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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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신랑 이모씨(38·서울 서대문구)는 결혼식을 약 13개월 앞두고 최근 간신히 식장을 예약했다. 서울 중구 A웨딩홀을 희망했지만 낮 12시~오후 3시 등 주요 시간대는 1년 전에 벌써 마감된 상태였다. 부랴부랴 여러 웨딩홀을 수소문한 끝에 광화문 인근 B식장을 찾아냈다. B식장 관계자는 “서울 주요 예식장은 1년 치 예약이 벌써 꽉 찼다”며 “골든타임 예약을 위해 1년6개월 전에 예약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결혼 수요가 급증하자 1년 전 예식장 예약은 기본이고 예식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예식장 1인당 식대가 코로나 전에 비해 50~60% 급등한 바람에 예비부부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결혼 미뤘더니 예식비 폭등…"식대가 9만원"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혼인 건수는 1만7926건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3173건(21.5%) 늘었다.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수요가 몰리자 서울 주요 예식장 업체들은 가격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서울 광화문 A식장은 2019년 1인당 식대(갈비탕)가 5만3000원 선이었지만 현재 6만8000원 수준으로 약 28% 올랐다. 강남 B식장은 2018년 1인당 5만9000원이던 뷔페 가격이 현재 8만9000원으로 약 50% 뛰었다.

웨딩홀들은 보통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에 예상 하객 수를 파악하고 계약 당시에 기본 보증 인원을 설정한다. 결혼 수요가 늘자 웨딩업체들은 코로나 전보다 기본 보증 인원을 크게 높였다. 예약이 다급한 예비부부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예를 들어 B식장의 최소 보증 인원은 코로나 전에는 150~200명 선이었으나 요즘엔 300명으로 늘었다. 강남 B예식장은 최소 보증 비용이 2018년 885만원에서 5년 만에 2670만원으로 세 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됐다.

식장과 함께 결혼 준비 과정에 꼭 필요한 스튜디오·웨딩드레스·메이크업 등 소위 ‘스드메’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웨딩플래너들은 “매달 ‘스드메’ 상품의 가격이 조금씩 인상되는 구조”라며 “1년 전에 예약해야 그나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전통적인 결혼 문화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원하는 결혼식장을 구하기 어려워 예비부부들은 양가의 허락을 받기 전 식장부터 찾아다닌다. 경기 용인에 사는 배모씨(67)는 얼마전 30대 중반인 딸로부터 ‘결혼식 날을 잡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받아 당황했다. 배씨는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단 이야기를 얼마전에 들었는데, 며칠 뒤 갑자기 결혼식 날과 식장을 잡았다고 알려왔다”며 “보통 집안 어른 간 상견례를 한 뒤 결혼 날을 잡던 과거 문화가 이제는 180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웨딩전문업체 C사 측 관계자는 “결혼식장 잡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4~6개월 정도였던 결혼 준비기간이 기본 1년으로 늘어났다”고 했다.

늦어진 결혼 연령도 결혼문화 변화를 거들고 있다. 2021년 30대 신부 수가 처음으로 20대 신부 수를 넘어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여성 초혼 건수는 약 15만7000건으로 30대 7만6900건(49.1%), 20대 7만1263건(45.5%), 40대 6564건(4.2%) 순으로 집계됐다. 1990년에는 20대 여성 초혼(약 33만3000건)이 30대(1만9000건)보다 약 18배 많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대 흐름에 따라 가족의 역할도 변해가고 있다”며 “결혼을 장려하는 문화를 이어가려면 바뀌는 트렌드에 다 함께 맞추는 게 맞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