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호주, 인도 등 ‘넥스트 G7(차세대 G7 후보국)’이 신(新)국제질서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G7이 ‘넥스트 G7’에 협력을 요청하는 양상으로 회담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국·인도·호주…'넥스트 G7'으로 쏠리는 눈
이번 회담에는 ‘G8’의 유력 후보인 한국을 비롯해 호주, 인도, 각 지역 연합 의장국 등 8개국이 초청됐다.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국제 질서를 주도할 힘을 잃어가는 G7이 넥스트 G7 국가에 구원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G7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64%에서 2022년 44%로 급감했다. 그사이 중국과 러시아의 비중은 5%에서 20%로 늘었다.

예상을 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넥스트 G7 국가를 끌어들여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G7의 구상이 극적으로 나타난 장면으로 꼽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참가국 정상들을 만나 지원을 호소함으로써 그동안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이던 인도와 베트남의 입장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인도와 내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넥스트 G7’에 대한 G7의 구애는 정상회의의 구성도 크게 바꿔놨다. 우선 회의 의제가 10개로, 역대 G7 정상회의 중 가장 많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코로나19 방역, 생성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진전 등 머리를 맞대야 할 지구적인 과제가 늘었기 때문이다.

G7 회의에서 처음 독립 의제로 다뤄진 경제 안전보장은 급격한 글로벌 정세 변화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경제 안보’라는 단어는 지난해 독일 엘마우 정상회의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번 회의에서 G7 회원국은 중국을 보다 직접적으로 겨냥해 무역과 투자 제한을 무기로 상대국에 경제적인 압력을 가하는 행위에 대항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의제가 다양해진 만큼 ‘넥스트 G7’에 대한 의존도도 커질 수밖에 없다. 10개 정상회의 의제 가운데 3개가 참가국 정상이 함께하는 확대 정상회의로 이뤄졌다. 지금까지는 2회가 가장 많았다.

정상회의 성과를 정리한 공동성명에서도 넥스트 G7 국가의 위상이 확인된다. G7은 지금까지 신흥국·개발도상국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글로벌 사우스’란 표현을 공동성명에서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 신흥국을 내려다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동반자’를 뜻하는 ‘파트너’를 썼다.

파트너란 표현이 사용된 빈도도 지난해 독일 엘마우 정상회의 공동선언의 36회에서 66회로 약 두 배로 늘었다.

히로시마=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