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 팔레 데 페스티발 에 데 콩그레.
칸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 팔레 데 페스티발 에 데 콩그레.
동네 레스토랑을 가니 옆 테이블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앉아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쿠엔틴 타란티노, 박찬욱 등 전설적인 영화감독들이 스쳐 지나간다. 상상 속 얘기가 아니다. 매년 5월마다 프랑스 동남부의 소도시 칸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세계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감독과 배우들은 5월이면 일제히 칸으로 향한다. 이유는 딱 하나, 세계 최고 권위의 ‘칸 국제 영화제’ 때문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5월의 칸’은 도시 전체가 영화가 된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끼고 있는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은 ‘영화계의 별’들로 북적이고, 도시 곳곳에 설치된 상영관에선 ‘스타 감독’들의 신작이 베일을 벗는다. 칸이 ‘영화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질문. 프랑스 변두리의 작은 도시는 어떻게 세계 영화계의 중심이 된 걸까. 칸 영화제는 뭐가 그렇게 뛰어나길래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를 누르고 ‘세계 최고’가 됐을까.

전쟁이 낳고, 예술이 키운 축제

시작은 전쟁이었다. 세계 2차대전 발발을 앞둔 1932년,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베니스 영화제를 만들었다. 영화를 이용해 ‘파시즘’ 사상을 퍼뜨리기 위해서였다. 이때 “영화가 정치적 수단이 되는 것을 막자”고 나선 게 프랑스 정부다. 그렇게 칸 영화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46년 처음 막을 올렸다.

전쟁통에서 태어난 영화제를 세계 최고 반열에 올려둔 건 ‘예술영화’들이었다. 수중사진을 영화에 최초로 사용한 ‘침묵의 세계’(1956), 전쟁의 참상과 혼돈을 고발한 전설적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 세계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은 모두 칸을 거쳤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칸 영화제 소속 프로그래머들은 일년 내내 전 세계 감독과 배우를 만나며 ‘숨은 보석’을 발굴한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명작들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두고 겨루는 ‘경쟁부문’, 독창적이고 색다른 메시지를 제시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등 여러 섹션을 통해 관객 앞에 선다.

감독과 배우, 비평가들만의 잔치가 아니라는 것도 칸 영화제의 강점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지하에선 제작사와 바이어, 배급사가 영화를 사고파는 ‘큰 장’이 선다. 바로 세계 최대 규모의 필름마켓인 ‘칸 필름마켓’이다. 어느 부스와 상영관이 붐비는지를 보면 영화산업의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칸을 빛낸 ‘드라마틱’한 순간들

칸 영화제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다. 올해 ‘인디아나 존스 5: 운명의 다이얼’로 공로상인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해리슨 포드가 그랬다. “이번 영화가 내 마지막 영화”라는 그의 나이는 올해 80세.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인디아나 존스 연기에 바친 포드는 벅차오른 표정으로 시상식 무대에 올라 눈물을 훔쳤다.

올해 칸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을 쓴 건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칸에 초청된 한국 영화는 7편이다. 배우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이 다시 뭉친 ‘거미집’(비경쟁부문)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생인 서정미 감독의 ‘이씨 가문의 형제들’(시네파운데이션)까지. 황금종려상을 두고 겨루는 경쟁부문엔 들진 못했지만, 한국 영화는 다양한 부문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이 중 김태곤 감독이 만든 이선균·주지훈 주연의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지난 21일 새벽,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액션, 스릴러 등 장르 영화를 대상으로 한 비경쟁부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서다. 프랑스 배급사들 사이에선 “영화제 기간 중 가장 빨리 지나간 100분”이라는 극찬도 나왔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