 생기면 주식매입… 현 지분가치 8600억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우리 회사 배터리 다 빼요!”
2005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슬라모터스 본사. 전기차 시제품 개발에 한창이던 이 스타트업에 한 통의 서한이 날아들었습니다. 발신처는 한국의 배터리 제조업체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귀사의 실험은 화재 위험성이 높다. 우리 회사는 이에 연루되고 싶지 않다. 구매한 배터리셀을 반환해달라’ 당시 테슬라는 전기차 배터리팩을 만들기 위해 LG화학으로부터 약 7000개의 배터리셀을 확보했습니다(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힘들게 배터리를 구한 테슬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2차전지 업계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2004~2005년 애플은 이 문제로 LG화학 배터리를 쓰는 맥북을 15만대 이상 리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도 안 된 미국 스타트업이 자사 배터리로 전기차를 만든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난 겁니다.
2003년 설립한 테슬라는 21세기 전기차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입니다. 테슬라의 지난 20년은 배터리 업체와의 투쟁과 연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과업을 진두지휘한 이가 있습니다. ‘테슬라의 영혼이자 2인자’로 불렸던 JB 스트라우벨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입니다. 2019년 회사를 떠난 그는 오는 17일 테슬라 연례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입사 초기 스트라우벨은 테슬라의 첫 모델인 2인승 스포츠카 ‘로드스터’의 파워트레인과 배터리팩 개발을 맡았습니다. 그는 기존 자동차를 전기차로 재탄생시키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로드스터와 준대형 세단 ‘모델S’ 시제품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 전문가는 아니었습니다.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가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대기업 출신 엔지니어들이 속속 테슬라에 합류합니다.
스탠퍼드대 출신이 주축이었던 스트라우벨팀은 자연스레 배터리 부문을 맡게 됩니다. 그의 팀은 거듭된 연구를 통해 배터리셀 수천 개를 화재 없이 다룰 수 있는 열관리 기술을 터득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팩을 만들 기술은 있었지만, 문제는 배터리셀의 수급이었습니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화재 등으로 법적 소송에 휘말릴지 모른다며 전기차 스타트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미스터 스트라우벨? 오사카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대안으로 꼽았던 일본의 산요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기술 설명 프레젠테이션에서 배터리 열폭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이 방면에 자타공인 최고의 전문가였습니다. 산요 경영진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007년 기어이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합니다.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밤. 장기간 집을 비운 바람에 전기마저 끊겼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식 썩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어두운 집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3년간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전기차 개발에 매달렸고, 해외 출장을 밥 먹듯 다녔습니다.
머스크는 까다로운 보스였지만, 열정적인 동료와 후배들이 스트라우벨의 곁에 있었습니다. “테슬라는 내게 꿈이자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돈이 생기면 무조건 테슬라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헛바퀴를 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무수히 망해나간 벤처들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테슬라가 성공할 수 있을까?”
모델S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자 머스크는 더 큰 계획을 세웁니다. 2010년 프리몬트에 있는 제너럴모터스(GM)-도요타의 옛 공장을 인수했습니다. 연간 5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큰 공장이었습니다. 머스크는 이곳에서 전기차 5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선언합니다. 테슬라는 50만대는커녕 5만대도 생산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정도 규모의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높은 배터리 가격도 걸림돌이었습니다.
머스크는 스트라우벨을 불러 이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전기차 50만대에 들어갈 배터리는 전 세계 생산량과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엔 그 누구도 전기차가 현재처럼 대세가 될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조금 잠식할 수준으로 봤습니다.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라는 압박에 파나소닉을 포함한 배터리 제조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남자는 결국 테슬라 전용 배터리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JB, 자네가 배터리 공장을 맡아주게”
테슬라 내부에선 차세대 전기차인 모델X와 모델3 개발 자금도 턱없이 부족한데 공장까지 짓는다는 계획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스트라우벨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공장 한쪽에 파나소닉이 배터리 생산을 하고, 반대편에선 테슬라가 배터리팩을 조립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최초의 ‘기가 팩토리’ 청사진이었습니다.
그는 파나소닉에 공장 부지를 먼저 보여주고 투자를 설득할 계획이었습니다. 파나소닉이 손을 잡든 말든 테슬라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8만㎡(약 5만4000평) 넓이의 대규모 땅이 정비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비용만 200만달러(약 26억원). ‘스탠퍼드 공돌이’는 어느새 배짱 두둑한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부지를 본 파나소닉 임원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달릴 줄 알았던 테슬라가 독자적으로 배터리 공장을 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든 겁니다. 몇 주 뒤 스트라우벨은 머스크와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해 7월 테슬라와 파나소닉의 네바다 기가 팩토리 건립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두 남자는 기가 네바다의 건립과 운영 과정에서 사이가 점차 소원해졌습니다. 특히 2018년경 머스크는 모델3 생산 지연 등의 여파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 때보다 고압적인 태도로 직원들을 대했고, 이는 스트라우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머스크는 완벽에 가까운 배터리 품질을 요구했습니다.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스트라우벨도 거듭된 머스크의 압박에 ‘번아웃’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는 애초에 꿈꿨던 모든 것을 이뤄냈습니다. 전기차는 전 세계 미래를 선도하는 주요 산업이 됐습니다. 테슬라 전용 배터리 공장도 일궈냈습니다. 남들은 상상도 못 할 막대한 부(富)도 따라왔습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스트라우벨이 테슬라를 떠난 후에도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면 2021년 11월 기준 지분가치는 13억달러(약 1조7270억원)였습니다. 당시 대비 주가가 반토막 난 현재 기준으로도 6억5000만달러(약 8630억원)에 달합니다.
