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를 울린 처녀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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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내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불타는 나의 마음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 : 독일 시인
--------------------------------- ‘5월의 고백’도 무색하게 실연의 상처만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입니다. 슈만이 노래로 만들어서 더욱 유명해졌죠. 읽다 보면 한창 감수성 예민한 청년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지요. 세상이 온통 ‘꽃봉오리’ 같고, 내 마음도 노래하는 ‘새’가 됩니다.
그러나 하이네의 첫사랑은 고통스러웠답니다. 그는 열아홉 살 때 함부르크에서 은행을 운영하는 작은아버지 집에 기거했는데, 그곳에서 사랑에 눈을 떴죠. 상대는 그 집 딸인 사촌 여동생 아말리에였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의 어느 날 그는 ‘불타는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요. 오히려 그를 경멸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다른 남자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남자가 속도 모르고 딴 여자와 결혼하자 아말리에는 복수하듯 낯선 사람에게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충격을 받은 하이네는 도망치듯 자기 집으로 돌아갔죠. 이 실연의 고통이 그를 본격적인 시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이때의 상처가 시집 『노래집』의 창작 동기가 됐지요. 당시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다음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깊은 상처를
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고운 꽃이 알기만 한다면
내 아픔을 달래기 위해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련만.
내 간절한 슬픔을
꾀꼬리가 안다면
즐겁게 지저귀어 내 외로움을
풀어 줄 수도 있으련만.
나의 이 탄식을 저 별
황금빛 별이 알기만 한다면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
위로해 주겠건만.
그렇지만 이내 슬픔 아는 이 없네.
알아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내 가슴을 손톱으로
갈가리 찢어놓은 오직 한 사람.
이후 그의 시는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사회적인 발언도 세졌지요. 검열이 심해지자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서른네 살 때부터 파리에서 생활했습니다. 그곳에서 별로 교육받지 못한 여점원 크레센스 유제니 미라를 알게 됐고, 7년 후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하이네가 ‘마틸데’라고 부른 그녀는 ‘다소 까다롭기는 해도 충실한 애인’ 같았다고 해요.
그에게 다시 한번 사랑이 찾아온 것은 생의 황혼기인 58세 때였습니다. 병상에 누운 지 오래인 그에게 어느 날 편지가 한 통 도착했지요. 상대는 스물일곱 살의 여인 엘리제 클리니츠였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처음 읽은 날 이후 수년 동안 저는 우리 두 사람이 언젠가는 친구가 되리라는 느낌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당신을 향한 내적인 사랑을 간직해왔어요. 이 사랑은 오직 나의 삶과 함께 끝날 것이고, 당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당신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그것을 기꺼이 증명하고 싶어요.”
얼마 후 그녀가 하이네를 찾아왔습니다. 하이네의 병세는 잠시 호전되기는 했지만 이미 한 쪽 몸을 못 쓰는 상태였지요. 고통이 심해 모르핀으로 견딜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 앞에 찾아온 ‘꽃봉오리’ 같은 여인을 그는 ‘무슈(파리)’라고 불렀죠. 육체적인 교감을 이룰 수 없었기에 그는 체념과 실의에 빠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격정적인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내 착한 무슈여! 당신의 그 작은 날개로 내 코 주위에서 날갯짓을 해주오. 멘델스존의 노래 중 ‘그대여, 빨리 와요!’라는 후렴구가 있는 곡이 있지요. 그 멜로디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소. ‘그대여, 빨리 와요!’”
그녀는 날마다 찾아와 몇 시간씩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자리를 지키지 못했지요. 그가 애타게 찾았지만 심한 감기에 걸려 올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하이네는 세상을 떠났지요.
하이네가 죽기 1주일 전 마지막으로 쓴 시의 제목은 ‘무슈를 위하여’였습니다. ‘너는 한 송이 꽃이었다,/ 키스만 해도 난 너를 알 수 있었다./ 어느 꽃의 입술이 그토록 보드랍고,/ 어느 꽃의 눈물이 그토록 뜨거우랴!’로 시작하는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그는 애틋한 마음을 이렇게 고백했지요.
