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똥물 먹나요?”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때, 서로 인사를 나누다가 내가 판소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상대로부터 열에 아홉은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 단연 으뜸이 “진짜로 똥물 먹나요?”다. (그 외의 질문으로 “진짜로 피 토해요?” “폭포아래 가서 연습한 적 있어요?” 등이 있다.)

자,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어봤지만, 깊게 알아볼 기회는 없었던 당신에게 판소리에 관한 여러 괴담(?) 중 ‘똥물 먹기’에 관한 진실을 여기서 밝히겠다.

판소리는 조선시대에 생성되어 현재까지 전해져오는 한국의 공연예술이다. 소리꾼이 하나의 이야기를 스승에게 물려받은 소리와 재담, 각종 흉내내기와 몸동작 등을 사용하여 한껏 재주를 펼치며 관객과 나누는 공연예술이며, 소리꾼이 하는 소리의 반주를 위하여 소리꾼의 옆에서 고수가 북으로 장단을 맞추고 또한 적재적소에 추임새를 던져가며 흥을 돋기도 한다.

긴 시간동안 소리꾼이 소리와 말, 몸짓으로 관객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잡아당겨 이야기를 꾸려가는 예술인만큼 이 공연예술의 주 테크닉이 되는 ‘소리’, 그 중에서도 그 소리의 기본을 이루는 소리의 질감, 즉 ‘성음’이 아주 중요한 예술이다.

예로부터 인기가 많아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소리꾼을 ‘명창’이라 칭했고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성음으로 높은 수준의 시김새(판소리를 이루는 고도의 음악적 테크닉. 짧은 시간에 여러개의 음을 다양하게 배열하여 목 근육으로 화려한 기술을 펼치는 것이다.)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단 한마디의 소리로도 듣는 이의 무언가를 건드릴 수 있는 깊이를 가진 소리를 내야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과거 명창들의 소리 훈련의 일화들은 놀랍기 그지 없다. 홀연히 사라져 제주도에 가서 4~5년간 만리 창해를 탄도할 기세로 소리 공부를 했다거나(송광록), 스승의 수법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밤낮으로 지붕도 없는 곳에서 먹고 자며 수련을 하거나 혹은 임실의 어느 폭포에서 수련하다 피를 다량으로 토했다거나(박만순), 스승을 따라 보따리를 짊어지고 명산대천 승지를 찾아 다니며 소리를 했다거나(송만갑)하는 일화들이 다양하다.

소리꾼이 수년을 산속에 들어가 독공을 하고 내려오는 것은 일반이며 그 과정에서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몸을 혹사하고 목 근육을 혹사하였다는 이야기도 명창들의 전설에는 꼭 따라다니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혹독한 훈련을 하며 혹사한 소리꾼의 신체를 위한 보약이 바로 똥물이었다. 똥물은, 조선시대 가난했던 판소리꾼들에게 보약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지금처럼 먹을 것을 쉽게 구하기도 어렵고 먹을 것이 다양하지도 않았던 조선시대에, 대부분 천민 출신이었던 소리꾼들은 먹는 것 자체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부실하게 먹은 몸으로 매일 온 몸으로 수시간을 소리를 지르고 좋은 성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등판이 아픈 것을 물론, 온 몸에 통증이 생겼을 것이다. (나의 경우, 아직도 <적벽가>를 하루 두세시간 정도 제대로 연습하고 나면 으레 등판이 뻐근한 ‘소리 앓이’를 하기도 한다.) 그러한 몸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비싼 보약 대신 먹었던 것이, 바로 똥물이다.

똥물을 제조하는 방법을 소리꾼 선배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푸세식 화장실의 변기 아래 모여있는 인분에다 긴 대나무를 통째로 꽂아놓으면, 대나무의 마디와 마디 사이로 맑은 물이 걸러져 고인다고 한다. 그 물을 한첩 약으로 먹고 아주 뜨겁게 달군 아랫목에서 그날 하루동안 땀을 쭉, 완전히 쭉 빼면서 자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흘리는 땀으로 독소가 배출되고, 몸에 이로운 성분이 신체에 남는다고. 선배들은 더불어, 현대시대에는 비타민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보약이 있고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고른 영양 섭취가 가능하니 굳이 똥물을 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제 사람의 똥은 수많은 환경 호르몬들로 인해 인분에 독성이 가득하니 절대로 시도하면 안되는 일이다.
“진짜로 똥물 먹나요?”
다행히도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덕분에 실제로 똥물을 먹어보거나, 직접 본 적은 없다. 그 대신 다양한 종류의 ‘보약’이라 불리는 것들을 먹으며 완창 공연들과 소리 훈련을 해왔다. 지금도 공연을 앞두고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평소 삼시세끼를 열심히 맛있는 것으로 채워 먹고 충분한 수면시간과 주기적인 운동시간을 확보한다.

주변 소리꾼들 중 그 누구도 굳이 똥물을 먹어본 자도 없거니와 사실은 이제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선배들에게 들은 똥물 이야기조차 과연 믿어도 되는 정보일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혹독한 수련과 자신과의 싸움의 시간 없이 얻어지는 좋은 기술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똥물에 관한 소문은 사실은 소리꾼들의 소리수련이 그만큼 혹독하고, 그 혹독함은 신체에 절박하게 무리를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며 뼛속까지 소리꾼인 나는,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과연 나는 그만큼의 수련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질문하고 있다. 아마도 이 매서운 채찍질은 평생을 멈추지 않고 내 안에서 그 정도를 달리하며 존재하겠지. 너무 혹독하여 지나치게 외롭지는 않게, 이 어렵고도 짜릿한 소리훈련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두번째 칼럼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