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강 'JY네트워크'…이건희 회장과 달리 적극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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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제왕' 이건희 선대회장과 달리 사교에 능해
마크 저커버그, 팀 쿡, 일론 머스크, 빈 살만까지
글로벌 톱티어 수준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자랑
“한국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만 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사람이 또 있을까요?”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 회장에 대해 한 말이다. 이 회장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 중에서 ‘기업인 이재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로 ‘네트워크’, 즉 인맥이 꼽힌다. 이 회장은 ‘은둔의 제왕(The Hermit King)’으로 불린 이건희 선대회장과 달리 대외활동에 적극적이다. 이 회장의 네트워크는 글로벌 톱티어(일류) 수준으로 평가된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인물까지 선이 닿아 있고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뜻이다. 마크 저커버그(메타), 제프리 이멀트(GE), 팀 쿡(애플), 일론 머스크(테슬라) 등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의 네트워크는 비단 자신과 삼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국가 자산 역할까지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백신을 조기 도입하는 데 도움을 달라”며 급박하게 삼성에 SOS를 쳤다. 이 회장은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온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어도비(Adobe)의 샨타누 나라옌 회장을 통해 화이자 최고위 경영진과 정부·삼성 관계자들의 화상 미팅을 성사시켰다. 나라옌 회장은 화이자 사외이사를 맡고 있어 경영진과 선이 닿았다. 삼성은 ‘주사기 공급’을 당근책으로 내세워 화이자를 설득했다. 당초 2021년 3분기 한국에 물량을 공급할 예정이었던 화이자는 그해 3월 50만 명분 백신을 내줬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정·재계 리더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의 밤’ 행사는 사실상 이 회장의 네트워크 덕에 성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은 “가만히 있어도 아는 분을 20~30명씩 만나게 된다”며 글로벌 CEO들의 명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다른 기업 총수들에게 세계적인 빅 샷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6월 26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방한 때다. 이날 오후 8시가 넘어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열린 빈 살만 왕세자와의 차담회에는 이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이날 회동은 이 회장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이 회장이 각별한 친분이 있는 빈 살만 왕세자의 부탁을 받고 개인 연락처를 통해 만남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엔 베이스캠프를 중국 상하이에 두고 아예 ‘해외 순환 근무’를 시작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만남에 그치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며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은 사람을 만나 관리하고 다룰 줄 아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1968년 6월생으로 부친 이건희 선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이에서 태어난 1남3녀 중 장남이다. 이 회장은 재벌가 맏아들 티를 내지 않고 최대한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모교는 서울 경기초, 청운중, 경복고다. 경기초는 ‘서울 3대 사립초등학교’로 불리는 명문 학교다. 청운중과 경복고는 사촌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비롯한 많은 재벌가 학생이 다닌 곳이다. 이 회장은 중·고교 재학 시절에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고 한다. 특히 영어와 수학 성적이 우수했다. 고교 3학년 시절 담임 교사는 이 회장을 ‘공부 잘하고 친구 관계도 좋은 평범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이 회장은 1987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 동양사학과 진학은 “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경영이론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병철 창업회장의 조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학부에선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경영대학원(석사)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박사과정 수료)에서 공부했다.
이 회장은 학적부에 아버지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적었다. 선배 손을 잡고 시위 현장에도 나가고 MT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선후배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다. 동양사학과 사람들과 지리산 종주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동기의 등록금을 내주고 모임 때 고급 초콜릿 등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가진 집 아들’ 티를 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으로 이 회장을 기억한다. 삼성전자 입사 후에도 대학 동기들과의 만남은 상당 기간 이어졌다고 한다. 이 회장이 상무 직함을 갖고 있던 2005~2006년께 서울 강남의 한 삼겹살집에서 친구들과 만나 집게를 들고 삼겹살을 굽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회장이 동기 모임에 나온 건 부사장이 되기 직전인 2009년 연말 모임이 마지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소맥을 돌리며 평소보다 과음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거리 출장 때 술자리다. 출장지 주재원들이 나와서 수행하면 이 회장은 가능하면 임직원들과 저녁 자리를 함께한다고 한다. 불문율이 ‘주종 결정은 주재원들이 한다’는 것이다. 술자리 분위기도 이 회장이 주도한다는 게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설명이다. 이 회장이 메인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인사를 받는 게 아니라 술잔을 들고 테이블을 돌면서 사담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술자리에 늦으면 벌주도 마다하지 않는 등 일반 직장인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고위 관계자는 “주요 사장단이 모인 술자리에서 이 회장이 ‘삼성이 어떻게 해야 승승장구할 수 있냐’고 묻길래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자르면 된다’고 했더니 웃으시더라”며 “그만큼 술자리에서 마음이 열려 있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한다”고 말했다.
