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에 3악장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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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
베토벤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0, 31, 32번, 그 클래식의 무대
‘왜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번에서 제3악장을 쓰지 않았는가?’ 사진: 마스트미디어 제공
소설가 토마스 만의 작품 <파우스트 박사>의 등장인물인 말더듬이 크레추마어가 위 주제로 열띤 강연을 하는 장면이 너무 재미있어서 서점을 들락날락하며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다 결국 구매한 기억이 있다.
작년 11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렉처 리사이틀’ 형식으로 네 시간에 가까운 음악회를 진행한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연주할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통역해 주며 바흐와 베토벤을 비롯한 여러 작곡가의 작품들 역시 연주했던 음악회.
조근조근한 목소리의 안드라스 쉬프의 렉처 리사이틀에 흠뻑 빠져든 청중들과 직접 연주까지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특정 모음의 발음에는 어려움마저 겪는 크레추마어의 강의에 혹한 소설 속 청중들과 소설 밖의 독자. 그들은 언어가 배제된 음악을 향한 또 다른 열망에서 서로 조금은 통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2004년 이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서른 두곡 전 곡에 대한 렉처와 연주를 이미 진행했던 쉬프는 2011년 2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아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만을 약 80분에 걸쳐 인터미션 없이 연주했다. 이 음악회에 청중으로 참여하기 위한 연습은 그의 렉처를 찾아 들어보는 일이었고, 8개의 악장이 하나의 작품으로 스스로에게 인식될 만큼 열심히 들었다. 이 공연을 정리했던 당시의 기록 두 개를 끄집어내 본다.
◎ 30번 3악장 6번째 변주: Crochet(크로셰)▶quaver(퀘이버)▶triplet(트리플렛)▶semiquaver(세미퀘이버)▶demisemiquaver(디세미퀘이버)→ Free Trill(프리 트릴) !! 왼손의 음표 변화에서 시작해 트릴로 변하는 이 부분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점층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 10번의 종소리. 그 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공연장을 맴돈다. 잔향이 남은 공간에 푸가는 마치 하얀 새들처럼 그 속으로 솟는다. 의연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찰나의 환영이 되고, 음영이 있고, 안개 자욱한 듯한 그 공간은 그림의 기막힌 배경이 된다.
어느 악장은 아리아로 시작해 서른 개의 변주를 지나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바흐의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그 변주 중 하나는 미술계의 점묘주의를 연상해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악장은 베토벤이 살던 당시 저잣거리의 노래를 차용하기도 했으며, 세세해진 악상 기호들은 베토벤이 피아노란 악기의 기계적 발전을 잘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바흐의 또 다른 작품 ‘요한 수난곡’ 중 알토의 아리아 ‘성취되었다(Es/ist/voll/bracht)’의 음을 인용하고 있음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 8개의 악장은 청력을 잃은 채 곧 죽음을 맞게 되는 작곡가 자신의 종교적 기원이자 기도일 수도 있으며, 많은 음 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트릴은 그 기원과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일 수도 있음을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렉처와 연주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디오가 담긴 그 연주회의 풍경. 피아노가 놓인 땅과 빛을 내리는 조명기가 달린 하늘. 종소리가 마음껏 부유할 수 있었던 그 음악회의 공간은 내게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운 듯하다.
(30번 1악장) 어디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는 거야. 지금까지의 기억은 모두 잊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3년에 걸쳐 만들어갈 이 8개의 이야기가 내가 하고 싶은 피아노 이야기의 마지막이야. 하늘에서, 혹은 멀리서, 아니면 기억에서 날아온 듯한 나비 한 마리는 모든 기억을, 혹은 추억을, 아니면 내 음악의 지식을 싣고 날아가 버릴 테지. 말 그대로 하얀 백지가 되어버린 내 머릿속은 이제 홀가분해졌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야지.
(30번 2악장) 짧아. 31번 2악장 역시 짧아. 난 마지막 소나타는 세 악장까지 쓰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가장 길어야 하는 32번 2악장을 빛나게 하는 가장 좋은 선택이야.
