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환매) 규모가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를 통해 기업 경영진의 보너스는 늘어난 반면 개인 주식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제한적이라는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자산운용사 야누스 헨더슨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200개 상장사들이 지난해 총 1조3000억달러(약 17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만에 3배 가량 폭증했다. 반면 이들의 배당금 규모는 10년새 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야누스 헨더슨은 "올해에도 HSBC, 애플, 에어비앤비 등이 기록적인 자사주 매입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에 가장 많이 자사주를 매입한 업종은 에너지 업계다. 이들은 2021년 수치의 4배에 달하는 1350억달러의 자사주를 되사들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값이 치솟으면서 현금보유량이 급증하자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이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초과 현금을 주주에게 환원하고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을 넘어 유럽, 영국에서까지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전 세계 규제 당국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에선 자국 기업의 자사주 매입에 대해 1%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올해 1월부터 도입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환매세를 4배 인상할 것을 제안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상장기업들에 자사주 매입 건수와 평균 매입 가격 등 관련 정보를 자세히 공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뉴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유안 먼로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외형적으로 주당순이익을 끌어올리는 데만 골몰하느라 회사의 장기적인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 투자를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자사주 매입이 항상 주가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사주 매입 기업의 주가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펀드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 주식시장 상승률에 비해 저조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피델리티의 영국주식펀드매니저 리 힘스워스는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해도 주가 부양이 안되면 기업 현금만 소진되고 주주는 적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반론도 나온다. 일부 투자자들은 "자사주 매입은 주주배당보다 세금을 적게 낼 수 있고 세금 납부 시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고 옹호하고 있다. 린셀 트레인의 공동 설립자인 닉 트레인은 "자사주 매입의 장점은 매입 가격에 따라 다르지만 장기 투자자를 위해 부를 쌓을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업 자사주 매입 활동이 다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 S&P 500 지수에 속하는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지출 규모가 전년보다 15% 감소한 808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기업의 수익 성장세 둔화로 인한 현금 보유량 급감, 최근 은행권 스트레스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 증가 등이 주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