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세종도서 1년 예산 84억인데 주먹구구”
'출판계 최대 정부 지원사업'인 세종도서 선정 및 운영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개편된다. 정부는 해마다 '우수도서'들을 세종도서란 이름으로 선정한 뒤 84억원 규모로 구입한다. 이렇게 사들인 책은 도서관 등에 배치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이 불투명하게 운영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뒤늦게 손질을 예고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1일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사업 전반에 투명성 부족, 방만‧부실 운영 등 심각한 문제점이 누적된 걸 파악하고 구조개편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종도서 사업은 매년 교양부문 550종, 학술부문 400종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연 84억여 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선정되면 1종당 800만원어치 책을 사서 도서관 등에 전달하기 때문에 각 출판사들은 세종도서에 선정되기 위해 공을 들인다. 작년 교양부문은 8698종이 응모해 15.8대1의 경쟁률 기록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이 사업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명칭에 변화는 있었지만 우수도서를 선정, 책을 구입해준다는 지원사업의 큰 틀은 수십년간 유지됐다.

세종도서 사업은 그동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총괄해왔다. 문체부는 출판진흥원의 사업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문체부 측은 "세종도서 사업은 ‘기획의 독창성’, ‘내용의 충실성’ 등을 평가항목으로 정했지만, 각 항목에 대한 배점표가 없고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구성돼 사실상 개별 심사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운영돼왔다"고 했다.

또 심사위원 자격요건도 '학술 및 교양 부문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강사 이상으로 교육 경력 2년 이상' 등 모호하고 검증절차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운영 문제로 인해 출판계 안팎의 불만이 누적됐다는 게 문체부의 설명이다. 그간 세종도서 사업에 탈락한 출판사 등이 심사기준과 선정사유를 공개할 것을 요구해도 진흥원은 선정 도서에 대한 도서평, 총평만 공개해왔다.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 관계자는 "세종도서 사업의 운영을 두고 불만이나 민원이 해마다 적지 않았고, 우수도서가 아니라 출판사를 위한 일종의 경영 지원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었다"며 "이렇게 되면 독자들이 세종도서에 신뢰감을 갖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지난 3월 출판진흥원에 보완을 요구했고, 현재 개편안을 마련하기 위한 의견 수렴을 진행 중이다. 문체부는 출판계 등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 안에 개편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올해 사업은 중단되는 걸까. 그건 아니다. 예산을 이미 확보한 만큼 올해 사업은 84억5000만원 규모로 집행한다. 다만 수요처인 도서관, 지자체 시설 등에서 책 추천을 받은 뒤 이를 추려서 세종도서를 정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장기적인 개편 방향으로는 출간된 책이 아닌 도서 기획 단계에서 지원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 관계자는 "도서관 도서구입비 지원 등 타 사업과의 중복 문제도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출판진흥원을 공개 질책했다. 박 장관은 “세종도서 타이틀은 독서문화시장에 ‘양서’라는 평판을 확보해주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가 그 출발점"이라며 "그동안 출판진흥원이 이를 소홀히 한 것은 치명적이며, 리더십의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 것으로 사업의 구조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리더십'을 언급한 걸 두고 전 정권에서 2021년 임명한 김준희 원장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출판진흥원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김 원장의 임기는 2024년 12월까지 3년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