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5 못 사도 중·러 못 버려…'기름 부자' UAE의 딜레마 [딥다이브 중동]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달 말, 한 달째 내전이 이어지며 600여명이 숨진 수단에서 우리 교민을 탈출시키기 위한 극비 작전이 수행됐습니다. 작전명은 '프라미스(Promise)'.
이 작전에서 우리 교민들이 탈출 지점인 수단 항만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1천킬로미터를 지켜주며, 결정적 도움을 준 나라가 있죠. 바로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아우른 영향력의 아랍에미리트입니다.
한국과 100년, 200년 함께해야 한다던 선대 통치자의 말을 이은 듯 실력자인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작전 수행과정에 "당신네 국민도, 우리 국민이다", 두 나라 사이를 상징하는 말을 남겼습니다. 바라카(Barakah) 원전 건설과 아크 부대로 에너지, 무기 교역에서 유난히 한국과 가까워 보이는 나라, 아랍에미리트. 하지만 실상은 더 복잡해 보입니다.
미국,이스라엘,인도와 함께 I2U2 협의체로 서방과 안보·경제 협력관계를 다지면서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원유 수출을 돕고, 중국의 인프라 사업의 후원자이기도 한 나라.
오늘은 중동 부자 대명사인 만수르의 고향이자, 첨단 건축물의 경연장, 태생부터 실리주의 외교의 끝판왕으로 불러야 할 '아랍에미리트'를 들여다봤습니다. ● 맨시티·요코하마 13개 구단 한 손에…'전쟁 대신 실리'로 큰 나라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자락의 아랍에미리트는 1971년과 72년에 걸쳐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움 알 콰인, 라스알카이마, 후자이라 등 7개 토호국이 연합해 만든 나라입니다.
본래 '바니 야스' 부족 시절부터 어업과 진주채취, 소규모 교역이 전부였던 아랍에미리트는 1958년 다스섬 인근 '더반'과 1966년 두바이 앞 해상에서 유전을 발견하면서 부국에 진입하게 됩니다. 다른 산유국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통합국가 출범 직후 70년대 오일쇼크로 수혜를 입었고, 2001년과 2014년 사이에만 국내총생산(GDP)은 4배씩 뛰는 고성장을 보여온 나라이기도 합니다. 1인당 GDP는 4만 4,741달러, 인구가 적은 아부다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약 9만 달러에 달합니다.
UAE 핵심 토호국이자 수도인 아부다비의 왕실 재산만 395조원으로, 이 자금을 쥔 만수르 알 나하얀 부통령 소유 기업 아래에 맨시티·요코하마 등 13개 씨티풋볼그룹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산유량(2022년 기준 928억 배럴, 세계 8위)으로 이렇게 빠른 발전을 보인 아랍에미리트는 아라비아반도의 맹주이자 같은 '순니파' 계열의 사우디와 지역 주도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위치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 '나오면 팔고, 아니면 말고'…탈석유 동력된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가 경쟁 국가로 의식하게 만든 또 다른 동력은 누가 뭐라해도 '두바이'입니다. 그런데 혹시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사실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 곳이라는 것, 알고 계신가요?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벤치마킹했다고도 알려진 부르즈 칼리파와 팜 쥬메이라 인공섬, 첨단 인공지능 기술 경연이 이뤄지는 곳이죠. 이런 두바이는 최대 강점이 원유도 관광도 아닌 '교역'입니다. 흔히 두바이유를 WTI,브렌트유와 함께 세계 3대 유종으로 불리지만 아라비아해와 맞닿은 지형 덕분에 아랍권 석유 운송과 현선물 거래를 하는 중심지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두바이도 1966년부터 석유를 생산했지만, 석유생산량이 자국의 4% 수준이고 20년내 고갈을 앞두고 있어 사실상 '나오면 파고, 아니면 다른 사업을 하겠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대신 전세계 교역항 순위 집계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제벨 알리(Jebel Ali) 항만이 있죠. 제벨 알리는 2021년 기준 물동량 1,370만TEU로 세계 12위의 대형 항만입니다. 7위의 한국 부산항보다 규모는 작지만 한때 10위권 안에도 들던 중동 물류 거점입니다. ● 이슬람 율법도 포기…아랍 첫 화상 탐사선 쏜 나라
UAE 총리이자 두바이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초기 원유 생산자금으로 1985년 이슬람 율법마저 예외를 인정한 제벨 알리(Jebel Ali) 항만을 비롯한 세계 최대 경제자유구역(JAFZ)과 부동산 사업을 키워 지금의 두바이를 만들었습니다.
