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원계홍기념사업회
'지붕'. /원계홍기념사업회
“성곡미술관의 원계홍 전시, 정말 좋던데요.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전시에 결코 뒤지지 않아요.”

최근 미술계의 눈 밝은 평론가와 큐레이터들 사이에서 돈 얘기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한국 화가의 전시가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의 대규모 전시보다 좋다니, 자칫 ‘국뽕’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얘기다. 하지만 두 전시를 모두 본 관람객 중에서는 이런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다. 원계홍전의 구성과 규모, 작품 수준 모두 최상급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런 평가에 힘입어 성곡미술관은 오는 21일까지였던 ‘그 너머_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6월 4일까지 연장키로 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작가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전시를 연장하게 됐다”며 “큰 사랑을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 말대로 전시장은 늘 문전성시다. 미술 애호가로 소문난 BTS의 리더 RM이 인스타그램에 원계홍의 그림을 올리는 등 젊은 층 사이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원계홍 화백의 생전 사진.
원계홍 화백의 생전 사진.
원계홍(1923~1980)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파’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1978년 55세가 돼서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 공간화랑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열었다.

1980년에는 제3회 중앙미술대전에 초대작가로 작품을 출품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려 했던 그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다. 그의 나이 고작 57세였다.
'성북동 풍경'. /원계홍기념사업회
'성북동 풍경'. /원계홍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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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계홍과 호퍼의 작품을 함께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두 화가가 그린 주제와 표현 방식에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도시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그린 호퍼처럼 원계홍도 서울의 평범한 골목과 집을 화폭에 담았다.

‘홍은동 유진상가 뒷골목’(1979), ‘수색역’(1979), ‘장충동 1가 뒷골목’(1980) 등이 대표적이다. 복잡한 묘사보다는 단순한 터치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 구도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는 점, 왠지 모를 고독이 느껴진다는 점 등도 비슷한 점으로 꼽힌다.

오랜 기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던 원계홍의 작품은 눈 밝은 컬렉터인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과 김태섭 전 장로회신학대 학장의 관심으로 한데 모일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 원계홍의 작품이 100점이나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소장품을 흔쾌히 내준 덕분이다.
'수색역'. /원계홍기념사업회
'수색역'. /원계홍기념사업회
최재원 큐레이터는 “작품 값이나 명성은 호퍼가 훨씬 높지만, 그림 그 자체로만 보면 원계홍이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며 “미술계 ‘선수’ 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원계홍의 매력이 이번 기회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