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일본 정부로부터 2000억엔(약 15억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일본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한다고 블룸버그가 18일 보도했다. 이번 합의는 이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 대표단과 만난 후 발표될 예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보조금으로 자사 히로시마 공장에 ASML의 최첨단 노광장비를 설치해 2024년부터 1감마(10나노급 6세대) 급 DRAM 반도체를 생산한다. 이번 계약으로 일본에 첫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도입될 전망이다. 히로시마 공장은 10여년 전 마이크론이 인수한 일본 반도체 기업 엘피다의 시설이다. 마이크론은 2013년 이후 일본에 1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왔다. 메흐로트라 CEO는 향후 몇 년간 일본에 최대 5000억엔을 추가로 투자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는 일본 정부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 첨단화의 첫번째 가시적 성과라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일본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만 TSMC가 구마모토현에 건설하는 공장 투자액의 최대 절반 정도인 5000억엔(약 5조18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도요타자동차, NTT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총 78억엔을 공동 출자해 최첨단 반도체의 국산화를 목표로 라피더스라는 반도체 기업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미국 IBM과 벨기에 소재 연구기관 IMEC와도 기술협력 제휴를 맺었다.

일본 정부의 지원은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의 탈 중국 정책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중국에 대한 첨단제품 수출 금지 등 조치를 내리자 중국은 마이크론에 대한 사이버보안심사를 개시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리서치 옴디아의 아키라 미나미카와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공장은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주요 7개국(G7)의 야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기업 웨스턴 디지털 역시 메모리 제품을 파트너사인 키옥시아(옛 도시바 반도체 플래시사업부)의 일본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의 대중국 재제로 어려움을 겪는 마이크론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미국의 유일한 메모리 제조사인 마이크론은 최근 업계가 공급 과잉에 직면해 지난 1분기에 2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달리 마이크론은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지 않았지만 제품의 판매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