이제 테슬라는 더 이상 스타트업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운영 등의 업무는 스트라우벨이 원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15년 전 스탠퍼드 후배들을 집에 불러 밤새 전기차 얘기를 나누던 ‘맏형’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벤처에 대한 꿈이 남아 있었습니다. 떠나야 할 때였습니다. 머스크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떠난 ‘창업 동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머스크가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기가 팩토리의 성공을 거론하기 위해 스트라우벨을 불렀습니다. “십수 년 전 한 식사 자리에서 운명적으로 JB를 만났습니다. 그때 좋은 대화를 나눴죠” “솔직히 일이 이 정도로 잘 풀릴 줄은 몰랐어요, 일론” 스트라우벨이 화답했습니다. “무조건 실패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시금 오랜 동지의 퇴사가 떠올랐던 걸까요. 머스크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습니다.(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잖아요” 스트라우벨은 머스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성공 가능성은 사실 10%, 아니 1%도 장담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이제 어디서나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2005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슬라모터스 본사. 전기차 시제품 개발에 한창이던 이 스타트업에 한 통의 서한이 날아들었습니다. 발신처는 한국의 배터리 제조업체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귀사의 실험은 화재 위험성이 높다. 우리 회사는 이에 연루되고 싶지 않다. 구매한 배터리셀을 반환해달라’ 당시 테슬라는 전기차 배터리팩을 만들기 위해 LG화학으로부터 약 7000개의 배터리셀을 확보했습니다(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힘들게 배터리를 구한 테슬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2차전지 업계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2004~2005년 애플은 이 문제로 LG화학 배터리를 쓰는 맥북을 15만대 이상 리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도 안 된 미국 스타트업이 자사 배터리로 전기차를 만든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난 겁니다.
2003년 설립한 테슬라는 21세기 전기차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입니다. 테슬라의 지난 20년은 배터리 업체와의 투쟁과 연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과업을 진두지휘한 이가 있습니다. ‘테슬라의 영혼이자 2인자’로 불렸던 JB 스트라우벨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입니다. 2019년 회사를 떠난 그는 오는 17일 테슬라 연례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배터리맨’ 비긴즈
스트라우벨은 1975년생으로 스탠퍼드 공대 석사 출신입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전기 골프 카트를 분해하고 배터리 실험을 했습니다. 대학에선 태양광 전기자동차 연구팀에서 활약합니다. 2004년 전도유망한 사업가 일론 머스크의 권유로 테슬라에 합류합니다.입사 초기 스트라우벨은 테슬라의 첫 모델인 2인승 스포츠카 ‘로드스터’의 파워트레인과 배터리팩 개발을 맡았습니다. 그는 기존 자동차를 전기차로 재탄생시키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로드스터와 준대형 세단 ‘모델S’ 시제품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 전문가는 아니었습니다.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가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대기업 출신 엔지니어들이 속속 테슬라에 합류합니다.
스탠퍼드대 출신이 주축이었던 스트라우벨팀은 자연스레 배터리 부문을 맡게 됩니다. 그의 팀은 거듭된 연구를 통해 배터리셀 수천 개를 화재 없이 다룰 수 있는 열관리 기술을 터득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팩을 만들 기술은 있었지만, 문제는 배터리셀의 수급이었습니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화재 등으로 법적 소송에 휘말릴지 모른다며 전기차 스타트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테슬라가 성공할 수 있을까?”
이때부터 스트라우벨은 중국과 일본을 돌며 2차전지 업체들을 만나 배터리 공급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전기차 연구만 하던 ‘공돌이’에게 영업은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일본의 파나소닉. 수 개월간 확답을 주지 않던 그들은 결국 판매할 의향이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테슬라는 자금과 시간 부족에 허덕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습니다.“미스터 스트라우벨? 오사카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대안으로 꼽았던 일본의 산요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기술 설명 프레젠테이션에서 배터리 열폭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이 방면에 자타공인 최고의 전문가였습니다. 산요 경영진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007년 기어이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합니다.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밤. 장기간 집을 비운 바람에 전기마저 끊겼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식 썩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어두운 집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3년간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전기차 개발에 매달렸고, 해외 출장을 밥 먹듯 다녔습니다.
머스크는 까다로운 보스였지만, 열정적인 동료와 후배들이 스트라우벨의 곁에 있었습니다. “테슬라는 내게 꿈이자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돈이 생기면 무조건 테슬라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헛바퀴를 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무수히 망해나간 벤처들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테슬라가 성공할 수 있을까?”