드디어 죽음이 온다. 이제 난 말하리라,
자랑스럽게 너를 향하여, 너를 향하여
나의 심장은 너를 위하여 뛰었다고.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내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불타는 나의 마음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 : 독일 시인
--------------------------------- ‘5월의 고백’도 무색하게 실연의 상처만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입니다. 슈만이 노래로 만들어서 더욱 유명해졌죠. 읽다 보면 한창 감수성 예민한 청년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지요. 세상이 온통 ‘꽃봉오리’ 같고, 내 마음도 노래하는 ‘새’가 됩니다.
그러나 하이네의 첫사랑은 고통스러웠답니다. 그는 열아홉 살 때 함부르크에서 은행을 운영하는 작은아버지 집에 기거했는데, 그곳에서 사랑에 눈을 떴죠. 상대는 그 집 딸인 사촌 여동생 아말리에였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의 어느 날 그는 ‘불타는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요. 오히려 그를 경멸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다른 남자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남자가 속도 모르고 딴 여자와 결혼하자 아말리에는 복수하듯 낯선 사람에게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슬픔 아는 이 없네”
충격을 받은 하이네는 도망치듯 자기 집으로 돌아갔죠. 이 실연의 고통이 그를 본격적인 시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이때의 상처가 시집 『노래집』의 창작 동기가 됐지요. 당시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다음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깊은 상처를
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고운 꽃이 알기만 한다면
내 아픔을 달래기 위해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련만.
내 간절한 슬픔을
꾀꼬리가 안다면
즐겁게 지저귀어 내 외로움을
풀어 줄 수도 있으련만.
나의 이 탄식을 저 별
황금빛 별이 알기만 한다면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
위로해 주겠건만.
그렇지만 이내 슬픔 아는 이 없네.
알아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내 가슴을 손톱으로
갈가리 찢어놓은 오직 한 사람.
이후 그의 시는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사회적인 발언도 세졌지요. 검열이 심해지자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서른네 살 때부터 파리에서 생활했습니다. 그곳에서 별로 교육받지 못한 여점원 크레센스 유제니 미라를 알게 됐고, 7년 후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하이네가 ‘마틸데’라고 부른 그녀는 ‘다소 까다롭기는 해도 충실한 애인’ 같았다고 해요.
“나의 심장은 너를 위하여 뛰었다고”
그에게 다시 한번 사랑이 찾아온 것은 생의 황혼기인 58세 때였습니다. 병상에 누운 지 오래인 그에게 어느 날 편지가 한 통 도착했지요. 상대는 스물일곱 살의 여인 엘리제 클리니츠였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처음 읽은 날 이후 수년 동안 저는 우리 두 사람이 언젠가는 친구가 되리라는 느낌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당신을 향한 내적인 사랑을 간직해왔어요. 이 사랑은 오직 나의 삶과 함께 끝날 것이고, 당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당신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그것을 기꺼이 증명하고 싶어요.”
얼마 후 그녀가 하이네를 찾아왔습니다. 하이네의 병세는 잠시 호전되기는 했지만 이미 한 쪽 몸을 못 쓰는 상태였지요. 고통이 심해 모르핀으로 견딜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 앞에 찾아온 ‘꽃봉오리’ 같은 여인을 그는 ‘무슈(파리)’라고 불렀죠. 육체적인 교감을 이룰 수 없었기에 그는 체념과 실의에 빠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격정적인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내 착한 무슈여! 당신의 그 작은 날개로 내 코 주위에서 날갯짓을 해주오. 멘델스존의 노래 중 ‘그대여, 빨리 와요!’라는 후렴구가 있는 곡이 있지요. 그 멜로디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소. ‘그대여, 빨리 와요!’”
그녀는 날마다 찾아와 몇 시간씩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자리를 지키지 못했지요. 그가 애타게 찾았지만 심한 감기에 걸려 올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하이네는 세상을 떠났지요.
하이네가 죽기 1주일 전 마지막으로 쓴 시의 제목은 ‘무슈를 위하여’였습니다. ‘너는 한 송이 꽃이었다,/ 키스만 해도 난 너를 알 수 있었다./ 어느 꽃의 입술이 그토록 보드랍고,/ 어느 꽃의 눈물이 그토록 뜨거우랴!’로 시작하는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그는 애틋한 마음을 이렇게 고백했지요.
드디어 죽음이 온다. 이제 난 말하리라,
자랑스럽게 너를 향하여, 너를 향하여
나의 심장은 너를 위하여 뛰었다고.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