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로 돌아가면 정치적 박해 예상돼…근거 있는 공포"
이집트서 종신형 받은 무슬림 단원…법원 "난민 인정해야"
중동의 이슬람주의 정파인 '무슬림형제단'은 100년 전인 1920년대에 결성됐다.

이슬람 샤리아법으로 지배하는 정치체계를 만드는 게 목표인 범아랍권 정치·사회단체다.

2011년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아랍의 봄) 당시에는 모하마드 무르시를 지지했고, 이듬해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르시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반대 세력에 의해 1년 만에 실각했다.

이집트 정부는 3개월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슬림형제단 단원들을 잇달아 체포했고, 이후 무슬림형제단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면서 단원 1천여명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집트인 A(29)씨도 무슬림형제단으로 활동한 부모의 영향으로 2008∼2011년 자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민주화 시위와 반 쿠데타 운동에도 동참해 이집트 정부를 비판했으며 여러 차례 체포 위협도 받았다.

2015년에는 살인미수와 정부 전복 시도 등 혐의로 2차례 종신형인 무기징역을 이집트 법원에서 선고받았다.

A씨는 체포되지 않으려고 인근 국가인 수단으로 밀입국했다가 2018년 3월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에 왔다.

그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받던 중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고, 한국에 머물면서 심사도 받았다.

그러나 한국 법무부는 2021년 7월 "A씨의 상황이 난민협약과 난민 의정서가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난민 불인정 결정을 했다.

법무부 결정이 부당하다며 한 달 뒤 행정소송을 낸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로 갔으나 소송은 계속 진행됐다.

A씨는 한국 법원에 낸 진술서를 통해 "한국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고 싶다"며 "난민인정 절차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집트로 돌아가면 구금되거나 박해받을 우려가 충분하다"며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한국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인천지법 행정1단독 남승민 판사는 A씨가 인천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남 판사는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이 A씨에게 한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모두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A씨가 이집트로 돌아갈 경우 자국 정부로부터 정치적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남 판사는 "A씨가 무슬림형제단 의장과 함께 찍은 사진, 형이 체포된 사진 등은 그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한다"며 "이집트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판결문도 (한국) 법원에 제출돼 있고 (마찬가지로) A씨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집트 상황과 인권 보고서 등을 보면 A씨가 무기징역을 받은 범죄를 실제로 저질렀는지도 의문"이라며 "오히려 보복 차원에서 악의적으로 기소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남 판사는 "피고는 A씨가 이집트로 돌아가 항소 절차를 통해 무고함을 밝히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무기징역형 집행이 바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근거 있는 공포로, 보호받을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