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좌절에도 사랑을 노래하는 그레고리 포터, 한국에 사랑을 전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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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에 동생 잃어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음악의 역할 깨달아
26일 서울재즈페스티벌에 메인 무대 나서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음악의 역할 깨달아
26일 서울재즈페스티벌에 메인 무대 나서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정년퇴직 시기인 50대를 10년 앞둔 40대에 직업을 바꾸는 이가 몇이나 될까. 세계적인 재즈 보컬 그레고리 포터(51)는 40세에 새 직업을 얻은 뒤 곧장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뉴욕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포터는 데뷔 음반으로 그래미어워드 최우수 재즈 음반상 후보에 오른다. 평단의 호평을 받은 그는 데뷔한 지 3년 만에 그래미어워드를 받았다.
깜짝 스타가 탄생한 이야기 같지만, 그 이면엔 수많은 역경이 숨어있다. 그래서일까 포터의 음악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짙게 묻어있다. 10여년 간 사랑을 노래한 그레고리 포터가 올해는 한국 관객들에게 이를 들려준다.
포터는 26일부터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서울재즈 페스티벌'의 첫날 무대에 오른다. 그가 내한 공연을 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4년간 멀어졌던 공백을 다시 메우려 나선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포터를 만나 이번 공연의 주제를 물었다.
"막을 수 없는(irrepressible) 사랑에 대해 들려주고 싶습니다. 인종, 성별 등 모든 장애물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개념을 노래로 표현하려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포터는 최근 힘든 일을 겪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간 공연하지 못한데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음악의 의미를 곱씹으며 자신을 다시 일으켰다.
포터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일상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며 "하지만 슬픔을 내면에 가득 담으면서 음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어둠을 벗어나게 해주는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무명 시절을 겪었다. 지금은 재즈계의 독보적인 입지를 지녔지만 10여년 전까지 뉴욕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브로드웨이에서 방황했다.
포터는 2010년 39세 나이에 음반 '워터'를 내며 데뷔했다. 늦깎이 신인이었지만 데뷔 음반으로 그해 그래미어워드 후보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렸다. 2014년 음반 '리퀴드 스피릿'으로 그래미어워드를 거머쥐었다. 3년 뒤 '테이크 투 더 앨리'로 한 차례 더 그래미어워드를 수상한다. 재즈를 기반으로 소울, 가스펠, 리듬 앤드 블루스(R&B) 등 흑인 문화를 집약한 음악성이 평단과 대중을 홀렸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포터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식축구 라인맨을 맡던 유망주였다. 샌디애이고주립대에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깨 부상으로 인해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었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포터를 붙든 건 그의 어머니였다. 좋아하는 노래를 하라고 권했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를 독려했다.
결핍은 포터가 노래하는 원천이 됐다. 그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위해 '테이크 투 더 앨리'를 2016년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재즈에 빠진 계기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다. 어릴 적 가족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그는 남성상을 갈구해왔다. 빈자리를 채운 건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냇 킹 콜이었다.
"6살 무렵 냇 킹 콜의 음악을 처음 듣고 재즈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남성 어른에 대한 동경을 냇 킹 콜이 채워줬습니다. 그의 음악은 마치 아버지가 전해주는 인생에 대한 조언처럼 들렸죠. 그렇게 재즈로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자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포터는 재즈를 통해 아픔을 치유했다고 했다. 분노로 점철될 수 있었지만, 음악으로 승화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포터는 "평생 아버지가 물려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도 결국 그에게 받은 것이었다"며 "분노와 결핍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포터의 음악은 개인감정을 대중에 전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정치적 성향을 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여성 인권과 흑인 인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음악에 담아냈다. '1960 왓', '노 러브 다잉', '페인티드 온 캔버스' 등 여러 곡에 차별에 대한 저항심을 녹였다.
