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들은 왜 마약단속국 조사를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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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인 서리브럴. 이 회사는 마약단속국(EDA), 법무부(DOJ),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3중 조사에 직면해 있습니다. ADHD 환자들에게 비대면으로 약물을 과다처방하고 있다는 임원진의 내부 고발 때문입니다. 민감한 환자 건강 정보를 메타, 틱톡, 구글 등에 유출시켰다는 논란까지 나왔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미국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들이 휘말려있는 논란들과 대응책을 소개합니다.최근 미국 헬스테크 스타트업들의 최대 관심사는 정부 규제다. 지난 11일 공중보건 비상사태(PHE)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후 미국 연방정부는 오는 11월까지 향정신성 약물의 원격 처방을 계속 허용하기로 했다. 미국은 원래 대면 초진 없이는 마약성 약물을 원격으로 처방하는 걸 금지했는데, 코로나19 기간 일시적으로 초진 비대면 처방이 허용됐다. PHE는 끝났지만 현장의 혼란을 고려해 원격으로 초진 처방을 받은 환자의 경우 11월까지는 계속 비대면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약물 오남용 우려 등 해결되지 못한 논란이 아직 많다. 마약단속국은 지난달 향정신성 약물의 비대면 처방과 관련한 임시 규정을 만들면서 의견이 3만8000건이나 접수됐다고 밝혔다. 해당 사안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다.
서리브럴이 마약조사국 조사 받은 까닭
2019년 설립된 비대면 정신건강 스타트업 서리브럴은 기술을 활용해 환자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돕겠다는 취지 아래 운영돼왔다. 우울증, 불안장애, ADHD 등 환자들과 의사를 연결하는 비즈니스가 핵심이다. 코로나19 시기 초진 환자에 대한 원격 처방 허용의 수혜를 받아 급격하게 성장했다. 서리브럴은 서비스 출시 2년만에 48억달러(약 6조원)의 기업가치를 달성했다.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서리브럴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건 ADHD 약물을 무분별하게 처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21세 청년인 엘리야 핸슨은 이전에 의료기관에서 ADHD 진단을 받은 적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서리브럴을 통해 ADHD 약물을 처받받아 복용했다. 핸슨은 결국 지난해 12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내부 고발도 나왔다. 서리브럴의 전문 간호사들은 회사에서 실제 의학적 필요성과 상관없이 ADHD 치료용 각성제 에더럴을 처방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서리브럴의 제품 및 엔지니어링 부사장이었던 매튜 트루비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리브럴이 환자 안전보다 회사의 이익만 우선시하면서 ADHD 약물을 과다처방했다는 게 매튜의 주장이다. 고객 유지율을 높이기 위해 환자 각자의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각성제를 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과거 서리브럴에 근무했던 의료진들도 직접 환자를 보지 않고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 뉴욕 동부지방검찰청은 해당 사안에 대해 영장을 발부했다. 미 법무부는 서리브럴의 의료진들이 30분짜리 원격 상담을 통해 정신건강의 진단과 약물 처방의 의학적 필요성을 판단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온라인 약국을 운영하는 월마트와 CVS는 서리브럴이 발급한 처방전 조제를 중단했다. 서리브럴 이사회는 의혹 당사자인 카일 로버트슨 창업자 겸 CEO를 해임했다.
