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일상이 된, 그래서 불편한 1300원대 환율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는 상태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환율이 1200원, 1300원, 1400원을 돌파하고 1500원대까지 뚫을 기세로 올랐을 때보다는 위기감이 덜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편안한 환율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는 1990~2022년 환율이 나온다. 33년간 환율이 1300원을 넘은 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이 기간 평균 환율은 1063원이다. 이에 비하면 지금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즉 지금 원화 가치는 역사적 평균보다 너무 낮다.

작년에 환율이 뛸 때 주범은 ‘킹달러’였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달러 가치가 초강세였고, 거의 모든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였다. 원화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Fed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면서 킹달러 시대가 저물고 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 가치는 올 들어 지난 주말까지 0.8% 떨어졌다. 영국 파운드(3.8%), 스위스프랑(3.1%), 유로(2.4%), 캐나다달러(0.4%) 등 웬만한 선진국 통화는 올해 미국 달러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원화 가치는 이 기간 달러 대비 5.5% 주저앉았다. 일본 엔(-1.1%), 중국 위안(-0.9%), 호주달러(-1.1%)도 가치가 떨어졌지만, 하락 폭이 원화만큼 크지는 않다. 달러 약세 속에서 유독 원화만 더 약세를 보이는 것이다.

환율은 경제의 종합 성적표라고 한다. 나 홀로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저하를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당장 수출은 반도체 부진 등이 겹치면서 이달까지 8개월째 뒷걸음치고 있다. 무역수지는 15개월째 적자다. 재정적자는 1분기에만 54조원이 쌓였다. 올해 성장률은 잘해야 1%대 중반이 될 전망이다. 한·미 금리차는 역대 최대인 1.75%포인트로 벌어졌지만 경기 침체 우려 때문에 한은이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다.

대외 여건도 녹록지 않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미국 지방은행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금융위기 때 리먼브러더스 사태처럼 큰 쇼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성장 잠재력 저하도 문제다. 세계적으로 전례 없이 빠르게 저출산·고령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게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시도는 아직 더디기만 하다. 이런저런 요인이 합쳐져 1300원대 고환율이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외환당국이 당장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끌어내리려고 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환율을 떨어뜨리는 게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근본 해법은 단기적으로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장기적으론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고, 노동·연금·교육개혁을 통해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비할 수 있게 경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바로 튀어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그대로 죽는다고 한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는 단기 충격이었다. 위기감이 컸던 만큼 탈출도 빨랐다. 지금은 경제 체력이 서서히 나빠지는 ‘슬로모션 위기’다. 위기를 알아차리기 힘들고 그래서 더 치명적일 수 있다. 환율은 일종의 경보음이다. 어느덧 일상이 돼버린 1300원대 환율이 그래서 더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