그는 "약자를 향한 애정이 어린 시선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끔 곡을 썼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메시지다"라며 "하지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부드럽고 유연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최근 발매한 두 장의 음반 명에 '오르다(rise)'라는 단어를 활용한 것도 이를 위해서다. 포터는 2020년 새 음반명을 '올 라이즈'로 지은데 이어 2021년에 낸 새 음반 제목은 '스틸 라이징'으로 지었다. 포터는 "음악은 사람들을 고양(Rise) 해줄 의무가 있다"며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들어도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성장하는 중이다. 이를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한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여느 캐럴 음반과 다를 거라고 했다. 기쁜 날이지만 또 소외된 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담았다고 한다. "풍요와 행복을 상징하는 날에 빈자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정신이야말로 크리스마스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깜짝 스타가 탄생한 이야기 같지만, 그 이면엔 수많은 역경이 숨어있다. 그래서일까 포터의 음악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짙게 묻어있다. 10여년 간 사랑을 노래한 그레고리 포터가 올해는 한국 관객들에게 이를 들려준다.
포터는 26일부터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서울재즈 페스티벌'의 첫날 무대에 오른다. 그가 내한 공연을 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4년간 멀어졌던 공백을 다시 메우려 나선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포터를 만나 이번 공연의 주제를 물었다.
"막을 수 없는(irrepressible) 사랑에 대해 들려주고 싶습니다. 인종, 성별 등 모든 장애물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개념을 노래로 표현하려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포터는 최근 힘든 일을 겪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간 공연하지 못한데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음악의 의미를 곱씹으며 자신을 다시 일으켰다.
포터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일상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며 "하지만 슬픔을 내면에 가득 담으면서 음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어둠을 벗어나게 해주는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무명 시절을 겪었다. 지금은 재즈계의 독보적인 입지를 지녔지만 10여년 전까지 뉴욕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브로드웨이에서 방황했다.
포터는 2010년 39세 나이에 음반 '워터'를 내며 데뷔했다. 늦깎이 신인이었지만 데뷔 음반으로 그해 그래미어워드 후보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렸다. 2014년 음반 '리퀴드 스피릿'으로 그래미어워드를 거머쥐었다. 3년 뒤 '테이크 투 더 앨리'로 한 차례 더 그래미어워드를 수상한다. 재즈를 기반으로 소울, 가스펠, 리듬 앤드 블루스(R&B) 등 흑인 문화를 집약한 음악성이 평단과 대중을 홀렸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포터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식축구 라인맨을 맡던 유망주였다. 샌디애이고주립대에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깨 부상으로 인해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었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포터를 붙든 건 그의 어머니였다. 좋아하는 노래를 하라고 권했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를 독려했다.
결핍은 포터가 노래하는 원천이 됐다. 그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위해 '테이크 투 더 앨리'를 2016년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재즈에 빠진 계기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다. 어릴 적 가족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그는 남성상을 갈구해왔다. 빈자리를 채운 건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냇 킹 콜이었다.
"6살 무렵 냇 킹 콜의 음악을 처음 듣고 재즈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남성 어른에 대한 동경을 냇 킹 콜이 채워줬습니다. 그의 음악은 마치 아버지가 전해주는 인생에 대한 조언처럼 들렸죠. 그렇게 재즈로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자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포터는 재즈를 통해 아픔을 치유했다고 했다. 분노로 점철될 수 있었지만, 음악으로 승화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포터는 "평생 아버지가 물려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도 결국 그에게 받은 것이었다"며 "분노와 결핍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포터의 음악은 개인감정을 대중에 전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정치적 성향을 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여성 인권과 흑인 인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음악에 담아냈다. '1960 왓', '노 러브 다잉', '페인티드 온 캔버스' 등 여러 곡에 차별에 대한 저항심을 녹였다.
그는 "약자를 향한 애정이 어린 시선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끔 곡을 썼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메시지다"라며 "하지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부드럽고 유연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최근 발매한 두 장의 음반 명에 '오르다(rise)'라는 단어를 활용한 것도 이를 위해서다. 포터는 2020년 새 음반명을 '올 라이즈'로 지은데 이어 2021년에 낸 새 음반 제목은 '스틸 라이징'으로 지었다. 포터는 "음악은 사람들을 고양(Rise) 해줄 의무가 있다"며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들어도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성장하는 중이다. 이를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한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여느 캐럴 음반과 다를 거라고 했다. 기쁜 날이지만 또 소외된 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담았다고 한다. "풍요와 행복을 상징하는 날에 빈자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정신이야말로 크리스마스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