비대면 처방, 코로나19 수혜 받았는데
미국의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특히 정신건강을 다루는 곳들은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로 정신질환이 늘고 대면 치료가 어려워지자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들은 비대면 원격 정신건강 진료와 약 처방을 전격 허용했다. 과거 약물 오남용을 우려해 직접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선 향정신성 의약품의 원격 처방을 막아둔 것에서 규제를 푼 것이다. 미국 비영리단체 카이저재단에 따르면, 2021년 3~6월 미국에서 정신질환이나 약물중독으로 치료받은 외래환자 중 36%는 원격 치료를 받았다. 폭발적인 성장에 투자금도 쏟아졌다. 2021년 기준 정신건강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투자액만 48억달러(약 6조원)에 달한다. 서리브럴의 경우 설립 2년 만에 이용자 42만명 이상을 확보했다.논란에 휩싸인 건 서리브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인 돈 글로벌도 약물 처방 관행에 대해 마약단속국의 조사를 받았다. 돈 글로벌은 ADHD 환자와 의사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마약 남용 전력에도 플랫폼을 통해 각성제를 처방받은 후 사망한 환자의 소식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또 다른 스타트업 워크잇 헬스는 마약성 진통제와 알콜 중독을 원격으로 상담, 치료하는 회사다. 원격 상담을 기반으로 처방한다고는 하지만 하지만 소속된 심리상담사 수가 적어 사실은 약물 처방에만 집중하고 상담은 등한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워크잇 헬스 회원은 1만명이 넘는데 이 회사가 고용한 상담사는 120명에 불과해 상담사 한명 당 80명 이상의 회원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 어쩌나
환자들의 개인 정보 유출 논란도 벌어졌다. 서리브럴은 지난 3월 구글 등 빅테크 기업에 환자들의 정신 건강 평가를 포함한 주요 데이터가 흘렀다고 인정했다. 서리브럴 발표에 따르면 틱톡과 페이스북, 구글 등에 310만명의 정보가 공유됐다. 서리브럴 측은 데이터 유출은 회사가 사용한 기술 때문에 의도치 않게 발생했고, 지금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장 민감한 환자 의료 정보가 유출됐다는 점에서 회사 신뢰성에 타격을 받았다. 또 다른 유명 원격 상담 스타트업인 베터헬프도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78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성격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베터헬프가 민감한 건강 정보를 받아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회원 대상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강요해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FTC는 베터헬프가 사용자들에게 상담 서비스 등 제한된 목적을 제외하고는 데이터가 공유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했지만, 타깃 광고를 운영하기 위해 민감한 정보를 페이스북에 넘겼다고 봤다. FTC는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기에 정신 상담 서비스를 찾은 사람들을 광고비 부풀리기에 활용했다는 건, 사실상 고객들의 믿음을 배반한 것"이라고 했다. 베터헬스 측은 '업계에서 당연한 일'이라며 잘못을 부인했다.
다른 원격 의료 회사인 토크스페이스는 정신의학계로부터 앱을 통해 수집된 환자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페이스북 구글 등 광고를 하는 SNS와의 관계를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서리브럴 사례는 빙산의 일각"
미국 마약조사국은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종료된 후에도 당분간 규제 수준을 크게 높이지 않기로 했다. 기존에 비대면 초진으로 약을 처방받았던 환자의 경우 오는 11월까지 계속 비대면 처방을 허용하도록 했다. 지난 2월 비상사태가 끝나는대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하기 전 직접 환자를 진단해야 한다는 규정을 넣으려다 원격 의료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미국 원격의료 협회의 카일 지블리 공공정책 부회장은 "원격의료가 환자들의 필요한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는 점을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다만 정신건강 원격 상담과 처방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정부가 규제의 고삐를 죄면서 스타트업들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혁신의료 전문 변호사인 베타니 코빈은 "서리브럴에 대한 조사는 빙산의 일각으로, 환자 안전보호를 중요시하는 규제기관과 의원들이 원격 의료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서리브럴 사례를 앞으로 헬스케어 산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새롭게 교훈을 얻고 대비하는 회사들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참, 한가지 더
부작용 지적받은 뒤…향정신성의약품 비대면 처방 금지한 한국
한국에선 비대면 진료 시 향정신성의약품은 처방받을수 없다. 2021년 11월 보건복지부가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비대면 진료 제한을 결정하면서다. 복지부는 2021년 국정감사에서 국회와 약사회로부터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 서비스로 인해 마약류 처방이 급증했다는 지적을 받은 후 마약류‧오남용 우려 의약품 등 특정의약품 277개 품목 처방을 제한했다.
당시 국감에선 마약류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수면제 '졸피뎀'의 비대면 처방 건수가 대면 진료 처방 건수보다 최대 2.3배 많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오남용 우려가 있는 식욕억제제, 발기부전 치료제, 사후피임약 등의 손쉬운 처방을 홍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산업계의 항변도 있었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당시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코로나 블루, 자살율 증가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정신과 진료 수요가 높아졌을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한다"며 "본질은 약물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시스템을 활용하면 진료 및 처방 금지도 가능하고 닥터나우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달부터 시작될 복지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서도 향정신성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한시적으로 초진까지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시범사업에선 재진 위주로 바뀌는 등 코로나19 때 허용 범위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