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요금은 ㎾h당 8원, 가스요금은 MJ당 1.04원 인상하기로 한 것은 고육책인 동시에 미봉책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전기·가스료 정상화를 위한 행보는 평가할 만하지만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위기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동안 쌓인 적자와 미수금을 해소하기 위해선 올해 전기요금은 ㎾h당 51원, 가스요금은 MJ당 39원 인상이 필요한데 올 들어 각각 21원, 1원 오르는 데 머문 상황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어제 국회에서 전기·가스요금 관련 당정 협의를 마치고 “요금 인상 단가와 관련해선 급격히 인상하면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에 당정이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번 요금 인상이 정치적 결정임을 내비친 발언이다. 매번 당정협의회를 거쳐 요금 조정 폭을 결정하는 관례부터 비정상이다. 이렇게 전기·가스료를 결정하는 선진국은 없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개입은 가격 기능을 마비시켜 전력산업을 왜곡하고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결국 우리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다.

이 정도 인상 폭으로 에너지 소비 절감 효과를 기대만큼 거둘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7배 이상 많다. 반면 에너지원단위(경제 활동에 투입된 에너지 효율성)는 OECD 36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다. 에너지 다소비·저효율 국가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국내 에너지 소비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과소비를 해결하기 위해선 요금 정상화를 통한 가격신호 기능 회복이 필수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가격을 인위적으로 눌러온 탓에 국제 유가 급등에도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기형적 구조를 잉태했다.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지난해 3월 이후 14개월 연속 적자를 거듭하는 가운데 에너지 수입액 급증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비해 에너지 가격을 시장에 연동한 유럽연합(EU) 27개국의 지난해 전력 수요가 2809TWh로 전년 대비 2.7% 감소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정치가 손을 떼지 않는 한 전기·가스요금 정상화는 물론 국가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전력 생태계 회복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