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데리 에어'와 '유 레이즈 미 업'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원래부터 모든 것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습성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인간의 분류 행태는 지식을 학습하거나 체계를 구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물을 쉽게 이해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설명할 때, 19세기 중·후반 미국이 배경이고, 인디언이나 악당이 등장하며, 정의로운 총잡이 주인공이 힘을 합해 위기를 극복해가는 영화라고 시시콜콜하게 설명할 게 아니라, 그냥 “서부영화”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구획지어 놓은 ‘장르’라는 테두리는 어떤 것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빠르게 이해시키는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

대개 이런 장르는 학자들이나 평론가들이 만들어 내지만, 가끔은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구구절절 내용이나 특징을 설명하지 않아도 간단히 장르로 설명하면 소비자들은 금세 알아차리고 즉각적인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의 힘은 무수히 많은 종류가 존재하는 음악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팝, K팝, 록음악, 헤비메탈, 발라드, R&B, 댄스, 랩, 힙합, 소울, 포크, 블루스, 일렉트로닉, 컨트리, 뉴에이지, 월드뮤직, CCM, 트로트, 재즈, 클래식 등 음악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훨씬 더 세부적이고 자세한 장르를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유 레이즈 미 업 (You raise me up)’이라는 노래 또한 지금은 간단하게 ‘팝음악’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유례를 살펴보면 민속음악, 클래식, 뉴에이지 등 여러 장르를 거쳐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노래라는 걸 알 수 있다. 무려 100번 넘게 리메이크 됐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지금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다양한 목소리로 불리고 있다.

이 노래는 멋진 가사와 감미로운 멜로디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여전히 최신 음악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200여년 가까이 된 아일랜드 민요에서 비롯되었다. 북아일랜드의 항구도시인 ‘런던데리’ 지역에 퍼져 있던 이 민요는 19세기 중반 ‘제인 로스’라는 민요 채집가에 의해 채록되어 1855년 <아일랜드의 옛 노래들>이라는 악보집에 별다른 제목도 없이 피아노 연주용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이 음악이 각광을 받자, 런던데리 지역의 노래라는 의미를 담아 ‘런던데리 에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원래 가사가 없던 이 민요는 여러 사람에 의해 가사가 입혀지게 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913년 영국의 법조인이자 작가인 프레드 웨덜리가 가사를 쓴 ‘대니 보이(Danny Boy)’다. 이 노래는 전쟁터로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가사가 당시 세계대전을 치른 수많은 부모들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가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노래의 멜로디는 아일랜드 것인데 반해 가사는 영국인이 썼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아일랜드와 영국은 오래된 앙숙관계이다. 무려 800년 넘게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아일랜드로서는 자신들의 민요에 영국인이 가사를 붙인 ‘대니 보이’가 널리 알려지는 것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런던데리의 민요를 가장 먼저 레코딩한 건 다행히 아일랜드인이었다. 바로 1935년생 아일랜드 테너 존 맥코맥 (John McComack)이었다. 그는 더블린의 교회 합창단에서 성악을 시작해 아일랜드 최고의 음악과정을 거쳐 이태리 밀라노로 건너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친구 프리츠’로 데뷔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코벤트가든 오페라극장에서 최연소 주역가수로 활동했다. 그는 1909년 미국에 진출한 후에도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넬리 멜바와 함께 호주 순회공연의 주역 테너로 참가하기도 했다.
'런던데리 에어'와 '유 레이즈 미 업'
하지만 그가 당대 최고의 스타 테너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23년 오페라 무대를 떠나 콘서트 무대에서 아일랜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중후하고 우아한 목소리를 가졌지만, 연기력이 부족하고 레파토리가 많지 않았던 존 맥코맥은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면서 비로소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는데, 그건 영국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아픔을 달래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금은 불편했던 ‘대니 보이’ 가사 대신 ‘오, 메리 디어 (O Mary Dear)’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사랑하는 여인이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낸 존 맥코맥의 노래는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 자리잡은 수백만 이민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비좁은 오페라 극장을 떠나 수 만명이 모인 대중 앞에서 콘서트를 열었던 그는 마치 지금의 팝스타를 방불케 했다고 하는데,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광경이었다고 한다.

이 아일랜드 민요는 멀리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작곡가 현제명은 이 곡에 가사를 붙여 우리에게 소개했고,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되면서 ‘아, 목동아’라는 제목으로 음악시간에 자주 불리곤 했다. 한동안 잊혀지는가 싶던 이 노래는 2002년 뉴에이지 듀오 밴드 시크릿 가든에 의해 진화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작곡가이자 소설가인 브렌던 그레이엄 (Brendan Graham)이 쓴 가사에 시크릿 가든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유 레이즈 미 업 (You Raise Me Up)’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옷을 입게 된다. 브라이언 케네디가 객원 보컬로 참여한 이 곡이 많은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2003년 조쉬 그로반이 다시 리메이크한 노래가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부문’에서 6주간 1위를 차지하며 소위 ‘대박’이 나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웨스트 라이프가 리메이크한 버전 역시 ‘UK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최고 인기의 노래로 등극한다. 시크릿 가든과 웨스트 라이프는 후에 노벨 평화상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함께 연주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약 200여년 전 아일랜드의 런던데리 지역에서 울려퍼졌던 이 음악은 ‘런던데리 에어’, ‘대니 보이’, ‘오 메리 디어’를 거쳐 다양한 가수들이 부르는 ‘유 레이즈 미 업’으로 진화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다. 민요에서 가곡, 클래식, 뉴에이지, 팝 등 다양한 장르를 거쳤지만, 이 위대한 멜로디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여전히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에너지다. 요즘 뭐하나 되는 일도 없고,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실망시킨다면,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이 음악에 집중해보자. 수백 년간, 수백 만명을 위로해준 이 놀라운 음악 에너지가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테니까…

아일랜드 민요의 다양한 변천사



민요: Celtic Woman


클래식: John McCormack


가곡: 류정필 <아, 목동아>


뉴에이지: Secret Garden


: Josh Groban


팝: West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