주량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회장과 술자리를 해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어지간해선 취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소주 2~3병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마신다는 뜻이다.
한 번은 직원 간담회에서 겨울철 등산화의 미끄럼을 방지하는 장비인 ‘아이젠’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이나 얼음이 있는 코스에선 아이젠을 착용했다가 마른 땅에선 떼는 과정이 번거로운데 ‘자동 등산화’가 나오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이 회장은 “버튼만 누르면 아이젠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등산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온병에 대한 아이디어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등산 후 먹는 컵라면이 참 좋다”며 “어디서든 물을 팔팔 끓일 수 있는 보온병 아이디어를 제안해봤는데 개발되면 모두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취미가 등산인 이 회장의 이른바 ‘등산 세일즈’는 유명하다. 이 회장은 2021년 방한한 찰리 어건 디시네트워크 회장과 단둘이 5시간가량 북한산에 올라 친분을 쌓았다. 이후 2022년 5월 삼성전자는 디시네트워크에서 1조원 규모의 5세대(5G) 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 회장은 골프에도 일가견이 있다. 골프 실력은 평균 75~76타로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가 250야드 전후인 장타자로 전해진다. 2011년엔 아마추어 골퍼 최고의 영예라는 R&A(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영국왕립골프협회) 정회원이 됐다. 한국인 가운데 세 번째다. 2009년 US오픈 골프대회가 열린 롱아일랜드 베스페이지 블랙코스에선 갤러리들 사이에서 최경주, 타이거 우즈 등 주요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이 회장의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5년 전 골프를 완전히 끊었다.
승마 선수로도 잠시 활약했다. 경복고 3학년 때 승마에 입문했다. 1989년 대통령배 대회, 전국체전 등 6개 대회에 출전해 마장마술 부문에서 9번, 장애물 부문에서 1번 우승했다. 그해 승마기자단 투표에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이라며 “삼성승마단에서 좋은 말을 얻어 탄 덕”이라고 겸손하게 소감을 이야기했다. 이어 “승마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함께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말과의 호흡”이라며 “말의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면 결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어 승마를 하면 늘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게 몸에 배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스템 반도체(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제품·서비스)다. 이 회장은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공개하고 “2030년까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발표했다. 약 4년이 지난 현재 성과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 연 30조원으로 급증했다. 시스템 반도체 사업의 주요 축인 파운드리는 100조원 넘는 수주 잔액을 확보했다.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의 벽은 아직 높지만, 삼성전자가 꾸준히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구글, 모빌아이, 퀄컴, AMD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3㎚(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공정 등에서 고객사의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바이오 사업은 ‘제2의 반도체’로 집중 육성 중이다. 이 회장은 최근 미국 동부에서 J&J 등 글로벌 주요 제약사 CEO들과 잇따라 만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 북미법인 직원들에게 “반도체 성공 DNA를 바이오 신화로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일찌감치 반도체, 2차전지 배터리에 이어 바이오를 그룹의 새 먹거리로 낙점했다. 2011년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업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고, 2012년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전문기업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세웠다.
삼성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고 나서 국내 제약산업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 최초로 지난해 매출 3조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9800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 분야에서 글로벌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10월 송도 4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CDMO 기업 중 가장 큰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3월 1조9800억원을 투입해 증설하기로 한 5공장이 완공되면 총 78만4000L의 생산능력을 확보해 2위와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글로벌 주요 파트너사와의 긴밀한 협업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이 미국 출장 때 방문한 J&J는 글로벌 3위의 제약사다. 삼성과는 2016년 CDMO 계약 체결 이후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위기 극복 리더십도 이 회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확대 이후 첫 근무일인 2019년 8월 5일.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계열사 경영진을 긴급 소집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간판 기업 삼성전자를 타깃으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의 강도를 높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이 부회장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긴장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고 주문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삼성전자에 ‘전화위복’이 됐다. 우려했던 생산 차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소재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국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구축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했다.
