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히틀러·스탈린·대처 등 20세기 주요 정치인 12명 사례 연구서
시대를 만들고 파괴한 개성…신간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강한 카리스마를 앞세운 전·현직 통치자들이다.

이른바 '스트롱맨' 혹은 '강력한 지도자'가 주목받은 것은 이들이 역사의 분기점에서 극적인 변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의 개성은 시대의 흐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혹은 상황이 우연히도 이들이 힘을 발휘하는 데 적합했던 것은 아닐까.

히틀러 연구로 저명한 영국 역사학자 이언 커쇼는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에서 위기 상황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 20세기 유럽 정치인 12명의 사례를 통해 답변을 모색한다.

레닌,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처칠, 드골, 아데나워, 프랑코, 티토, 대처, 고르바초프, 콜 등 현대 유럽을 만들거나 파괴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의 행적을 그의 성격과 결부해 고찰한다.

시대를 만들고 파괴한 개성…신간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20세기를 만든 으뜸 인물로 레닌을 꼽았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때 레닌을 가까이서 본 미국 기자 존 리드는 '땅딸막하고 대머리인 데다가 눈은 작고 튀어나왔다.

들창코이고 입은 크고 아래턱이 뭉툭하다'고 표현했다.

그런 레닌이 "동시대의 어떤 인물보다도 역사에 큰 충격"을 준 지도자가 된 것은 뛰어난 지적 능력과 정치적·조직적 수완 덕분이다.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가였고, 강하고 영민한 토론자였으며,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설파한 훌륭한 해설자였다는 것이다.

레닌은 마비를 동반하는 심한 두통, 불면증, 졸도를 일으키는 신경과민, 위장장애, 극도의 피로감 등 평생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

집권 후 6년을 못 채우고 만 53세로 생을 마감했고 그마저도 사망 전 15개월 동안은 뇌졸중 발작이 반복돼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저자는 레닌 스스로 이른 죽음을 예감했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혁명의 완성을 서둘렀을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레닌이 없었으면 혁명은 불가능했을까.

저자는 "혁명이 러시아와 유럽을 바꾸어 놓은 방식은 레닌의 리더십을 제외하면 상상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히틀러는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유해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히틀러가 20세기를 특징짓는 양대 사건인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주저자'(主著者)라고 규정했다.

시대를 만들고 파괴한 개성…신간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이들 사건을 히틀러 한 명의 행위로 축소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히틀러의 중심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의미다.

그의 개성은 고비마다 역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유대인을 절멸하려는 집요한 시도가 정치적 동기의 핵심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대량 학살에서 히틀러의 승인은 핵심 요소였고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였다.

히틀러가 있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셈이다.

2차 대전이 외부의 강력한 힘, 즉 독일을 철저하게 패배시키는 방식으로 끝난 것 역시 히틀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42년 말 무렵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 분명해지면서 히틀러의 리더십은 군 지휘관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폭군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고 전쟁을 협상으로 끝낼 방안도 찾을 수 없었다.

광적인 행군은 소련군이 베를린 벙커의 문 앞까지 들이닥쳤을 때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비로소 종료했다.

시대가 입지를 강화한 측면에도 주목한다.

1차 대전이 독일에 안긴 충격이 없었으면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고, 1930년 대공황이 없었다면 그는 국가 지도자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가정했다.

지도자가 20세기 역사를 썼지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특정한 조건이 이들 통치자를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시대를 만들고 파괴한 개성…신간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책이 다룬 12명 중 유일한 여성인 대처도 눈길을 끈다.

20세기 유럽 정치가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것과 대처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

저자는 12년간 영국을 이끌고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대처의 "강인하고, 거칠고, 심지어 공격적인 성격"이 남성 엘리트가 지배하는 정치환경과 맞서 싸우면서 형성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정계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 의식이 팽배했다.

중하층 계급이며 지방 출신인 대처는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에 대항하고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확신을 유년기에 습득했고 빠른 판단력과 날카로운 논쟁 기술을 지녀 상대하기 어려운 정치인이었다.

시대를 만들고 파괴한 개성…신간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대처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었다.

저자는 그가 주부와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고 젠더 이슈에서 전통주의자였으며 "어떤 때는 섹시한 면을 보여줄 줄도 알았다"고 소개했다.

대처가 영국 첫 여성 수상이 될 것이라는 평가는 그가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되고 11년 후인 1970년 교육장관이 됐을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9년 후인 1979년 다우닝가 10번지(수상 관저 주소지)에 입성하며 여성 첫 영국 수상 타이틀을 거머쥔다.

확고부동한 대처의 자세는 정치적 반대를 돌파하는 동력이 됐다.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대처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영국 잠수함이 아르헨티나 순양함을 격침하면서 363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반격에 나선 아르헨티나는 영국 군함 셰필드 호를 미사일로 격침해 21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중상을 입었다.

극도의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대처는 흔들림이 없었고 같은 해 6월 전쟁은 영국의 실질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시대착오적인 유사 식민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대처의 입지는 공고해졌다.

지지율은 51%로 치솟았고 미국 공화당은 그를 찬양했다.

대처는 재임 중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을 구성한 광부들의 파업을 꺾었고 신자유주의는 그의 핵심적인 유산으로 꼽힌다.

영국을 깊게 분열시킨 지도자라는 평가도 따라다닌다.

한길사. 박종일 옮김. 72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