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저 강만 넘으면"…美국경 앞 텐트촌에 아른대는 희망과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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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즉각추방정책' 폐지 첫날 텍사스 접경 멕시코 이민자 거주지 취재
미국 입국 희망 중남미 출신 속속 도착…"미국 가면 뭔 일이든 할 것"
입국 신청부터 '바늘구멍'…신청해도 심사까지는 기약없는 '희망고문'
'좁은문' 합법적 미국 입국 더 어려워지면 불법월경 가능성 농후해 보여 아이티 출신 일네트(43)는 수백개의 텐트 사이 자신의 보금자리 앞에 우두커니 앉은 채 옅은 미소를 보냈다.
'프랑스어식 발음이 어렵다'며 직접 수첩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던 그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간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일네트는 거의 매일 기나긴 난민 신청자 대기 줄에서 '한 점'이 되는 남편을 기다리는 게 중요한 일상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의 서류 미비(불법) 입국 망명 신청자 즉각 추방정책(42호 정책) 종료 첫날인 12일(현지시간) 텍사스 접경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레이노사의 이민자 집단 거주 지역.
'센다 데 비다'(삶의 좁은 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에는 '좁은 길' 미국행을 희망하는 중남미 출신 주민들이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레이노사는 마타모로스, 시우다드후아레스, 티후아나 등 미국에 망명 또는 인도주의적 입국을 신청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중남미 이주자들이 대거 몰리는 곳 중 하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리오브라보(미국명 리오그란데) 강만 건너면 곧바로 텍사스 땅(이달고)이기 때문이다.
국경 검문소와 이민자 센터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강둑을 따라서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텐트들이 지금은 거대한 텐트촌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매일 강 건너 미국 땅을 바라보며 미국 입국의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한밤 추위를 피하기 위해 검은색 비닐로 지붕 부분을 감싸놓은 수백개의 텐트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래야 그나마 덜 춥다"고 베네수엘라 출신 20대 청년은 말했다.
땅바닥에서 곳곳에 분뇨가 널려 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도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골목' 같은 공간이 생겨났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나무 기둥을 뛰어넘는 놀이를 하면서 미국이 자신들을 맞이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텐트촌 넘어 몇 군데에서는 물통을 든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장 아르센(42)은 "이곳에서 일주일에 딱 3차례, 무료로 물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곳 생활이 어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장 아르센은 일네트와 마찬가지로 아이티에서 넘어왔다.
레이노사엔 다른 중남미 국가 주민과는 인종적·언어적·문화적으로 다른, 카리브해 최빈국 아이티 출신이 대거 몰려 있다.
그는 대지진과 극심한 정치·경제 위기로 신음하는 자신의 조국에서 "최근 급격하게 더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 변경에 따른 기대감"이 그 배경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불법입국자 즉각 추방 정책 폐지를 밝히면서 중남미에서 극도로 혼란스러운 정치·경제적 상황에 놓인 아이티를 비롯해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해선 문호를 넓혀 한 달에 최대 3만명의 인도주의적 입국 요청을 받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것이다.
멕시코 정부는 남부에서 출발해 북부를 향해 오는 '카라반'(캐러밴) 이민자 행렬을 고려하면 미-멕시코 국경 지역으로 몰려드는 미국 입국 희망 이민자의 숫자가 더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장 아르센은 공식적인 망명 신청 접수를 위해 접경지대를 찾은 이들 중에선 운이 좋은 편이다.
그가 보여주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입국 심사 인터뷰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정부는 '42호 정책'을 종료하고 기존에 실시했던 이른바 '8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망명하려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사전에 입국 신청을 해야 하고 미국내 후원자도 확보해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온라인 앱을 통해 망명 신청을 하는 첫 단계부터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접속 자체가 쉽지 않아서다.
장 아르센은 신청 성공 비결을 "먼저 플로리다에 넘어간 아내 덕분"이라고 했다.
장 아르센은 먼저 미국에 도착해 자리 잡은 아내가 후원자로 나서면서 운 좋게 미국 정부의 기준을 통과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텐트촌에는 장 아르센과 같은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더 허다하다.
레이노사에서 수년간 봉사 활동을 하는 유영주 선교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싼값에 국경을 넘게 해주겠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돈만 날리는 사람도 있다"며 "피해를 호소하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 아무도 몰래 어딘가로 떠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후니오(22)는 "(미국) 대통령이 바뀐 이후 (미국이) 우리에 대해 호의적으로 대해줄 것이라는 게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말"이라며 "조만간 미국에 가게 되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과 멕시코 정부는 후니오처럼 희망을 품고 국경으로 모이는 이들이 앞으로 더 늘면서 혼란이 가중될까 긴장하고 있다.
당장 첫날부터 불법 입국자가 폭증하진 않았다는 게 미국 정부 집계지만, 멕시코 북부에 이주민이 몰리는 현상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망명이나 난민 신청 등 '적법한' 절차를 밟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거나 설령 망명이나 난민 신청까지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심사 등 처리시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 불법 월경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농후하다.
실제 42호 정책 종료 직전 미국 남부 국경에서는 불법 입국자가 많이 증가하면서, 당국은 최대 1만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 2만8천명을 모아 놓기도 했다.
미국 당국은 남부에 국경 관리 인력을 대거 늘려 감시 태세를 강화한 상태다.
기자가 센다 데 비다에 머무는 동안에도 텍사스 쪽 하늘에서는 잊을만하면 헬기가 돌아다니며 굉음을 뿜어냈다.
