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품에 자기 이름 새긴 것조차 부끄러웠던 미켈란젤로[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다큐드라마 ‘미켈란젤로’. 넷플릭스 제공

“나는 대리석을 조각하며 터득한 기술을 그림에 쏟아붓기로 결심했어. 몸통과 힘줄, 근육으로 천장을 전부 채워서 기적이라고 할만한 작품을 그릴 계획을 세웠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천지창조’를 그리기 전 이렇게 말합니다. ‘천지창조’는 로마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천장화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높은 천장에 매달려 홀로 무려 340명을 그려 넣으며, 미술사에 길이남을 명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다큐드라마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1475~1564)의 삶과 명작의 탄생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한 작품입니다. 내레이션 기반의 다큐멘터리이면서도 배우가 출연해 연기를 하는 드라마적 구성을 띠고 있습니다. 엠마누엘 임부치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엔리코 로 베르소가 미켈란젤로를 연기했습니다.

이탈리아 작품으로 2021년 개봉했습니다. 지난 1월부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도 제공되고 있습니다. 작품에선 미켈란젤로의 끈질긴 집념으로 탄생한 명작들의 파노라마가 화면 가득 펼쳐집니다. 조각 ‘피에타’ ‘다비드’부터 명화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까지 다양한 그의 작품들을 클로즈업하고 여러 각도로 비추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조각품에 자기 이름 새긴 것조차 부끄러웠던 미켈란젤로[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천지창조’가 그려진 시스티나 성당.

다큐의 기본이 되는 내레이션 설정부터 독특합니다. 배우 이바노 마레스코티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미술사가로 유명한 조르조 바사리 역을 맡아 직접 내레이션을 합니다. 즉, 바사리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컨셉트입니다.

다큐에서 가장 부각되는 점은 미젤란젤로의 장인정신과 고독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실제로 자신의 일상생활은 뒤로 미루고 예술에만 집중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잘 쉬지도 않았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완벽하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예술에만 지독히 몰입하다 보니 그는 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도 확고해 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그의 라이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다닌 것과는 정반대죠. 비혼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시대였음에도,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예술을 위해 살았습니다.
조각품에 자기 이름 새긴 것조차 부끄러웠던 미켈란젤로[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미켈란젤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고작 23살이 되던 해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조각상은 정교함과 섬세함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근육과 힘줄 등을 살펴보면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미켈란젤로의 놀라운 해부학적 지식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에 미술 활동은 물론 해부학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체를 받으면 2~3일간 꼬박 해부를 하며 인체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들을 작품 곳곳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조각품에 자기 이름 새긴 것조차 부끄러웠던 미켈란젤로[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피에타'

그의 해부학 지식은 ‘천지창조’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 그려진 340명의 인체엔 그야말로 해부학적 지식이 총집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창조'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아담의 창조’에도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아담의 창조'는 하느님과 아담이 서로를 향해 마주보며 손을 뻗는 그림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와 광고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습니다.

그림에선 하느님 주변 전체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붉은색 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천엔 비밀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1990년 브라질의 의사 질송 바헤토에 따르면 이 천은 뇌의 절단면과 비슷합니다. 미켈란젤로가 뇌 해부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그림에 담은 겁니다.

하느님과 아담 사이의 닿을 듯 말 듯한 손끝에도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다큐에서는 바사리의 내레이션으로 이 손끝에 대한 의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미켈란젤로는 두 검지 사이의 작은 공간을 통해 인간과 신 사이의 격차를 보여주려 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예술을 정의하고 완성했다."
조각품에 자기 이름 새긴 것조차 부끄러웠던 미켈란젤로[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미켈란젤로는 원래 그림보다 조각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율리오 2세의 요청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천지창조'를 그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업을 할 때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천장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물감이 눈에 들어가 시력에 문제가 생기고 목과 어깨도 굳어갔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밤샘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그는 4년에 걸쳐 천장을 채워 넣으며 ‘천지창조’를 완성했습니다. 이후 벽화 '최후의 심판' 작업도 8년동안 진행하며 391명에 달하는 사람을 그려 넣었습니다.
조각품에 자기 이름 새긴 것조차 부끄러웠던 미켈란젤로[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최후의 심판'

그럼에도 그는 늘 겸허한 자세를 가졌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들어간 작품은 '피에타'가 유일합니다. 성모 마리아가 두른 띠에 그의 서명이 들어가 있죠.

하지만 이후 미켈란젤로는 서명을 한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작업을 마치고 나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죠. "하느님은 이토록 아름다운 밤하늘을 만드셨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당신의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았다. 그런데 조각 하나 만들어놓고 자랑이나 하듯이 이름을 새겨 넣은 나 자신이 부끄럽다."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입니다. 하지만 한 번쯤 멈춰서서 돌이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미켈란젤로처럼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나를 드러내기 보다 결과물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는지 말입니다. 겸허한 마음은 결과물의 가치, 나아가 나의 이름의 가치를 드높이고 더욱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