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 성악계의 큰 스승이셨던 테너 박인수 선생님이 영면에 드셨다. 제자들을 향한 애정이 넘쳐흘렀고 어린 학생들도 예술가로 존중을 해주시는 분이라 익히 들었다. 그래서인지, 출신 학교를 막론하고 그분의 넋을 기리는 추도예배에 수많은 성악가들이 모였다고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김남윤 선생님도 소천하시며 많은 음악인들이 슬픔을 나누었다. 진정한 스승은 세상을 떠났을 때 더욱 추앙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르치며 배우며 [황수미의 노래의 날개 위에]
작년 가을부터 내게 ‘교수’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레슨을 받고 배우는 데서 여전히 큰 즐거움을 얻는 내가 거꾸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다. 정체성이 바뀐 듯하다면 마음이 전달이 될까. 연주자로서 온전히 나만 돌보며 지냈던 시간들을 이젠 학생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점이 적잖은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저 팬심으로 무작정 반겨주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때로는 두렵기도 했고, 직책에 걸맞는 말과 행동, 무엇보다 다가올 연주들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적어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대로 연주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지난 첫 학기는 내게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신 모든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 자리인지 처음으로 느꼈다.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한 나의 선생님들을 추억하고자 한다.

중학교 시절 취미로 성악 레슨을 시작했다. 당시 선생님께선 단번에 “너는 꼭 성악가가 되어야 한다”며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대가들의 음반을 복사해서 주시곤 했다. 덕분에 점점 성악에 흥미를 느꼈고, 서울예술고등학교 진학도 꿈꾸게 됐다. 지방 학생에겐 어쩌면 당연한 ‘서울 레슨’도 없이 입학을 하는 기쁨도 맛봤다. 이후 서울에서 만난 선생님은 부모와 떨어져 홀로 유학을 시작한 어린 고등학생에게 엄마처럼 따뜻한 가르침을 주셨다.

대학 입학 후 슬럼프가 찾아왔는데, 전국에서 모인 뛰어난 친구들에 비해 나의 실기가 너무나도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입학 후 첫 레슨에서 “공부(필기성적)로 서울대 왔구나?” 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재능도 기본기도 없이 그저 운 좋게 이뤄낸 입학 같았다. 나는 점점 노래 부르는 것에 자신이 없어지고 ‘성악 공부를 포기할까’ 하며 참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런 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레슨을 해주셨던 선생님이 계셔서 다시금 일어날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은 워낙 완벽주의자이시고 칭찬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분이라 콩쿠르 참가 역시 순위 안에 들 실력이 아니라 생각하면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이후 실제 콩쿠르 입상보다 선생님께서 내게 콩쿠르를 권하셨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절대적인 귀를 가진 분에게 인정받은 기분이랄까.

내가 독일 뮌헨국립음대에 입할할 때는 소프라노 선생님들이 신입생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제자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결국 나는 오라토리오 전문 테너 선생님의 클래스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모두가 “왜 오페라 가수로서는 커리어가 없는 선생님에게 배우냐”며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다음 학기에 클래스를 바꾸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 배우지 못했던 오라토리오 레퍼토리를 많이 배울 수 있어 즐거웠는데, 교수법과 관계없이 소위 ‘힘 있는’ 선생님께 배우라는 말이 굉장히 무례하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 반발심에 나는 요상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가 우리 선생님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겠다!’라고. 그리고 그 다짐 덕인지 뮌헨 유학 당시 ARD국제콩쿠르를 비롯해 크고 작은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퀸엘리자베스콩쿠르까지 우승을 하게 됐다.

이후 음악적 파트너로 여러 연주를 함께 만들어 온 헬무트 도이치 선생님은 나를 학생이 아닌 연주자로 인정하고 응원해주시며 40년이나 어린 젊은 연주자에게 좋은 연주에 대한 존경의 표시까지 하셨다. 이렇게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진심어린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려주셨고, 나 또한 무한신뢰로 배우고 따랐다.
가르치며 배우며 [황수미의 노래의 날개 위에]
노래를 할 때 본인이 부르며 듣는 소리와 청중에게 들리는 소리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성악에선 올바른 발성법과 좋은 소리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제 3의 귀’가 꼭 필요하다. 현재 나는 연주자로 또 지도자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서 레슨을 받는다. 모두가 내 연주에 박수를 칠 때에도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성장 과정을 꿰뚫고 있는 분이 여전히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꼬집어 주시면 힘이 들어갈 뻔했던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가르치는 자리에 서보니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들고 안타까운 순간도 많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다. 쓴소리에 행여나 상처를 받을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칭찬에 들뜨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진심으로 학생을 대하고 함께 배우는 마음으로 가르친다면 나도 훗날 나의 제자들에게 추앙받는 스승의 모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