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국 임상시험서 당뇨발 치료 효과 확인…"만성신부전·화상·피부암에 적용 확대"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인체조직 재생한다…난치병 치료 '성큼'"
인체 내 조직과 장기 등의 구조물을 3D프린터로 재현할 수 있는 '바이오프린팅' 기술이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돼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19일 의학계에 따르면 바이오프린팅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환자의 질병 치료에 필요한 인체 구조물을 정확하게 출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리는 일반 문서를 출력하는 프린터와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환자 자기 세포와 단백질 등의 생물학적 소재가 바이오 잉크로 사용되고, 출력물이 인공 심장과 혈관, 피부 등의 인체 조직이라는 게 다르다.

최근에는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치료용 패치 및 인체 삽입물에 대한 임상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업은 로킷헬스케어다.

이 회사는 바이오프린팅 기술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난치성 질환으로 꼽히는 '당뇨병성 족부궤양'(당뇨발) 치료에 쓸 수 있는 환자 맞춤형 패치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 패치는 의사가 태블릿으로 상처 부위를 촬영하고 머신러닝 모델을 통해 패치를 디자인한 뒤 3D 바이오프린터로 출력하는 방식이다.

의사 측면에서 보자면 환자의 당뇨발 부위를 촬영해 바이오프린팅 기기에 입력하면 간편하게 '환자 맞춤형 치료 패치'를 제작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과 미국, 인도 등 5개국에서 시행된 임상시험에서 이 기술은 인종, 나이, 환부의 크기나 위치에 상관없이 환자 맞춤형 패치 시술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됐다.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인체조직 재생한다…난치병 치료 '성큼'"
로킷헬스케어 김지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기존 치료 방식으로 수년간 낫지 않던 환부가 바이오프린팅으로 만든 패치를 부착한 후 완전히 재생됐다는 임상 결과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임상 결과는 국제학술지 '성형 및 재건수술(Plastic and reconstructive surgery Global open) 등 5편의 임상 논문으로 발표됐다.

미국 내 임상을 주도한 국제당뇨발협회(DFCon) 데이비드 암스트롱 회장(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의과대학 성형외과 교수)은 논문에서 "간단한 조작으로 편리하게 환자 맞춤형 치료 패치를 적용할 수 있었다"면서 "기존 치료 기술보다 탁월한 피부재생 효과를 관찰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환자의 지방세포를 잉크로 사용한 치료 패치는 어떠한 부작용도 나타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튀르키예 의료진은 임상 논문에서 "바이오프린팅으로 만든 당뇨발 패치와 기존 피부 이식을 비교한 결과, 패치를 적용한 환자는 피부가 빠르게 재생될 뿐만 아니라 피부 재건 중에 발생 될 수 있는 이차적인 피부 창상이나 피부 수축, 색소침착 등의 문제점이 없었다"면서 "피부가 처음과 같은 기능으로 완전히 재생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인체조직 재생한다…난치병 치료 '성큼'"
바이오프린팅을 활용한 피부 패치는 당뇨발 치료뿐 아니라 골관절염에서도 가능성을 나타냈다.

이집트에서 이뤄진 임상에서는 관절경을 통해 연골의 손상 부위를 촬영해 패치로 제작한 결과, 수술 이후 3개월째부터 환자의 골관절염지수(WOMAC)가 75% 감소한 것으로 관찰됐다.

의학계에서는 이런 환자 맞춤형 자가 패치 이식술이 당뇨발뿐만 아니라 화상, 욕창, 피부암 등에도 쓰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팀은 당뇨발과 골관절염 다음으로 만성신부전증에 주목하고 있다.

만성신부전증은 콩팥의 지속적인 손상으로 신기능이 감소한 상태로, 사구체 여과율이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신기능을 대체할 혈액투석이나 신장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번 투석을 시작하면 환자는 일주일에 3~4번씩 투석을 받아야 하며, 신장이식은 5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투석 시기를 늦춰줄 패치가 개발되면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실제 신부전을 일으킨 생쥐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 시험에서는 망가진 신장에 패치를 부착하자 섬유화(fibrosis)를 막는 효과가 관찰됐다.

김 CTO는 "신부전용 패치는 바이오프린팅과 AI 융합기술 치료 플랫폼에 '그물막'(omentum)이라는 바이오잉크가 더해졌다"면서 "이 그물막을 적용한 패치를 삽입하자 신장 섬유화에 관련된 유전자들의 발현이 줄어들고, 콩팥의 혈관 흐름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최근 상용화 가능성을 인정받아 서울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연구팀과 함께 범부처 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 과제(2023~2025년)로 선정됐다.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인체조직 재생한다…난치병 치료 '성큼'"
김 CTO는 "환자의 지방, 그물막 등에서 유래한 바이오잉크는 면역반응의 부작용을 유도하지 않아 면역거부반응을 막기 위한 면역억제제 복용이 필요 없는 것도 이점"이라며 "체내 조직이 함유한 줄기세포, 성장인자, 사이토카인 등이 복합적으로 환부에 작용함으로써 기존 단일요법으로 치료되지 않던 만성질환에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의학계에는 바이오프린팅 기술이 조만간 환자 치료에 대거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최근 바이오프린팅연구회를 발족했다.

강대희 바이오프린팅연구회 회장(서울의대 교수)은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융합된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만성질환자에게 새로운 치료의 패러다임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연구회를 통해 산업체, 연구기관, 병원의 협업을 이끌어 바이오프린팅과 재생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고 이를 통한 성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