‘야망남’들의 기가 팩토리
2009년 파나소닉이 산요를 인수합니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2년 전 문전 박대했던 스타트업은 모델S 시제품을 공개하며 일약 실리콘밸리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배터리셀 공급과 함께 3000만달러(약 399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합니다.모델S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자 머스크는 더 큰 계획을 세웁니다. 2010년 프리몬트에 있는 제너럴모터스(GM)-도요타의 옛 공장을 인수했습니다. 연간 5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큰 공장이었습니다. 머스크는 이곳에서 전기차 5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선언합니다. 테슬라는 50만대는커녕 5만대도 생산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정도 규모의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높은 배터리 가격도 걸림돌이었습니다.
머스크는 스트라우벨을 불러 이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전기차 50만대에 들어갈 배터리는 전 세계 생산량과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엔 그 누구도 전기차가 현재처럼 대세가 될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조금 잠식할 수준으로 봤습니다.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라는 압박에 파나소닉을 포함한 배터리 제조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남자는 결국 테슬라 전용 배터리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JB, 자네가 배터리 공장을 맡아주게”
테슬라 내부에선 차세대 전기차인 모델X와 모델3 개발 자금도 턱없이 부족한데 공장까지 짓는다는 계획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스트라우벨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공장 한쪽에 파나소닉이 배터리 생산을 하고, 반대편에선 테슬라가 배터리팩을 조립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최초의 ‘기가 팩토리’ 청사진이었습니다.
“일단 불도저부터 불러요”
2014년 테슬라는 프리몬트 공장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의 네바다주에 기가 팩토리를 짓기로 결정합니다. 대략 160억달러(약 21조원)의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은 파나소닉이 합류할지 여부였습니다. 파나소닉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습니다. 그들은 테슬라 같은 작은 회사가 이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회사의 명운이 달린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공장 부지부터 사들이고 불도저와 건축 장비 몽땅 부르게”그는 파나소닉에 공장 부지를 먼저 보여주고 투자를 설득할 계획이었습니다. 파나소닉이 손을 잡든 말든 테슬라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8만㎡(약 5만4000평) 넓이의 대규모 땅이 정비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비용만 200만달러(약 26억원). ‘스탠퍼드 공돌이’는 어느새 배짱 두둑한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부지를 본 파나소닉 임원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달릴 줄 알았던 테슬라가 독자적으로 배터리 공장을 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든 겁니다. 몇 주 뒤 스트라우벨은 머스크와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해 7월 테슬라와 파나소닉의 네바다 기가 팩토리 건립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결별의 순간… 머스크 “잠시 기다려주게”
2019년 6월 연례 주주총회. 무대 뒤의 머스크는 초조했습니다. 이날 그는 한 가지 중대한 발표를 해야 했습니다. 15년의 세월을 테슬라에 헌신한 스트라우벨의 퇴사가 그것이었습니다. 행사 직전 머스크는 결국 마음을 바꿨습니다. “JB, 오늘은 그런 발표를 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조금만 더 기다려주게”두 남자는 기가 네바다의 건립과 운영 과정에서 사이가 점차 소원해졌습니다. 특히 2018년경 머스크는 모델3 생산 지연 등의 여파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 때보다 고압적인 태도로 직원들을 대했고, 이는 스트라우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머스크는 완벽에 가까운 배터리 품질을 요구했습니다.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스트라우벨도 거듭된 머스크의 압박에 ‘번아웃’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는 애초에 꿈꿨던 모든 것을 이뤄냈습니다. 전기차는 전 세계 미래를 선도하는 주요 산업이 됐습니다. 테슬라 전용 배터리 공장도 일궈냈습니다. 남들은 상상도 못 할 막대한 부(富)도 따라왔습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스트라우벨이 테슬라를 떠난 후에도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면 2021년 11월 기준 지분가치는 13억달러(약 1조7270억원)였습니다. 당시 대비 주가가 반토막 난 현재 기준으로도 6억5000만달러(약 8630억원)에 달합니다.
이제 테슬라는 더 이상 스타트업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운영 등의 업무는 스트라우벨이 원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15년 전 스탠퍼드 후배들을 집에 불러 밤새 전기차 얘기를 나누던 ‘맏형’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벤처에 대한 꿈이 남아 있었습니다. 떠나야 할 때였습니다. 머스크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떠난 ‘창업 동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머스크가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기가 팩토리의 성공을 거론하기 위해 스트라우벨을 불렀습니다. “십수 년 전 한 식사 자리에서 운명적으로 JB를 만났습니다. 그때 좋은 대화를 나눴죠” “솔직히 일이 이 정도로 잘 풀릴 줄은 몰랐어요, 일론” 스트라우벨이 화답했습니다. “무조건 실패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시금 오랜 동지의 퇴사가 떠올랐던 걸까요. 머스크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습니다.(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잖아요” 스트라우벨은 머스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성공 가능성은 사실 10%, 아니 1%도 장담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이제 어디서나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