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뱅크 센터 헤이워드갤러리
'멸종의 손짓: Extinction Beckons' 전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허구의 복합적 경험
터너 프라이즈 두 차례 후보 올랐던 마이크 넬슨
2018년 광주 비엔날레 땐 국군광주병원을 예술로
마이크 넬슨은 영국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장소 특정적 공간을 재건축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했으며, 2001년과 2007년 두 차례나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 후보로 선정될 만큼 영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현대미술가이다. 국내에서는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되어 옛 국군광주병원을 예술작품으로 탈바꿈시킨 바가 있다.
‘멸종의 손짓’이라는 전시 제목은 넬슨이 오토바이 헬멧에서 발견한 ‘날 것 그대로’의 오브제라는 뜻의 ‘오브제 트루베’(Objet Trouvé) 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전시 제목이 말하듯 전시 공간은 오브제의 쇠퇴와 절망의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맞이한 붉은 조명의 창고. 창고 선반에는 먼지가 쌓인 온갖 잡동사니들이 올려져 있었다. 막대 그릴, 고대 자물쇠가 달린 참나무, 강화 금속, 페인트를 칠하다 만 패널 등 창고에 있을 법한 물건들이 가득 놓여져 있었다. 창문 너머로 밝혀진 붉은 색의 조명이 아니었다면, 순간 ‘전시장을 잘못 입장했나?’라고 착각할 듯한 수준의 고증이었다. 이처럼 마이크 넬슨은 주로 가상의 공간을 재구축해 관람자로 하여금 현실과 비현실의 낯익은 낯설음(uncanny)를 느끼게 만든다.
관객들은 넬슨이 만든 창고에서 물건들을 관찰하며 각각이 지닌 역사와 공간이 담은 이야기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넬슨의 상상적 서사를 공간으로 실현하는 데에 그가 중점을 두는 것은 오브제이다. 그의 작품에서 오브제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공간에 기억과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단서이자, 재구성된 환경에 몰입하게끔 현실과 비현실을 이어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의 상상적 공간은 섬뜩할 만큼 친숙하면서도 인간의 존재가 결여된, 과거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1609년 버뮤다에서 버지니아로 향하던 난파선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여행사의 사무실을 모티브로 한 공간, 난파된 사람들의 옷가지를 모아둔 듯한 복도와 같은 역사적 단서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연다는 행위는 일상적인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행위이다. 하지만 넬슨은 그 경험을 복제하되, 동시에 관람자를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 속에서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허구를 복합적으로 경험하게 만들었다.
마이크 넬슨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에 방문한 소감을 말하자면, 이번 전시는 전반적으로 압도적이고 몰입감이 있었다. 마이크 넬슨의 작품은 공상 과학 소설, 실패한 정치 운동, 어두운 역사 및 반문화를 엮어 하나의 일상적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종의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관객들은 그가 남긴 단서를 조합하고 각자의 이야기로 해석함으로써 넬슨이 남긴 미완의 서사를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다.
전시의 테마가 공포인 이유 역시 납득이 되었다. 물론 공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관객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붉은 조명에서 공포를 느낄 수도, 누군가는 인물이 없는 텅 빈 현실적 공간에서 공포를 느낄 수도, 또 누군가는 넬슨이 숨겨놓은 단서를 조합하며 밝혀지는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음모에서 공포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