외국인 지분 100% 소유, 법인세 0% 등 각종 면제와 10년 거주가 가능한 비자 등을 내세워 모간스탠리 등 전세계 10대 투자은행과 6천여곳이 넘는 다국적 기업을 유치했고,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바탕으로 화성탐사선 '아말'을 쏘아올리는 기술 개발의 터전으로 만들기도 했죠. 하지만 강소국 아랍에미리트의 성장 동력이어야 할 두바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도 위기 이후 10년째 성장 정체를 겪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국내총생산에서 두바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8% 수준, 고갈되는 원유를 눈앞에 둔 두바이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 석유 부국? 실상은 '에너지 빈국'…절실했던 '신의 축복'
자원이 넘쳐나고 부동산과 관광, 금융산업에서 두바이 이상의 개발상을 보여주고 있는 아부다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도 성장하는 경제와 달리 이를 뒷받침할 자국 에너지, 수자원 공급에서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죠.
아랍에미리트는 천연가스 매장량에서도 7조 8천억 입방미터로 세계 7위의 자원 부국이지만, 동시에 가스 소비량 세계 9위의 나라입니다. ADNOC가스를 통해 카타르 인근 가스전까지 개발했지만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에너지 순수입국 자리에 있습니다. 이유는 두바이를 복사하듯 만들어 앞으로 10배를 더 키우려는 ADGM 등 경제자유구역과 야스 등 인공섬 곳곳에 녹지 공원 등 사막 기후에서 유지하기 힘든 환경 때문입니다. 탈석유 산업으로 키우려한 세계 5위권 알루미늄 대기업인 EGA도 산업용수 수요도 적지 않죠. 자연스레 수자원을 공급할 해수담수화시설, 이를 운용하는 전력 생산 과정에 막대한 가스가 소비되는 구조입니다.
2030년 이후 원치 않아도 석유와 가스 의존을 줄여야하는 아랍에미리트의 입장에서는 최근 한국에 수주를 맡겨 상업 가동에 들어간 아부다비 서쪽 바라카 원전 4기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겁니다. '신의 축복'이라는 이름 처럼 바라카(Barakah) 원전은 아랍에미리트 전체 소비 전력의 25%를 공급할 수 있는 핵심 안보 수단으로 재조명받고 있죠. 아부다비 기준 석유 매장량으로 아직 100년은 버틸 수 있는 아랍에미리트지만, 이런 구조적인 약점을 극복하려 어느 산유국보다 빠르게 탈석유에 투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아랍에미리트는 무바달라, 아부다비투자청을 통해 혁신 산업에 투자하는 한편, 태양광 발전에서 중국, 일본과 협력하며 탄화수소 의존도를 지속해 줄여나갈 계획입니다.
● 러 원유 팔고, 中 전투기 사고…실리 찾아 움직이는 석유자본
갈길 바쁜 아랍에미리트에게 현실적인 문제는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중동 정책으로 인해 틀어지고 있는 지역의 안보입니다. 안정된 정치조직과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경제적인 성장을 구가한 아랍에미리트이지만, 최근 사우디-미국간 갈등으로 대표되는 동맹 구도에 큰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틈을 파고들어 자본과 기술을 내세워 손을 내미는 곳이 바로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아랍에미리트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를 중재하는 기지 역할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죠. 중동산 원유 터미널이 위치한 후자이라를 통해 6천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인 뒤 싯가대로 차액을 붙여 이득을 챙겨온 겁니다. 덕분에 온갖 서방의 규제에도 러시아산 원유 생산은 줄지 않고 있죠.
아랍에미리트의 정치적인 모호함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2015년 중국 주도의 AIIB, 2018년 일대일로 사업에 초기 멤버로 참여해온 덕분인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중국 화웨이에 대한 규제에도 자국 통신망에 중국산 제품을 들여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지난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와 체결이 임박했던 록히드마틴의 5세대 전투기 F-35 수출을 보류하데, UAE는 아예 구매를 포기해버립니다. 대신 무기시장에서 늘 외면받던, 4.5세대 전투기인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Rafale) 80대 구매 계약을 맺는 이례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올해 초 고등훈련기 시장에서도 수주 경험이 없던 중국의 다목적전투기 L-15기 48대 구매 계약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짧게는 20년뒤부터 시작될 '석유없는 시대' 준비를 시작한 아랍에미리트 입장에서 미국만 의존하기에 시간도 자본도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동시에 아라비아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기도 하죠. 그 균열을 메워주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있죠.
