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를 '출판사 마을' 만드는 이곳…책 만드는 이들의 학교 겸 놀이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구은서의 책이 머무는 집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의 책 전시 및 큐레이션 공간. (사진: 타별 / 사진 제공: 플랫폼P)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
서울시 마포구 신촌로2길 19 2~3층
"출판사들은 왜 마포구에 모여 있어요?" 햇병아리 문학기자의 첫 번째 궁금증이었습니다.
"글쎄…. 워낙 오래 전부터 이 동네로 출판인들이 모여 들었는데…." 출판사 사람들도 명쾌한 답을 주지는 못했어요. 과거에는 임대료가 저렴했으니까, 대학가라서, 인쇄소가 모여 있는 파주로 넘어가기 상대적으로 수월한 위치라서, 마포구에 있는 또 다른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독립해서, 한국출판인회의가 세운 출판학교(SBI)가 마포구에 있어서…. 테이블 위에는 이런저런 추측만 난무했죠.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마포구에 출판사가 유독 많다는 건 숫자로 분명하게 드러나요.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 소재 서적출판업 사업체의 16.8%가 마포구에 있어요. 전체 25개 구(區) 가운데 1위를 기록했어요(2021년 기준). 20년 가까이 매년 가을 홍대 거리에서 책 축제 '와우북페스티벌'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덕분이고요.

이곳에는 현재 52개사가 입주해 있어요. 입주사 모집 공고 당시 5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이죠. 그 중에는 1인 출판사 레모도 있는데,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일찌감치 국내에 소개해 '선구안'을 인정 받은 곳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달까지 가자> 등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 소설가 장류진도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선배 출판인들은 이곳으로 찾아와 '꿀팁'을 후배들에게 나눠줍니다. '1인 출판사를 위한 계약서 작성법' 같은 노하우를 강연해요.
맹수현 출판사 핌 대표는 창작자(시나리오 작가)로 입주했다가 이곳 강연 덕에 '출판사 할 결심'을 낸 경우입니다. 그는 "입주 초반 플랫폼P에서 진행되는 강연, 세미나를 쫓아다니다가 마침 책으로 묶고 싶은 원고가 있어 직접 마포구에 출판사등록을 하게 됐다"며 "출판사 핌은 플랫폼P가 낳았다고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왜 이런 공간이 필요할까요. 출판은 종합 예술이자 종합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기획, 저자 계약, 디자인, 인쇄, 유통 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첫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는 하다 못해 책에 넣을 가름끈 샘플, 표지를 꾸밀 금박 샘플조차 구하기 쉽지 않아요. 플랫폼P에는 참고할 수 있는 샘플과 책이 있고, 관련 조언도 구할 수 있죠.
혼자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저자 강연이나 북토크,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나 해외 출판인들과의 교류도 플랫폼P를 통하면 가능합니다. 이렇게 성장한 출판사는 다시 마포구의 예비출판 창업자를 지원하는 든든한 선배가 되겠죠.
각자의 경험을 나눈 덕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죠. 김 대표는 작년 말 첫 책으로 노순택 사진집 <말하는 눈>을 낼 때 익숙한 4도 인쇄(빨강·파랑·노랑·검정 네 가지 잉크를 기본으로 한 인쇄)를 택하려다가 사진 잡지를 내는 보스토크 프레스의 조언 덕에 5도 인쇄(4도 인쇄에 별색 추가)로 더 선명한 사진을 실을 수 있었죠. 거꾸로 김 대표도 '교정교열 세미나'를 열어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기도 했고요.
그런데 출판인들은 3년도 안 된 이 공간이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찾아간 플랫폼P 한켠에는 시위피켓과 플랜카드가 쌓여 있었어요. 3년 사이 구청장이 바뀌었는데, 지난 3월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이 공간의 용도변경, 입주 조건 수정 등을 내비쳤거든요. 신규 입주사도 선발하지 않고 있어요.
마포구의 입장은 구 예산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니 마포구 주민에게만 플랫폼P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조현익 플랫폼P입주사협의회장은 "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았으니 조례에 어긋나는 데다가, 마포구에 살지만 않을 뿐 마포구에 사업자등록을 한 출판인까지 배제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대표는 "오로지 출판일을 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낯선 마포구로 이사를 왔다"며 "신규 유입을 막는 조건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어요.
마포구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당장 7월부터 플랫폼P 입주사가 절반으로 쪼그라들게 돼 설립 취지가 무색해질 지경이에요.

지난 13일 플랫폼P에서는 이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마포 책소동' 행사가 열렸어요. 입주사와 그들의 책을 소개하고, 사진 촬영, 그림 그리기처럼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강연 프로그램도 열었어요. 동네책방 사장, 출판인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 그들과 함께 일하기를 꿈꾸는 작가, 디자이너와 번역가….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책을 아끼는 독자들이 플랫폼P를 채웠습니다. 이날 하루에만 1000명가량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 공간의 가능성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장면이 있을까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