이 회장은 고객사와 관련한 일은 꼼꼼하게 살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승지원에 VIP가 방문할 때는 손님의 취향을 미리 파악하고 벽에 거는 그림 등을 직접 결정한다. 2019년 빈 살만 왕세자 방문 때 아랍어로 ‘환영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식탁보가 깔렸는데, 이 아이디어도 이 회장이 낸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도 알뜰살뜰하게 챙긴다. 지난 3월 이 회장은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인 직원들을 만났다. ‘우리 회사 기부왕 행복하세요’라고 직접 쓴 편지를 직원들에게 주고 기념촬영을 하며 격려했다.
1980년대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MZ세대’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 회장은 처음으로 사내 MZ세대 직원들로부터 차기 전략 제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홍라희 전 관장의 애정이 담긴 잔소리도 소개했다. 이 회장은 “80세 다 된 노인(홍 전 관장)이 아들 걱정에 비타민 많이 먹어라, 맥주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셨다”며 솔직한 일상을 전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유연한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이 같은 자리를 지속해서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이 회장의 조부인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부친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신화는 이 회장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유산’이자 뛰어넘어야 할 ‘벽’으로 꼽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시대정신이 바뀌고 경영 환경이 달라졌지만 사회에선 이 회장에게 조부, 부친과 같은 카리스마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 회장이 극복해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의 경영 성과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회장은 오랜 기간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수업을 받으며 삼성이란 대형 그룹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데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창 글로벌 경영 활동에 속도를 내야 할 시기에 정치적인 갈등에 휩쓸리면서 ‘사법 리스크’를 안게 된 것이 이 회장의 가장 큰 불운(不運)으로 꼽힌다. 경제계 고위 관계자는 “선대회장을 대신해 경영 1선에 나선 2014년 이후 이 회장이 성과를 내고 있다”며 “파운드리와 바이오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고 숱한 위기 상황에도 삼성은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톱 티어’의 위치를 지켰다”고 강조했다.
파운드리, 바이오, 5G, 전기차 배터리 이후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건 사업적인 과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삼성이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들과의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자랑인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 되는 삼성의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도 이 회장의 숙제로 꼽힌다. 최근 삼성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0월 27일 이 회장은 회장 취임사를 대신한 메시지 첫머리에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며 “많은 국민들의 응원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마크 저커버그, 팀 쿡, 일론 머스크, 빈 살만까지
글로벌 톱티어 수준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자랑
“제이 와이 리(Jay Y. Lee)와 미팅할 수 있을까요.”성사된 미팅은 그 자체로 ‘비즈니스 훈장’ 역할을 한다. 이 회장과의 만남은 해당 국가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스페인·네덜란드 총리 방한 때도, 베트남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장의 행보가 전 세계에서 삼성은 물론 한국의 위상까지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수반, 글로벌 기업 총수 등 VIP들이 한국 방문 때마다 찾는 사람이 있다. 영어 이름 Jay Y. Lee,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다. 선진국 정상도 이 회장의 10분을 얻기 위해 애쓴다. 세계적 기업인인 이 회장과 친분을 쌓는 동시에 글로벌 기업 삼성과의 공동 사업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한국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만 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사람이 또 있을까요?”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 회장에 대해 한 말이다. 이 회장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 중에서 ‘기업인 이재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로 ‘네트워크’, 즉 인맥이 꼽힌다. 이 회장은 ‘은둔의 제왕(The Hermit King)’으로 불린 이건희 선대회장과 달리 대외활동에 적극적이다. 이 회장의 네트워크는 글로벌 톱티어(일류) 수준으로 평가된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인물까지 선이 닿아 있고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뜻이다. 마크 저커버그(메타), 제프리 이멀트(GE), 팀 쿡(애플), 일론 머스크(테슬라) 등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의 네트워크는 비단 자신과 삼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국가 자산 역할까지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백신을 조기 도입하는 데 도움을 달라”며 급박하게 삼성에 SOS를 쳤다. 