백년 전부터 실리적인 외교로 전쟁을 피해 나라를 지키고, 산업을 키워온 아랍에미리트가 바라는 건 오로지 지역의 긴장 완화와 아랍권의 통합입니다. 지역 내 입김이 약해진 미국이 아니더라도 이들에게는 37조 원어치 기술을 공유할 한국이든, 무기와 통신사업 등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 인도든 그들의 미래를 담보할 신뢰깊은 나라 외에 누구도 필요치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
이 작전에서 우리 교민들이 탈출 지점인 수단 항만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1천킬로미터를 지켜주며, 결정적 도움을 준 나라가 있죠. 바로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아우른 영향력의 아랍에미리트입니다.
한국과 100년, 200년 함께해야 한다던 선대 통치자의 말을 이은 듯 실력자인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작전 수행과정에 "당신네 국민도, 우리 국민이다", 두 나라 사이를 상징하는 말을 남겼습니다. 바라카(Barakah) 원전 건설과 아크 부대로 에너지, 무기 교역에서 유난히 한국과 가까워 보이는 나라, 아랍에미리트. 하지만 실상은 더 복잡해 보입니다.
미국,이스라엘,인도와 함께 I2U2 협의체로 서방과 안보·경제 협력관계를 다지면서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원유 수출을 돕고, 중국의 인프라 사업의 후원자이기도 한 나라.
오늘은 중동 부자 대명사인 만수르의 고향이자, 첨단 건축물의 경연장, 태생부터 실리주의 외교의 끝판왕으로 불러야 할 '아랍에미리트'를 들여다봤습니다. ● 맨시티·요코하마 13개 구단 한 손에…'전쟁 대신 실리'로 큰 나라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자락의 아랍에미리트는 1971년과 72년에 걸쳐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움 알 콰인, 라스알카이마, 후자이라 등 7개 토호국이 연합해 만든 나라입니다.
본래 '바니 야스' 부족 시절부터 어업과 진주채취, 소규모 교역이 전부였던 아랍에미리트는 1958년 다스섬 인근 '더반'과 1966년 두바이 앞 해상에서 유전을 발견하면서 부국에 진입하게 됩니다. 다른 산유국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통합국가 출범 직후 70년대 오일쇼크로 수혜를 입었고, 2001년과 2014년 사이에만 국내총생산(GDP)은 4배씩 뛰는 고성장을 보여온 나라이기도 합니다. 1인당 GDP는 4만 4,741달러, 인구가 적은 아부다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약 9만 달러에 달합니다.
UAE 핵심 토호국이자 수도인 아부다비의 왕실 재산만 395조원으로, 이 자금을 쥔 만수르 알 나하얀 부통령 소유 기업 아래에 맨시티·요코하마 등 13개 씨티풋볼그룹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산유량(2022년 기준 928억 배럴, 세계 8위)으로 이렇게 빠른 발전을 보인 아랍에미리트는 아라비아반도의 맹주이자 같은 '순니파' 계열의 사우디와 지역 주도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위치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 '나오면 팔고, 아니면 말고'…탈석유 동력된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가 경쟁 국가로 의식하게 만든 또 다른 동력은 누가 뭐라해도 '두바이'입니다. 그런데 혹시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사실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 곳이라는 것, 알고 계신가요?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벤치마킹했다고도 알려진 부르즈 칼리파와 팜 쥬메이라 인공섬, 첨단 인공지능 기술 경연이 이뤄지는 곳이죠. 이런 두바이는 최대 강점이 원유도 관광도 아닌 '교역'입니다. 흔히 두바이유를 WTI,브렌트유와 함께 세계 3대 유종으로 불리지만 아라비아해와 맞닿은 지형 덕분에 아랍권 석유 운송과 현선물 거래를 하는 중심지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두바이도 1966년부터 석유를 생산했지만, 석유생산량이 자국의 4% 수준이고 20년내 고갈을 앞두고 있어 사실상 '나오면 파고, 아니면 다른 사업을 하겠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대신 전세계 교역항 순위 집계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제벨 알리(Jebel Ali) 항만이 있죠. 제벨 알리는 2021년 기준 물동량 1,370만TEU로 세계 12위의 대형 항만입니다. 7위의 한국 부산항보다 규모는 작지만 한때 10위권 안에도 들던 중동 물류 거점입니다. ● 이슬람 율법도 포기…아랍 첫 화상 탐사선 쏜 나라
UAE 총리이자 두바이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초기 원유 생산자금으로 1985년 이슬람 율법마저 예외를 인정한 제벨 알리(Jebel Ali) 항만을 비롯한 세계 최대 경제자유구역(JAFZ)과 부동산 사업을 키워 지금의 두바이를 만들었습니다.