(30번 3악장) 난 몇 가지 기억나는 이야기를 할 것이고, 이 악장의 형식도 그중 하나야. 바흐 선배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형식을 차용하는 일이 그 하나지. 주제를 말하고, 변주를 말하고, 다시 주제를 말하는. 30개가 아닌 6개의 변주를 말하는 나는 그중 5번째 변주에 나의 노래였던 Credo도 불러왔어. 그리고 마지막 변주에서는 트릴의 아름다움을 아주 조금 보여줄 예정이야. 왜냐하면, 트릴이 가장 아름다워야 할 곳은 역시 32번 2악장이거든. 맛만 봐.
(31번 1악장) 음들이 분절되어 있는 악기인 피아노는 별을 그리기 쉬운 악기인 것 같아. 세상 사람들은 나를 직설적인 인물이라 생각할 테지만, 사실 이 악장에서 그나마 나는 조금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사람이 된 듯해 좋아.
(31번 2악장) 두 번째 등장시킨 이 짧은 악장에는 내 시대의 길거리 노래 2곡을 넣었어. 나의 노래 Credo -저잣거리의 노래- 곧 등장할 바흐 선배의 곡 ‘성취되었다’를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도 좋고.
(31번 3악장) 난 5번째 마디에 연속해서 28개의 ‘라’를 치도록 곡을 만들었어. 이제 페달이 좋은 피아노들이 나와서 tutte corde 와 una corda도 지시하고. 눈물처럼 들렸으면 해. 눈물을 흘리고 난 뒤 ‘탄식의 노래’를 2번 불러 마음을 정화하고. 그 선율의 마지막에는 바흐 선배의 ‘성취되었다’를 붙이고, 선배의 장기인 푸가를 등장시킬 거야. 2번째 푸가의 바로 앞에는 10번의 종소리를 넣고. 이 푸가는 첨탑에 앉았던 하얀 나비가 이제 정말, 진짜로 나를 떠나갔으면 하는 일종의 기도이거나 기원이지.
(32번 1악장) 드디어 난 혼돈에 도착했어.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혀온 것들을 깡그리 잊을 수 있는. 하지만 쉽게 내가 버리거나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태초의 혼돈만큼이나 모든 것을 지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어야지. 난 받아들이고, 드디어 마지막을 준비할거야.
(32번 2악장) 일단, 첫 세 마디에 지금까지 나를 바라봐 준 세상에 대해 인사를 할게. ‘감사해. 그리고 고마워’ 마흔여덟 번째 마디엔 조금 신나는 부분을 넣을 거야. 재지(Jazzy)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 느낌은 퍼펫(Puppet)에 가까워.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여전히 그 실을 끊지 못한 채 춤을 추고 있는 인형. 그다음 최선을 다한 트릴을 넣을 거야. 많은 음이 필요없는 그 단순한 트릴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어 봐야지. 그리고 그 트릴은 곧 내가 오를 하늘을 향해 놓인, 내 발걸음을 받치는 별들의 길이 되기도 할 거야. 안녕. 일러스트: 강호국
글맺음은 이 모든 8개 악장의 맺음이었던 피아노 소나타 32번 2악장에 관한 이야기가 적절할 듯싶다. 1820년에서 1822년까지 삼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세 개의 작품을 작곡하던 당시의 베토벤을 묘사하던 크레추마어는 (베토벤은) 청각의 사멸로 말미암아 감각계로부터도 고립되어있는 자아의 세계로 고양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영적인 세계에 홀로 존재하는 군주가 되었다고 말한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악장에 대한 렉처를 진행하던 중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 대한 언급을 하며, 처음으로 조성체계를 떠나 오른손의 트릴이 연주되는 그 순간이 ‘파우스트적 순간’이라고 단호하게 외친다. 갈등-투쟁-승리, 마치 하나의 공식 같던 베토벤의 음악이 이 악장에 이르러 초월과 해탈마저 더해 후세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청자들에게 그 자신 음악의 신이라는 ‘악성(樂聖)’으로 등극하게 될 것을 간파했을 베토벤. 굳이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의 제3악장은 쓸 필요가 없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왜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번에서 제3악장을 쓰지 않았는가?’ 사진: 마스트미디어 제공
소설가 토마스 만의 작품 <파우스트 박사>의 등장인물인 말더듬이 크레추마어가 위 주제로 열띤 강연을 하는 장면이 너무 재미있어서 서점을 들락날락하며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다 결국 구매한 기억이 있다.