이 회장은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온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어도비(Adobe)의 샨타누 나라옌 회장을 통해 화이자 최고위 경영진과 정부·삼성 관계자들의 화상 미팅을 성사시켰다. 나라옌 회장은 화이자 사외이사를 맡고 있어 경영진과 선이 닿았다. 삼성은 ‘주사기 공급’을 당근책으로 내세워 화이자를 설득했다. 당초 2021년 3분기 한국에 물량을 공급할 예정이었던 화이자는 그해 3월 50만 명분 백신을 내줬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정·재계 리더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의 밤’ 행사는 사실상 이 회장의 네트워크 덕에 성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은 “가만히 있어도 아는 분을 20~30명씩 만나게 된다”며 글로벌 CEO들의 명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다른 기업 총수들에게 세계적인 빅 샷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6월 26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방한 때다. 이날 오후 8시가 넘어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열린 빈 살만 왕세자와의 차담회에는 이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이날 회동은 이 회장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이 회장이 각별한 친분이 있는 빈 살만 왕세자의 부탁을 받고 개인 연락처를 통해 만남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상무 승진 이후 글로벌 경영 수업...'준비된 경영자'
이 회장의 인맥은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다. 2003년 상무 승진 이후 이건희 선대회장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며 본격적으로 네트워크를 쌓았다. 2007년 전무로 승진한 이 회장은 ‘최고고객책임자(CCO)’ 타이틀을 달았다. 일정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해 1월 미국, 2월 스페인, 3월 독일, 4월 스위스 중국 인도, 7월 중남미, 8월 독일 헝가리 슬로바키아, 10월 중국 베트남을 돌며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갑’ 역할을 하는 글로벌 기업 경영진과 관계를 쌓았다. 2009년 2월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와병으로 경영을 맡고 있던 팀 쿡 당시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첫 회동을 했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를 쓰는 고객사이자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사다.2008년엔 베이스캠프를 중국 상하이에 두고 아예 ‘해외 순환 근무’를 시작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만남에 그치지 않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며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은 사람을 만나 관리하고 다룰 줄 아는 분”이라고 말했다.
삼겹살 굽고 대학 동기 챙긴 삼성가 맏아들
인맥은 단순히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해서 쌓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회장이 넓고 깊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데는 몸에 밴 ‘겸손’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회장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이 회장은 1968년 6월생으로 부친 이건희 선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이에서 태어난 1남3녀 중 장남이다. 이 회장은 재벌가 맏아들 티를 내지 않고 최대한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모교는 서울 경기초, 청운중, 경복고다. 경기초는 ‘서울 3대 사립초등학교’로 불리는 명문 학교다. 청운중과 경복고는 사촌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비롯한 많은 재벌가 학생이 다닌 곳이다. 이 회장은 중·고교 재학 시절에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고 한다. 특히 영어와 수학 성적이 우수했다. 고교 3학년 시절 담임 교사는 이 회장을 ‘공부 잘하고 친구 관계도 좋은 평범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이 회장은 1987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 동양사학과 진학은 “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경영이론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병철 창업회장의 조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학부에선 인문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경영대학원(석사)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박사과정 수료)에서 공부했다.
이 회장은 학적부에 아버지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적었다. 선배 손을 잡고 시위 현장에도 나가고 MT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선후배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다. 동양사학과 사람들과 지리산 종주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동기의 등록금을 내주고 모임 때 고급 초콜릿 등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가진 집 아들’ 티를 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모범생’으로 이 회장을 기억한다. 삼성전자 입사 후에도 대학 동기들과의 만남은 상당 기간 이어졌다고 한다. 이 회장이 상무 직함을 갖고 있던 2005~2006년께 서울 강남의 한 삼겹살집에서 친구들과 만나 집게를 들고 삼겹살을 굽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회장이 동기 모임에 나온 건 부사장이 되기 직전인 2009년 연말 모임이 마지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소맥을 돌리며 평소보다 과음한 것으로 전해진다.