외국인 지분 100% 소유, 법인세 0% 등 각종 면제와 10년 거주가 가능한 비자 등을 내세워 모간스탠리 등 전세계 10대 투자은행과 6천여곳이 넘는 다국적 기업을 유치했고,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바탕으로 화성탐사선 '아말'을 쏘아올리는 기술 개발의 터전으로 만들기도 했죠. 하지만 강소국 아랍에미리트의 성장 동력이어야 할 두바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도 위기 이후 10년째 성장 정체를 겪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국내총생산에서 두바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8% 수준, 고갈되는 원유를 눈앞에 둔 두바이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 석유 부국? 실상은 '에너지 빈국'…절실했던 '신의 축복'
자원이 넘쳐나고 부동산과 관광, 금융산업에서 두바이 이상의 개발상을 보여주고 있는 아부다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도 성장하는 경제와 달리 이를 뒷받침할 자국 에너지, 수자원 공급에서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죠.
아랍에미리트는 천연가스 매장량에서도 7조 8천억 입방미터로 세계 7위의 자원 부국이지만, 동시에 가스 소비량 세계 9위의 나라입니다. ADNOC가스를 통해 카타르 인근 가스전까지 개발했지만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에너지 순수입국 자리에 있습니다. 이유는 두바이를 복사하듯 만들어 앞으로 10배를 더 키우려는 ADGM 등 경제자유구역과 야스 등 인공섬 곳곳에 녹지 공원 등 사막 기후에서 유지하기 힘든 환경 때문입니다. 탈석유 산업으로 키우려한 세계 5위권 알루미늄 대기업인 EGA도 산업용수 수요도 적지 않죠. 자연스레 수자원을 공급할 해수담수화시설, 이를 운용하는 전력 생산 과정에 막대한 가스가 소비되는 구조입니다.
2030년 이후 원치 않아도 석유와 가스 의존을 줄여야하는 아랍에미리트의 입장에서는 최근 한국에 수주를 맡겨 상업 가동에 들어간 아부다비 서쪽 바라카 원전 4기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겁니다. '신의 축복'이라는 이름 처럼 바라카(Barakah) 원전은 아랍에미리트 전체 소비 전력의 25%를 공급할 수 있는 핵심 안보 수단으로 재조명받고 있죠. 아부다비 기준 석유 매장량으로 아직 100년은 버틸 수 있는 아랍에미리트지만, 이런 구조적인 약점을 극복하려 어느 산유국보다 빠르게 탈석유에 투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아랍에미리트는 무바달라, 아부다비투자청을 통해 혁신 산업에 투자하는 한편, 태양광 발전에서 중국, 일본과 협력하며 탄화수소 의존도를 지속해 줄여나갈 계획입니다.
● 러 원유 팔고, 中 전투기 사고…실리 찾아 움직이는 석유자본
갈길 바쁜 아랍에미리트에게 현실적인 문제는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중동 정책으로 인해 틀어지고 있는 지역의 안보입니다. 안정된 정치조직과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경제적인 성장을 구가한 아랍에미리트이지만, 최근 사우디-미국간 갈등으로 대표되는 동맹 구도에 큰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틈을 파고들어 자본과 기술을 내세워 손을 내미는 곳이 바로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아랍에미리트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를 중재하는 기지 역할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죠. 중동산 원유 터미널이 위치한 후자이라를 통해 6천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인 뒤 싯가대로 차액을 붙여 이득을 챙겨온 겁니다. 덕분에 온갖 서방의 규제에도 러시아산 원유 생산은 줄지 않고 있죠.
아랍에미리트의 정치적인 모호함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2015년 중국 주도의 AIIB, 2018년 일대일로 사업에 초기 멤버로 참여해온 덕분인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중국 화웨이에 대한 규제에도 자국 통신망에 중국산 제품을 들여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지난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와 체결이 임박했던 록히드마틴의 5세대 전투기 F-35 수출을 보류하데, UAE는 아예 구매를 포기해버립니다. 대신 무기시장에서 늘 외면받던, 4.5세대 전투기인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Rafale) 80대 구매 계약을 맺는 이례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올해 초 고등훈련기 시장에서도 수주 경험이 없던 중국의 다목적전투기 L-15기 48대 구매 계약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짧게는 20년뒤부터 시작될 '석유없는 시대' 준비를 시작한 아랍에미리트 입장에서 미국만 의존하기에 시간도 자본도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동시에 아라비아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기도 하죠. 그 균열을 메워주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있죠.
백년 전부터 실리적인 외교로 전쟁을 피해 나라를 지키고, 산업을 키워온 아랍에미리트가 바라는 건 오로지 지역의 긴장 완화와 아랍권의 통합입니다. 지역 내 입김이 약해진 미국이 아니더라도 이들에게는 37조 원어치 기술을 공유할 한국이든, 무기와 통신사업 등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 인도든 그들의 미래를 담보할 신뢰깊은 나라 외에 누구도 필요치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