작년 11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렉처 리사이틀’ 형식으로 네 시간에 가까운 음악회를 진행한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연주할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통역해 주며 바흐와 베토벤을 비롯한 여러 작곡가의 작품들 역시 연주했던 음악회.
조근조근한 목소리의 안드라스 쉬프의 렉처 리사이틀에 흠뻑 빠져든 청중들과 직접 연주까지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특정 모음의 발음에는 어려움마저 겪는 크레추마어의 강의에 혹한 소설 속 청중들과 소설 밖의 독자. 그들은 언어가 배제된 음악을 향한 또 다른 열망에서 서로 조금은 통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2004년 이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서른 두곡 전 곡에 대한 렉처와 연주를 이미 진행했던 쉬프는 2011년 2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아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만을 약 80분에 걸쳐 인터미션 없이 연주했다. 이 음악회에 청중으로 참여하기 위한 연습은 그의 렉처를 찾아 들어보는 일이었고, 8개의 악장이 하나의 작품으로 스스로에게 인식될 만큼 열심히 들었다. 이 공연을 정리했던 당시의 기록 두 개를 끄집어내 본다.
◎ 30번 3악장 6번째 변주: Crochet(크로셰)▶quaver(퀘이버)▶triplet(트리플렛)▶semiquaver(세미퀘이버)▶demisemiquaver(디세미퀘이버)→ Free Trill(프리 트릴) !! 왼손의 음표 변화에서 시작해 트릴로 변하는 이 부분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점층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 10번의 종소리. 그 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공연장을 맴돈다. 잔향이 남은 공간에 푸가는 마치 하얀 새들처럼 그 속으로 솟는다. 의연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찰나의 환영이 되고, 음영이 있고, 안개 자욱한 듯한 그 공간은 그림의 기막힌 배경이 된다.
어느 악장은 아리아로 시작해 서른 개의 변주를 지나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바흐의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그 변주 중 하나는 미술계의 점묘주의를 연상해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악장은 베토벤이 살던 당시 저잣거리의 노래를 차용하기도 했으며, 세세해진 악상 기호들은 베토벤이 피아노란 악기의 기계적 발전을 잘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바흐의 또 다른 작품 ‘요한 수난곡’ 중 알토의 아리아 ‘성취되었다(Es/ist/voll/bracht)’의 음을 인용하고 있음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 8개의 악장은 청력을 잃은 채 곧 죽음을 맞게 되는 작곡가 자신의 종교적 기원이자 기도일 수도 있으며, 많은 음 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트릴은 그 기원과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일 수도 있음을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렉처와 연주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디오가 담긴 그 연주회의 풍경. 피아노가 놓인 땅과 빛을 내리는 조명기가 달린 하늘. 종소리가 마음껏 부유할 수 있었던 그 음악회의 공간은 내게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운 듯하다.
(30번 1악장) 어디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는 거야. 지금까지의 기억은 모두 잊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3년에 걸쳐 만들어갈 이 8개의 이야기가 내가 하고 싶은 피아노 이야기의 마지막이야. 하늘에서, 혹은 멀리서, 아니면 기억에서 날아온 듯한 나비 한 마리는 모든 기억을, 혹은 추억을, 아니면 내 음악의 지식을 싣고 날아가 버릴 테지. 말 그대로 하얀 백지가 되어버린 내 머릿속은 이제 홀가분해졌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야지.
(30번 2악장) 짧아. 31번 2악장 역시 짧아. 난 마지막 소나타는 세 악장까지 쓰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가장 길어야 하는 32번 2악장을 빛나게 하는 가장 좋은 선택이야.