술자리에서 '소탈' ...주종 안 가리고 벌주도 마다 안 해
이 회장을 나타내는 또 다른 수식어는 ‘소탈함’이다. 흔히 재벌가 사람들은 값비싼 양주만 마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회장은 다르다. 소주, 맥주, 와인, 폭탄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 그날 술자리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이 회장의 장점으로 꼽힌다.대표적인 사례가 장거리 출장 때 술자리다. 출장지 주재원들이 나와서 수행하면 이 회장은 가능하면 임직원들과 저녁 자리를 함께한다고 한다. 불문율이 ‘주종 결정은 주재원들이 한다’는 것이다. 술자리 분위기도 이 회장이 주도한다는 게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설명이다. 이 회장이 메인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인사를 받는 게 아니라 술잔을 들고 테이블을 돌면서 사담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술자리에 늦으면 벌주도 마다하지 않는 등 일반 직장인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고위 관계자는 “주요 사장단이 모인 술자리에서 이 회장이 ‘삼성이 어떻게 해야 승승장구할 수 있냐’고 묻길래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자르면 된다’고 했더니 웃으시더라”며 “그만큼 술자리에서 마음이 열려 있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한다”고 말했다.
주량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회장과 술자리를 해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어지간해선 취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소주 2~3병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마신다는 뜻이다.
산악인 이재용 회장...'250야드' 날리던 골프는 5년 전 끊어
이 회장의 요즘 취미는 등산이다. 매주 전국 명산을 지인들과 함께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산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직원들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기도 한다.한 번은 직원 간담회에서 겨울철 등산화의 미끄럼을 방지하는 장비인 ‘아이젠’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이나 얼음이 있는 코스에선 아이젠을 착용했다가 마른 땅에선 떼는 과정이 번거로운데 ‘자동 등산화’가 나오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이 회장은 “버튼만 누르면 아이젠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등산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온병에 대한 아이디어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등산 후 먹는 컵라면이 참 좋다”며 “어디서든 물을 팔팔 끓일 수 있는 보온병 아이디어를 제안해봤는데 개발되면 모두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취미가 등산인 이 회장의 이른바 ‘등산 세일즈’는 유명하다. 이 회장은 2021년 방한한 찰리 어건 디시네트워크 회장과 단둘이 5시간가량 북한산에 올라 친분을 쌓았다. 이후 2022년 5월 삼성전자는 디시네트워크에서 1조원 규모의 5세대(5G) 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 회장은 골프에도 일가견이 있다. 골프 실력은 평균 75~76타로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가 250야드 전후인 장타자로 전해진다. 2011년엔 아마추어 골퍼 최고의 영예라는 R&A(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영국왕립골프협회) 정회원이 됐다. 한국인 가운데 세 번째다. 2009년 US오픈 골프대회가 열린 롱아일랜드 베스페이지 블랙코스에선 갤러리들 사이에서 최경주, 타이거 우즈 등 주요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이 회장의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5년 전 골프를 완전히 끊었다.
승마 선수로도 잠시 활약했다. 경복고 3학년 때 승마에 입문했다. 1989년 대통령배 대회, 전국체전 등 6개 대회에 출전해 마장마술 부문에서 9번, 장애물 부문에서 1번 우승했다. 그해 승마기자단 투표에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이라며 “삼성승마단에서 좋은 말을 얻어 탄 덕”이라고 겸손하게 소감을 이야기했다. 이어 “승마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함께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말과의 호흡”이라며 “말의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면 결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어 승마를 하면 늘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게 몸에 배게 된다”고 설명했다.
"삼성 야구단 버스 바꿔달라" 부친께 건의한 고등학생 이재용
이 부회장은 야구 애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부터 프로야구 팬으로 김시진 선수와 캐치볼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 회장이 고교 시절 이건희 선대회장에게 “삼성라이온즈 버스를 좀 더 큰 것으로 바꿔달라”고 건의한 일화도 유명하다. 김 선수는 2015년 한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나와 “‘선수들이 버스에서 편안하게 이동하면 성적과 경기력이 향상되지 않겠냐’고 이건희 선대회장께 건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본궤도 오른 파운드리, 바이오...JY의 '미래주도 리더십' 성과
이 회장은 본인의 장점인 글로벌 네트워크, 15년 이상 글로벌 빅 샷들과 교류하며 쌓은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미래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시스템 반도체(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제품·서비스)다. 이 회장은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공개하고 “2030년까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발표했다. 약 4년이 지난 현재 성과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 연 30조원으로 급증했다. 시스템 반도체 사업의 주요 축인 파운드리는 100조원 넘는 수주 잔액을 확보했다.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의 벽은 아직 높지만, 삼성전자가 꾸준히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구글, 모빌아이, 퀄컴, AMD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3㎚(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공정 등에서 고객사의 최첨단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바이오 사업은 ‘제2의 반도체’로 집중 육성 중이다. 이 회장은 최근 미국 동부에서 J&J 등 글로벌 주요 제약사 CEO들과 잇따라 만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 북미법인 직원들에게 “반도체 성공 DNA를 바이오 신화로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일찌감치 반도체, 2차전지 배터리에 이어 바이오를 그룹의 새 먹거리로 낙점했다. 2011년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업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고, 2012년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전문기업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세웠다.
