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함과 유머로 작별 고한 '백발'의 4중주 [클래식 리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
대학 시절 결성해 어느덧 70대
47년 활동 마치고 마지막 무대
예술의전당 '라스트 댄스' 공연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 www.arte.co.kr
대학 시절 결성해 어느덧 70대
47년 활동 마치고 마지막 무대
예술의전당 '라스트 댄스' 공연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 www.arte.co.kr
한국에서 열린 많은 클래식 음악 공연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공연을 손꼽아본다면 유독 현악 4중주단의 마지막 공연이 떠오른다. 스메타나 4중주단과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을 비롯해 마지막 원년 멤버인 발렌틴 벨린스키와 함께한 보로딘 4중주단 등 역전의 노장들이 보여준 마지막 내한공연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음악적인 감동 이상의 짙은 페이소스를 공연장에서 흩뿌린 바 있다.
이를 생각해 보면 수십 년 이상 그들이 함께한 독보적인 앙상블과 긴밀한 호흡은 물론이려니와 그 시간에서 기인한 풍후한 음향과 핍진한 디테일의 조화에서 기인한 것일 것이다. 이렇게 젊은 실내악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음악적 감흥을 전달받았다는 점에서 현악 4중주단의 ‘마지막’ 공연은 한국 청중에게 유독 각별하게 다가왔다.
1976년 미국 줄리아드 음대 학생 4명이 결성해 무려 47년 동안 앙상블을 이어온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도 이 감동의 역사에 합류하게 됐다. 2023년 은퇴를 선언하며 비로소 그 큰 눈을 감고자 한국 공연에서는 ‘라스트 댄스’라는 부제를 달고 20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교감을 나눈 한국 청중과의 이별을 준비한 것이다.
2023년 5월 27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등장한 네 명의 음악가. 그동안의 시간을 대변해주듯 검디검었던 그들의 머리카락은 어느덧 백발로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 파트를 담당해온 유진 드러커(71)와 필립 세처(72)는 창단 멤버로서의 명예로움을 발산하며 첫 연주곡인 퍼셀의 샤콘느부터 강렬한 흡인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어 연주된 하이든의 현악 4중주 G장조 Op.33 No.5와 모차르트의 D단조 K.421은 상호 대비를 이루는 세트로서 에머슨 4중주단의 개성과 특징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특히 1부에서는 유진 드러커가 1바이올린으로 등장해 음악을 주도적으로 리드했다. 그는 간헐적으로 음이 플랫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종을 울리는 듯한 청아한 울림과 카리스마 넘치는 투명한 음색을 흩뿌리며 전성기 시절의 전설적인 앙상블을 다시금 소환해냈다.
하이든 작품 1악장에서는 첼로의 유머러스한 표현력, 비애감과 우아함이 돋보였다. 2악장에서는 전원이 스타카토로 종지를 찍는 여운이 인상적이었고, 4악장에서는 쾌활함과 노련함이 어우러지며 극적인 전개를 거듭하는 연주가 귀를 사로잡았다. 모차르트는 긴 정적과 강렬한 효과의 대비가 인상적인 곡. 3악장이 시작되자 불안감이 엄습한 듯한 음향과 피치카토 반주 위에 펼쳐진 감각적인 바이올린 독주 선율의 대조가 돋보였다. 변주의 다채로운 묘미와 비올라의 역할이 놀라움을 더한 4악장은 깊은 감동을 줬다.
2부 베토벤 현악 4중주 E단조 Op.59 No.2에서는 필립 세처가 리더로 나서며 에머슨 특유의 변검과도 같은 새로운 드라마를 펼쳐냈다.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치밀하면서도 강력한 앙상블과 일체감 높은 표현력을 바탕으로 힘찬 1악장과 자조적인 2악장, 라주모프스키가 제안한 러시아 멜로디가 돋보이는 3악장, 쾌속의 템포에서도 여전히 정밀한 디테일과 원숙한 프레이징이 살아난 4악장이 한숨처럼 지나갔다.
현악 4중주단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음악이 바로 이런 경지일 것이다. 여운과 감동, 유머가 함께 어우러진 세 곡의 앙코르곡을 마지막으로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쏟아진 이 공연이야말로 에머슨 4중주단에 대한 예술적 각인으로 한국 청중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이를 생각해 보면 수십 년 이상 그들이 함께한 독보적인 앙상블과 긴밀한 호흡은 물론이려니와 그 시간에서 기인한 풍후한 음향과 핍진한 디테일의 조화에서 기인한 것일 것이다. 이렇게 젊은 실내악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음악적 감흥을 전달받았다는 점에서 현악 4중주단의 ‘마지막’ 공연은 한국 청중에게 유독 각별하게 다가왔다.
1976년 미국 줄리아드 음대 학생 4명이 결성해 무려 47년 동안 앙상블을 이어온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도 이 감동의 역사에 합류하게 됐다. 2023년 은퇴를 선언하며 비로소 그 큰 눈을 감고자 한국 공연에서는 ‘라스트 댄스’라는 부제를 달고 20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교감을 나눈 한국 청중과의 이별을 준비한 것이다.
2023년 5월 27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등장한 네 명의 음악가. 그동안의 시간을 대변해주듯 검디검었던 그들의 머리카락은 어느덧 백발로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 파트를 담당해온 유진 드러커(71)와 필립 세처(72)는 창단 멤버로서의 명예로움을 발산하며 첫 연주곡인 퍼셀의 샤콘느부터 강렬한 흡인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어 연주된 하이든의 현악 4중주 G장조 Op.33 No.5와 모차르트의 D단조 K.421은 상호 대비를 이루는 세트로서 에머슨 4중주단의 개성과 특징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특히 1부에서는 유진 드러커가 1바이올린으로 등장해 음악을 주도적으로 리드했다. 그는 간헐적으로 음이 플랫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종을 울리는 듯한 청아한 울림과 카리스마 넘치는 투명한 음색을 흩뿌리며 전성기 시절의 전설적인 앙상블을 다시금 소환해냈다.
하이든 작품 1악장에서는 첼로의 유머러스한 표현력, 비애감과 우아함이 돋보였다. 2악장에서는 전원이 스타카토로 종지를 찍는 여운이 인상적이었고, 4악장에서는 쾌활함과 노련함이 어우러지며 극적인 전개를 거듭하는 연주가 귀를 사로잡았다. 모차르트는 긴 정적과 강렬한 효과의 대비가 인상적인 곡. 3악장이 시작되자 불안감이 엄습한 듯한 음향과 피치카토 반주 위에 펼쳐진 감각적인 바이올린 독주 선율의 대조가 돋보였다. 변주의 다채로운 묘미와 비올라의 역할이 놀라움을 더한 4악장은 깊은 감동을 줬다.
2부 베토벤 현악 4중주 E단조 Op.59 No.2에서는 필립 세처가 리더로 나서며 에머슨 특유의 변검과도 같은 새로운 드라마를 펼쳐냈다.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치밀하면서도 강력한 앙상블과 일체감 높은 표현력을 바탕으로 힘찬 1악장과 자조적인 2악장, 라주모프스키가 제안한 러시아 멜로디가 돋보이는 3악장, 쾌속의 템포에서도 여전히 정밀한 디테일과 원숙한 프레이징이 살아난 4악장이 한숨처럼 지나갔다.
현악 4중주단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음악이 바로 이런 경지일 것이다. 여운과 감동, 유머가 함께 어우러진 세 곡의 앙코르곡을 마지막으로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쏟아진 이 공연이야말로 에머슨 4중주단에 대한 예술적 각인으로 한국 청중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