불법입국이라는 '엉뚱한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연합뉴스
미국 입국 희망 중남미 출신 속속 도착…"미국 가면 뭔 일이든 할 것"
입국 신청부터 '바늘구멍'…신청해도 심사까지는 기약없는 '희망고문'
'좁은문' 합법적 미국 입국 더 어려워지면 불법월경 가능성 농후해 보여 아이티 출신 일네트(43)는 수백개의 텐트 사이 자신의 보금자리 앞에 우두커니 앉은 채 옅은 미소를 보냈다.
'프랑스어식 발음이 어렵다'며 직접 수첩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던 그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간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일네트는 거의 매일 기나긴 난민 신청자 대기 줄에서 '한 점'이 되는 남편을 기다리는 게 중요한 일상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의 서류 미비(불법) 입국 망명 신청자 즉각 추방정책(42호 정책) 종료 첫날인 12일(현지시간) 텍사스 접경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레이노사의 이민자 집단 거주 지역.
'센다 데 비다'(삶의 좁은 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에는 '좁은 길' 미국행을 희망하는 중남미 출신 주민들이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레이노사는 마타모로스, 시우다드후아레스, 티후아나 등 미국에 망명 또는 인도주의적 입국을 신청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중남미 이주자들이 대거 몰리는 곳 중 하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리오브라보(미국명 리오그란데) 강만 건너면 곧바로 텍사스 땅(이달고)이기 때문이다.
국경 검문소와 이민자 센터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강둑을 따라서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텐트들이 지금은 거대한 텐트촌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매일 강 건너 미국 땅을 바라보며 미국 입국의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한밤 추위를 피하기 위해 검은색 비닐로 지붕 부분을 감싸놓은 수백개의 텐트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래야 그나마 덜 춥다"고 베네수엘라 출신 20대 청년은 말했다.
땅바닥에서 곳곳에 분뇨가 널려 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도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골목' 같은 공간이 생겨났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나무 기둥을 뛰어넘는 놀이를 하면서 미국이 자신들을 맞이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텐트촌 넘어 몇 군데에서는 물통을 든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장 아르센(42)은 "이곳에서 일주일에 딱 3차례, 무료로 물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곳 생활이 어떤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장 아르센은 일네트와 마찬가지로 아이티에서 넘어왔다.
레이노사엔 다른 중남미 국가 주민과는 인종적·언어적·문화적으로 다른, 카리브해 최빈국 아이티 출신이 대거 몰려 있다.
그는 대지진과 극심한 정치·경제 위기로 신음하는 자신의 조국에서 "최근 급격하게 더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 변경에 따른 기대감"이 그 배경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불법입국자 즉각 추방 정책 폐지를 밝히면서 중남미에서 극도로 혼란스러운 정치·경제적 상황에 놓인 아이티를 비롯해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해선 문호를 넓혀 한 달에 최대 3만명의 인도주의적 입국 요청을 받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것이다.
멕시코 정부는 남부에서 출발해 북부를 향해 오는 '카라반'(캐러밴) 이민자 행렬을 고려하면 미-멕시코 국경 지역으로 몰려드는 미국 입국 희망 이민자의 숫자가 더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장 아르센은 공식적인 망명 신청 접수를 위해 접경지대를 찾은 이들 중에선 운이 좋은 편이다.
그가 보여주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입국 심사 인터뷰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정부는 '42호 정책'을 종료하고 기존에 실시했던 이른바 '8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망명하려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사전에 입국 신청을 해야 하고 미국내 후원자도 확보해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온라인 앱을 통해 망명 신청을 하는 첫 단계부터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접속 자체가 쉽지 않아서다.
장 아르센은 신청 성공 비결을 "먼저 플로리다에 넘어간 아내 덕분"이라고 했다.
장 아르센은 먼저 미국에 도착해 자리 잡은 아내가 후원자로 나서면서 운 좋게 미국 정부의 기준을 통과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텐트촌에는 장 아르센과 같은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더 허다하다.
레이노사에서 수년간 봉사 활동을 하는 유영주 선교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싼값에 국경을 넘게 해주겠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돈만 날리는 사람도 있다"며 "피해를 호소하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 아무도 몰래 어딘가로 떠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후니오(22)는 "(미국) 대통령이 바뀐 이후 (미국이) 우리에 대해 호의적으로 대해줄 것이라는 게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말"이라며 "조만간 미국에 가게 되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과 멕시코 정부는 후니오처럼 희망을 품고 국경으로 모이는 이들이 앞으로 더 늘면서 혼란이 가중될까 긴장하고 있다.
당장 첫날부터 불법 입국자가 폭증하진 않았다는 게 미국 정부 집계지만, 멕시코 북부에 이주민이 몰리는 현상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망명이나 난민 신청 등 '적법한' 절차를 밟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거나 설령 망명이나 난민 신청까지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심사 등 처리시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 불법 월경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농후하다.
실제 42호 정책 종료 직전 미국 남부 국경에서는 불법 입국자가 많이 증가하면서, 당국은 최대 1만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 2만8천명을 모아 놓기도 했다.
미국 당국은 남부에 국경 관리 인력을 대거 늘려 감시 태세를 강화한 상태다.
기자가 센다 데 비다에 머무는 동안에도 텍사스 쪽 하늘에서는 잊을만하면 헬기가 돌아다니며 굉음을 뿜어냈다.
불법입국이라는 '엉뚱한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