삼성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고 나서 국내 제약산업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 최초로 지난해 매출 3조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9800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 분야에서 글로벌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10월 송도 4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CDMO 기업 중 가장 큰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3월 1조9800억원을 투입해 증설하기로 한 5공장이 완공되면 총 78만4000L의 생산능력을 확보해 2위와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글로벌 주요 파트너사와의 긴밀한 협업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이 미국 출장 때 방문한 J&J는 글로벌 3위의 제약사다. 삼성과는 2016년 CDMO 계약 체결 이후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위기 극복 리더십도 이 회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확대 이후 첫 근무일인 2019년 8월 5일.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계열사 경영진을 긴급 소집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간판 기업 삼성전자를 타깃으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의 강도를 높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이 부회장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긴장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고 주문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삼성전자에 ‘전화위복’이 됐다. 우려했던 생산 차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소재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국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구축하고 공급망을 다변화했다.
"중장기 경쟁력 확보 중"...JY의 통 큰 경영 스타일
이 회장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본 사람들은 “그룹 총수라서 그런지 좀 다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최근 만난 한 삼성 CEO는 “이재용 회장은 당장 한두 분기의 영업적자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삼성의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이 회장은 고객사와 관련한 일은 꼼꼼하게 살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승지원에 VIP가 방문할 때는 손님의 취향을 미리 파악하고 벽에 거는 그림 등을 직접 결정한다. 2019년 빈 살만 왕세자 방문 때 아랍어로 ‘환영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식탁보가 깔렸는데, 이 아이디어도 이 회장이 낸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도 알뜰살뜰하게 챙긴다. 지난 3월 이 회장은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인 직원들을 만났다. ‘우리 회사 기부왕 행복하세요’라고 직접 쓴 편지를 직원들에게 주고 기념촬영을 하며 격려했다.
1980년대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MZ세대’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 회장은 처음으로 사내 MZ세대 직원들로부터 차기 전략 제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홍라희 전 관장의 애정이 담긴 잔소리도 소개했다. 이 회장은 “80세 다 된 노인(홍 전 관장)이 아들 걱정에 비타민 많이 먹어라, 맥주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셨다”며 솔직한 일상을 전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유연한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이 같은 자리를 지속해서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삼성을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겠다"
승어부(勝於父).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뜻이다. 2020년 10월 28일 이건희 선대회장의 영결식 때 고인의 서울대사대부고 2년 선배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 추모사에서 언급한 말이다.이 회장의 조부인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부친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신화는 이 회장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유산’이자 뛰어넘어야 할 ‘벽’으로 꼽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시대정신이 바뀌고 경영 환경이 달라졌지만 사회에선 이 회장에게 조부, 부친과 같은 카리스마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 회장이 극복해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의 경영 성과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회장은 오랜 기간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수업을 받으며 삼성이란 대형 그룹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데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창 글로벌 경영 활동에 속도를 내야 할 시기에 정치적인 갈등에 휩쓸리면서 ‘사법 리스크’를 안게 된 것이 이 회장의 가장 큰 불운(不運)으로 꼽힌다. 경제계 고위 관계자는 “선대회장을 대신해 경영 1선에 나선 2014년 이후 이 회장이 성과를 내고 있다”며 “파운드리와 바이오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고 숱한 위기 상황에도 삼성은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톱 티어’의 위치를 지켰다”고 강조했다.
파운드리, 바이오, 5G, 전기차 배터리 이후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건 사업적인 과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삼성이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들과의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자랑인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 되는 삼성의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도 이 회장의 숙제로 꼽힌다. 최근 삼성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0월 27일 이 회장은 회장 취임사를 대신한 메시지 첫머리에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며 “많은 국민들의 응원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