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이주한 촌사람들의 애환과 산업화의 그늘 개성적 문체에 담아
언론인으로도 왕성한 활동…신군부 탄압으로 해직당하기도
토속어·해학에 담은 비판의식…소설가 최일남 91세로 별세(종합2보)
도시로 이주한 촌사람들의 애환과 급속한 산업화의 그늘을 토속적이면서도 개성적인 문체로 그린 소설가 최일남이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대한민국예술원과 유족에 따르면 최 작가는 이달 26일 몸 상태가 악화해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이날 0시 57분께 숨을 거뒀다.

193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3년 '문예'지에 단편소설 '쑥 이야기'가 추천된 데 이어 1956년 '현대문학'지에 '파양'(爬痒)이 최종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경향신문에 기자로 입사한 1962년 이후로는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66년부터 다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왕성하게 작품들을 내놨다.

최일남은 출세한 촌사람들이 도시에 와서 겪는 객지 생활의 애환과 산업화의 그늘 등을 풍부한 토착어를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문체로 그린 작가로 꼽힌다.

언론사와 정치권을 배경으로 정치권력의 위선과 횡포, 지식인의 타락을 풍자한 비판적 사실주의 경향의 소설들도 작품 세계의 다른 중요한 축을 이룬다.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왕성하게 집필한 고인은 전반적으로 당대의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해학적이고도 개성 있는 문장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편집으로는 1975년 출간한 '서울 사람들'을 비롯해 '홰치는 소리'(1981), '거룩한 응달'(1982), '그리고 흔들리는 배'(1984), '하얀 손'(1994), '아주 느린 시간'(2000)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그리고 흔들리는 배'는 1990년대 초반 각색돼 KBS에서 일일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장편으로는 '거룩한 응달'(1982), '하얀손'(1994), '덧없어라 그 들녘'(1996), '국화밑에서'(2017) 등을 남겼고, '말의 뜻 사람의 뜻'(1988), '정직한 사람에 꽃다발은 없어도'(1993),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2006) 등 에세이집도 내놨다.

언론인으로서 출간한 대담집과 사회평론집도 있다.

고인은 생전에 월탄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상문학상, 인촌문화상, 한무숙문학상, 김동리문학상을 받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01년에는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2008∼2010년에는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토속어·해학에 담은 비판의식…소설가 최일남 91세로 별세(종합2보)
고인의 삶을 설명할 때 언론인으로서의 발자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민국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탄압으로 동아일보 편집부국장과 문화부장을 겸하던 중 해직당했다.

1984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직했으며 1988∼1991년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을 지냈다.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1995년에는 장지연 언론상을 받았다.

해직 경험은 최일남에게 상처를 남겼고 그의 작품 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해직됐다가 복직한 지 한참이 지난 1997년엔 해직 당시의 언론계에 대한 통렬한 고백과 문제의식을 담은 연작장편소설 '만년필과 파피루스'를 발표했다.

최 작가의 유족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엄혹했던 시절 동아일보 기자로서 김중배 선생과 함께 격주로 칼럼을 연재했다.

당시 최일남 칼럼과 김중배 칼럼이 우울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희망과 정보를 준 것 같다"고 회고했다.

유족은 1남 1녀와 사위, 며느리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3호실이며 발인은 30일 오전 9시에 예정돼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