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진은숙의 작품 생황 협주곡 ‘슈’-그 클래식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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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
진은숙 작곡가의 사진 크레딧 서울시향 제공
2014년 8월 28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BBC 프롬스 데뷔 무대에서 진은숙 작곡가의 생황 협주곡 ‘슈’가 연주되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좋다고만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신곡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작품. 차츰 시간이 지나고 이 작품을 접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더욱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나열하자면 무척이나 많을 것 같다. 음악의 내용에서 차오르는 상상, 생황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음악과 오케스트라로 대표되는 서양의 음악, 그에 따르는 클래식 음악을 들어왔던 태도의 문제까지…. 생황 협주곡 ‘슈’를 들으며 계속 생각하는, 지금도 진행 중인 몇몇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음악으로 그려보는 그림 – 빛이 추는 춤
생황 연주자이며 런던 공연의 협연자이기도 한 우웨이는 이 곡을 처음 접한 뒤, 진은숙 작곡가가 악기의 가능성에 대해 깊이 숙지하고 있는 점에 놀랐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파동’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빛과 음악. 그러니 음악은 빛의 현상을 ‘번역’할 수 있는 적절한 매체라는 작곡가의 생각 역시 읽었다.곡을 이끌어가는 생황의 노래는 처음부터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편하게 생황은 밤의 시간 자연의 세계를 관장하는 무형의 춤꾼이고, 오케스트라는 밤의 세상이 뛰놀고 있는 자연의 모든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자가 자신의 행동을 줄이며 관조적인 자세의 삶을 영위하다 결정적인 행동 혹은 몸짓 하나로 모든 것을 평정하듯이, 생황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자연의 움직임에 발동을 걸어 놓은 생황은 그가 시작시킨 자연의 노래들을 듣고 있다가 자신이 등장해야 할 시점에 적절히 등장한다. 무형의 춤꾼의 엄지발톱이 움직이는 미세한 동작, 뒤로 밀리는 혹은 앞으로 나서는 보이지 않을 듯한 빛의 속도로 추는 춤. 그런 순간들의 은유로 생황은 자연만큼의 크기를 획득하며 지배하는듯 들린다.
오케스트라는 생황 혹은 빛이 분(扮)한 그 무형의 춤꾼이 추고 있는 자연이란 무대의 훌륭한 배경들을 끊임없이 선사한다. 그것은 바람일 수도 있고, 새의 노래일 수도 있으며, 풀잎의 속삭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흔들림일 수도 있고, 춤에 맞춰주는 음악일 수도 있으며, 바짝 조여오는 긴장이거나 뒤이어 풀어지는 이완일 수도 있다.
“the most beautiful ugly sound".
이 작품에 대한 영국 BBC방송의 위의 표현을 우리 정서로 적절히 번역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면 그건 ‘탈’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음악과 춤이 연상되며, 춤이 벌어진 춤판과 그 아름다움 역시 쉽게 그려볼 수 있는….
음악이 혹시 청자의 계층을 목적할 수 있다면, 이 곡은 말 그대로 자연인을 목적하는 것처럼 들린다. 궁궐 혹은 궁전이거나 왕궁 혹은 왕정이거나, 그 안에서 연주되는 우리 표현으로는 ‘정악’ 또는 서양인들의 표현인 클래식과는 달리, 세상이 지닌 모든 자연의 크기로 만들어진 무용복을 입고 가장 못생긴 탈을 쓰고 화려한 속세가 아닌 자연과 자연인의 모든 세상을 비추는 빛의 춤. 진은숙 작곡가의 생황 협주곡을 들으면서 그려지는 그림 하나다.
일러스트 : 강호국
2. 생황과 오케스트라 혹은 Oriental & Western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담는 가장 크고 좋은 그릇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양한 질감과 색채를 지닌 음들을 빚어낼 수 있고,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그 안에 포함된 특정한 악기들을 이용한 액센트 역시 표현할 수 있다.작곡가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오케스트라는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에서부터 추상적인 관념 또는 사상을 상징적으로 담을 수 있는 거대한 그릇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을 콘텐츠로 하여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 물리적 지평을 넓혀오고 있는 오케스트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필자의 시간만 해도 그 방식으로의 음악을 40년 정도 듣고 난 후인 것 같다.
진은숙 작곡가의 이 작품이 그래서 더욱 영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케스트라라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반갑다. ‘협연자 1명 vs. 오케스트라’라는 일반적인 협주곡 형식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오케스트라는 그대로 두고 단 한 명에 해당하는 협연자와 협연 악기를 바꾸는 일. 경제적이지 않은가?
음악에 동양적인 색채와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동양 악기 하나를 오케스트라의 한 가운데 세우고 마치 아무런 일 없다는듯 서양 음악의 협주곡 형식을 이루는 일. 선택한 협연 악기 역시도 서양 교회와 성당 문화의 역사를 같이해 온 그 악기의 가장 작은 형태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일. 목관악기의 취구를 지니고, 날숨에 더해 들숨마저 음을 일으키며 오르간의 농축된 소리가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일. 충분히 흥미로운 일들 같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주도하며 그 큰 그릇의 움직임을 이끌어가는 생황. 서양의 음악이 구축해놓은 형식을 지키며, 서양 악기의 몇몇 속성들을 지닌 듯한 악기 단 하나를 사용하는 일. 세계 지도를 펴놓고 들여다보자면 유럽과 아시아의 한 가운데, 마치 양 문명의 음악을 만들어 온 의미 있는 편린들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상상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3. 클래식 음악을 들어왔던 나의 태도
‘슈’ 협주곡은 음악적 이국주의(Exoticism)의 위험을 오랜 시간 경계해 온 진은숙 작곡가가 그의 협주곡 중 비서구의 전통악기를 협연 악기로 택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베를린에서 보게 된 우웨이의 중국 생황 연주에 작곡가는 완전히 매료되었고, 생황이라는 악기가 지닌 무궁무진한 기교적 가능성과 다면적인 본성을 그의 연주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고 작곡가는 말하고 있다. 결국,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깨닫는다는 나이, 그리고 주관적 세계를 넘어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경지로 들어선다는 나이 즈음에 이르러 작곡가는 비서구 악기를 ‘서양적’인 문맥 속에 처음 집어넣은 이 멋진 협주곡을 썼다.청자의 입장 역시 다르지 않을 듯하다. 글로벌 음악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만들어낸 ‘슈’ 협주곡에 그런 고려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한국 태생의 청자들에게 작곡가는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음악 청취에 대한 태도를 조금 더 관용적인 태도로, 하지만 전복에 가까운 용기를 내 보라는 것.
글로만 생각해 보아도 엄청난 이야기일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며 전 세계적인 해석을 해 본다는 것’. 음악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을 서양에 국한하지 않고, 동양적이라 제한하지 않으며, 마치 새롭게 만난 무한의 세계에서 아무런 편견 없이 음악을 청취하게 되는 일. 역시 그 청취의 경지도 경험하고 학습하며 부단한 노력을 동반해야만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를 잇는 위치에 자리한 유구한 역사의 나라 이집트.
그 문화권에서 공기를 지배하는 신의 이름인 ‘슈’를 작품의 제목으로 정한 진은숙 작곡가의 선택은, 작품의 주제임에 더해 음악은 지구 위의 모든 인류에게 공용어임을 자신하는 위트 가득한 제스처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