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현이 21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물세례를 맞으며 환호하고 있다.   KPGA 제공
백석현이 21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물세례를 맞으며 환호하고 있다. KPGA 제공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10년 차 백석현(33)이 생애 첫 번째 우승을 거두며 무명의 설움을 날렸다.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를 달리며 ‘노장의 반란’을 준비했던 최호성(50)은 뒷심이 부족했다.

백석현은 21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에서 열린 SK텔레콤오픈(총상금 13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3개에 이글 1개, 버디 3개를 잡아 2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71타로 이태훈(33·캐나다)을 1타 차이로 꺾고 우승컵을 안았다. 1라운드부터 줄곧 리더보드 최상단을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다. 이번 우승으로 거머쥔 상금 2억6000만원은 그가 앞서 출전한 48개 대회에서 벌어들인 상금 총액 2억3051만원보다 많다.

백석현은 해외파다. 중학교 때 태국으로 이민해 2008년 아시안투어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아시안투어와 일본에서 주로 활동한 그는 군 복무 직후 코로나19가 터진 2021년 코리안투어로 무대를 바꿨다. 하지만 이렇다 할 활약은 없었다. 작년 최종 순위는 60위(제네시스 포인트 기준). 올해 시드를 확보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백석현은 우리가 아는 백석현이 아니었다. 퍼팅이 확 좋아진 덕분이다. 퍼팅을 잘 못했던 그는 이번 대회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공 대신 홀을 보면서 스트로크하는 ‘노룩 퍼팅’으로 바꾼 것. 몸이 기억하는 본능적인 거리감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조던 스피스(미국)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4m 이내 퍼트를 볼이 아니라 홀컵을 보고 때리니 결과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백석현의 평균 퍼팅 횟수는 1.64회로 공동 3위를 기록했다. 대회 평균(1.82회)보다 훨씬 좋았다. 이 덕분에 그린 적중률(61.11%)과 페어웨이 안착률(50%)이 각각 58위, 64위에 그쳤는데도 우승할 수 있었다.

노룩 퍼팅은 최종 라운드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날 최호성과 1타 차 공동선두로 경기에 나선 그는 압박감 탓에 경기 초반 샷이 흔들렸지만 퍼팅으로 막았다.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오늘도 4m 안으로는 노룩 퍼트를 했다. 이 덕분에 파 세이브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룩 퍼팅으로 3번홀까지 위기를 넘긴 그는 4번홀(파5) 이글, 5번홀(파3) 이글로 3타 차까지 달아났다.

하지만 첫 승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이태훈이 후반 들어 추격에 속도를 내며 마지막 홀을 앞두고 2타 차로 좁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백석현의 18번홀(파4) 티샷이 페널티 구역에 빠졌다. 1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마저 벙커에 빠졌다. 역전 위기에 몰린 상황. 하지만 벙커에서 친 네 번째 샷이 핀 50㎝ 옆에 붙으면서 보기로 막아내 1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백석현은 “정작 챔피언 퍼트 때는 노룩 퍼트를 못 했다. 너무 긴장돼서 홀도, 공도 보지 못했다. 손이 너무 떨려 손만 보고 쳤다”며 웃었다. 그는 “노룩퍼팅은 답답한 마음에 사용한 임시방편”이라며 “다음 대회부터는 원래대로 공을 보고 스트로크하는 일반적인 퍼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 4개월 차인 그는 “지난해 12월 결혼 후 처음 TV 중계화면에 잡혔다”며 “부모님, 장인·장모님, 그리고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최호성은 막판에 힘이 빠졌다. 채를 낚아채는 듯한 독특한 스윙으로 ‘낚시꾼 스윙’이라는 별명을 지닌 그는 오는 9월 만 50세로 시니어투어 출전 자격을 얻게 되는 진짜 ‘노장’이다. 최종 라운드를 공동 1위로 시작했지만 이날 하루 4타를 잃고 공동 11위(7언더파 277타)로 주저앉았다. ‘한국 골프 전설’ 최경주는 이날 이븐파를 기록하며 공동 19위(5언더파 279타)로 대회를 마쳤다.

서귀포=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