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라카' 끝난 토요일 밤 '주취 대학생' 순찰차로 집앞까지
"눈 좀 떠보세요!"…엔데믹에 대학축제 절정, 경찰은 골머리
[르포] 귀가 돕는 경찰관에 욕설만…신촌지구대 주말 7시간
"선생님! 일어나보세요!" "지X마 X발."
21일 오전 3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민속주점 안 복도에 누워있던 대학생 A(24)씨가 자신을 깨워 귀가시키려는 경찰관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혼자도 아니었다.

함께 술을 마신 B(23)씨가 요지부동인 A씨를 도저히 혼자서 옮길 수 없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A씨를 부축해 순찰차 뒷좌석에 눕히고 6분간 달려 마포구 연립주택 앞에 도착했다.

B씨가 위치를 알고 있어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몇 호에 사는지는 몰랐다.

팔을 가볍게 주무르며 깨워보려는 경찰관에게 되돌아오는 건 또 욕설뿐이었다.

건물 입구까지 20m를 걷는 데 경찰관 2명이 양쪽에서 거들어야 했다.

경찰은 스마트폰 얼굴인식 잠금을 풀어보려 했으나 A씨가 눈을 뜨지 못했다.

A씨 앞으로 배달된 우편물을 찾으려 우편함에 쓰레기 더미까지 뒤져봤지만 허사였다.

경찰은 결국 A씨를 다시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돌아갔다.

A씨는 의자를 이어붙여 만든 간이침대에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정부가 사실상 코로나19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선언하자 대학가에는 4년 만에 축제 분위기가 절정이다.

대학가를 담당하는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는 뒤풀이 과정에서 쏟아지는 주취자들을 귀가시키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자는 토요일인 20일 오후 9시부터 21일 오전 4시30분까지 연세대를 포함해 서대문구 창천동·대현동을 관할하는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 경찰관들과 동행했다.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응원단 주최 축제 '아카라카를 온누리에'(아카라카)가 끝난 뒤였다.

신촌 일대 술집마다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앞서 아카라카 티켓 1만1천200장은 암표가 10배 넘게 뛰면서 모두 팔렸다.

[르포] 귀가 돕는 경찰관에 욕설만…신촌지구대 주말 7시간
0시40분께 "주취자가 길거리에 앉아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지구대에서 약 1.5㎞ 떨어진 한 피자집 앞 인도에서 도착해보니 한 남성이 뒤로 넘어졌는지 뒤통수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C씨는 주소를 묻는 경찰관에게 "왜 범죄자 취급하고 그러냐. 짜증 난다.

X발 내가 뭘 잘못했냐"며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거부했다.

경찰관들은 순찰차에 다시 타고 그가 별일 없이 귀가하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한 경찰관은 "술에 취한 사람이 스스로 귀가할 수 있는지 판단기준은 보행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이라고 했다.

C씨는 똑바로 걷지도 못할 뿐더러 그새 행인과 시비를 벌였다.

경찰은 결국 C씨와 행인을 떼놓고 나서야 철수할 수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 C씨를 귀가시키기까지 약 40분이 걸렸다.

지구대로 돌아가는 순찰차 안에서 다시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창천동의 한 호텔 앞에서 세워진 오토바이를 넘어뜨려 파손했다며 오토바이 주인이 112에 신고했다.

"XX 죽일 수도 없고 진짜!" 재물손괴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D(29)씨는 오전 1시50분께 지구대에 끌려가서도 알 수 없는 고성과 욕설을 내뱉었다.

경찰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는 D씨를 서대문경찰서로 보냈다.

[르포] 귀가 돕는 경찰관에 욕설만…신촌지구대 주말 7시간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취자 관련 신고는 97만6천392건이다.

하루 평균 2천675명의 귀가나 응급구호를 위해 경찰이 출동하는 셈이다.

엔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풀리면서 '집에 데려다 달라'는 112 신고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선 경찰관들은 주취자 신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인사불성 상태여서다.

신촌지구대 4팀 권순도(30) 순경은 "현장에 출동하면 주취자의 30∼40%가 욕설을 한다"고 전했다.

이성열(49) 경위는 "출동해서 보니 신고한 일행이 이미 현장을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신고자가 지인의 안전을 경찰에 떠넘기고 사라지면 신원 확인에만 두세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경찰은 업무용 스마트폰인 '폴리폰'의 지문 스캔 애플리케이션으로 주취자 신원을 1분 안에 확인하는 시스템을 올해 10월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이달 11일 대구의 한 대학 축제에서 술에 취한 20대 대학생이 소란을 피우다가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경찰 내에서는 보호조치와 별개로 불법행위는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경범죄처벌법상 주취소란에 1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권 순경은 "주취자가 욕설과 물리력을 행사해 공무집행방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며 "일반 시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일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신촌지구대 4팀장 서윤상(58) 경위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자발적으로 술을 절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