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6%에서 1.4%로 불과 3개월 만에 낮췄다. 하지만 이 수치조차 또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분위기다. 성장률이 작년 2.6%에서 올해 1%대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 부진 탓이다. 정부는 ‘상저하고’를 외치지만 경기 회복 시점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이창용 한은 총재의 진단이다. 그는 25일 기준금리 동결 직후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처방을 묻는 질문에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의 단기 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재정과 통화 확대로는 이미 고착화하기 시작한 저성장 기조를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저출산과 인구구조 변화가 이미 가파르게 진행됐고 5년, 10년 뒤에는 노후 빈곤 문제가 본격화할 텐데,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진단이다.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시장 일각의 기대를 차단하기 위한 뜻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처한 경제 상황이 답답하다는 점을 솔직하게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특히 구조개혁 문제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논의되면서 사회적 대타협이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예를 들어 교육개혁의 경우 고등학교 3학년생이 일찌감치 전공을 정하고 인생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공급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선 교육당국이나 대학이 학과 정원을 정하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맞춘 학과 신설이나 폐지를 유연하게 할 수 없다. 또 반도체 수출이 안 되면 의료산업 규제를 풀어 서비스산업 국제화를 꾀해야 하는데, 해묵은 이념적 갈등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이날 이 총재의 작심 발언을 엄중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특히 국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노조법을 밀어붙이는 더불어민주당은 현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구조개혁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선거에서 표를 얻고 다시 집권할 수만 있다면, 경제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식의 태도로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