(30번 3악장) 난 몇 가지 기억나는 이야기를 할 것이고, 이 악장의 형식도 그중 하나야. 바흐 선배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형식을 차용하는 일이 그 하나지. 주제를 말하고, 변주를 말하고, 다시 주제를 말하는. 30개가 아닌 6개의 변주를 말하는 나는 그중 5번째 변주에 나의 노래였던 Credo도 불러왔어. 그리고 마지막 변주에서는 트릴의 아름다움을 아주 조금 보여줄 예정이야. 왜냐하면, 트릴이 가장 아름다워야 할 곳은 역시 32번 2악장이거든. 맛만 봐.
(31번 1악장) 음들이 분절되어 있는 악기인 피아노는 별을 그리기 쉬운 악기인 것 같아. 세상 사람들은 나를 직설적인 인물이라 생각할 테지만, 사실 이 악장에서 그나마 나는 조금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사람이 된 듯해 좋아.
(31번 2악장) 두 번째 등장시킨 이 짧은 악장에는 내 시대의 길거리 노래 2곡을 넣었어. 나의 노래 Credo -저잣거리의 노래- 곧 등장할 바흐 선배의 곡 ‘성취되었다’를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도 좋고.
(31번 3악장) 난 5번째 마디에 연속해서 28개의 ‘라’를 치도록 곡을 만들었어. 이제 페달이 좋은 피아노들이 나와서 tutte corde 와 una corda도 지시하고. 눈물처럼 들렸으면 해. 눈물을 흘리고 난 뒤 ‘탄식의 노래’를 2번 불러 마음을 정화하고. 그 선율의 마지막에는 바흐 선배의 ‘성취되었다’를 붙이고, 선배의 장기인 푸가를 등장시킬 거야. 2번째 푸가의 바로 앞에는 10번의 종소리를 넣고. 이 푸가는 첨탑에 앉았던 하얀 나비가 이제 정말, 진짜로 나를 떠나갔으면 하는 일종의 기도이거나 기원이지.
(32번 1악장) 드디어 난 혼돈에 도착했어.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혀온 것들을 깡그리 잊을 수 있는. 하지만 쉽게 내가 버리거나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태초의 혼돈만큼이나 모든 것을 지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어야지. 난 받아들이고, 드디어 마지막을 준비할거야.
(32번 2악장) 일단, 첫 세 마디에 지금까지 나를 바라봐 준 세상에 대해 인사를 할게. ‘감사해. 그리고 고마워’ 마흔여덟 번째 마디엔 조금 신나는 부분을 넣을 거야. 재지(Jazzy)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 느낌은 퍼펫(Puppet)에 가까워.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여전히 그 실을 끊지 못한 채 춤을 추고 있는 인형. 그다음 최선을 다한 트릴을 넣을 거야. 많은 음이 필요없는 그 단순한 트릴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어 봐야지. 그리고 그 트릴은 곧 내가 오를 하늘을 향해 놓인, 내 발걸음을 받치는 별들의 길이 되기도 할 거야. 안녕. 일러스트: 강호국
글맺음은 이 모든 8개 악장의 맺음이었던 피아노 소나타 32번 2악장에 관한 이야기가 적절할 듯싶다. 1820년에서 1822년까지 삼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세 개의 작품을 작곡하던 당시의 베토벤을 묘사하던 크레추마어는 (베토벤은) 청각의 사멸로 말미암아 감각계로부터도 고립되어있는 자아의 세계로 고양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영적인 세계에 홀로 존재하는 군주가 되었다고 말한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악장에 대한 렉처를 진행하던 중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 대한 언급을 하며, 처음으로 조성체계를 떠나 오른손의 트릴이 연주되는 그 순간이 ‘파우스트적 순간’이라고 단호하게 외친다. 갈등-투쟁-승리, 마치 하나의 공식 같던 베토벤의 음악이 이 악장에 이르러 초월과 해탈마저 더해 후세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청자들에게 그 자신 음악의 신이라는 ‘악성(樂聖)’으로 등극하게 될 것을 간파했을 베토벤. 굳이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의 제3악장은 쓸 필요가 없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