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파생상품 차액결제거래(CFD)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2015년 도입된 후 규제 사각지대에 있었다. 라덕연 일당은 그 허점을 파고들어 수년 전부터 주가조작 수단으로 악용했지만 금융당국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했다. 증권사는 경쟁적으로 CFD 영업에 나서면서 수수료 수입을 챙기는 데만 열을 올렸다. 한 달여 전 CFD 주가조작 수법이 밝혀지자 민낯이 드러났다. 금융당국이 대대적인 CFD 제도 개선을 서두른 배경이다. CFD 제도 개선안은 이번 주가조작 사건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마련됐다.

3억원 이상 큰손만 가능

29일 금융당국이 내놓은 CFD 개선안은 크게 △CFD 투자 요건 강화 △깜깜이 투자 구조 개선 △신용융자와의 규제 차익 해소 등으로 나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CFD 투자자 문턱을 높인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5년 사이 1년 넘게 월말 잔액 3억원을 유지하는 전문투자자에게만 CFD를 허용하기로 했다. 월말 잔액 5000만원 수준에 불과한 전문투자자 요건 자체를 건들지 않고 장외파생상품 투자요건을 별도로 신설한 것이다. 아울러 최초로 개인 전문투자자를 인증할 때나 CFD 등 장외파생상품 계약 땐 대면 확인(영상통화 포함)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라덕연 일당은 자산가들의 휴대폰을 받아 각각 전문투자자로 등록시켜 CFD 거래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CFD 위험성을 감안할 때 그 문턱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월말 잔액 3억원 이상 ‘큰손’들만 거래가 가능해지면 CFD 이용자는 현재의 22%인 6000명 수준까지 급감하게 된다.
전문투자자 2만명 CFD 거래 차단…증권사 "철수 고민"

CFD 투자자 계좌정보 추적

CFD 투자의 맹점으로 지적된 깜깜이 투자 구조 역시 개선된다. CFD의 경우 개인투자자 비율이 96.5%에 달했지만, 투자자는 기관 혹은 외국인으로 표기돼왔다. 앞으론 실제 투자자 유형을 밝혀 표기하도록 개선된다. CFD 전체 잔액, 종목별 잔액도 공시한다. 레버리지 투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시장 참여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의 거래정보저장소(TR) 보고항목에 실제 CFD 투자자의 계좌정보를 추가하기로 했다. 익명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시장 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신용융자와 마찬가지로 ‘CFD 관련 자율적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을 마련해 저유동성 종목 등에 대한 CFD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CFD 공급자금을 증권사 신용공여 한도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아 경쟁적으로 CFD 영업을 늘려왔다. CFD의 월평균 거래금액은 2019년 9000억원, 2020년 2조6000억원을 거쳐 2021년에는 5조8000억원으로 불었다.

“대형 증권사들 영업중단 가능성”

금융당국에서 대대적인 규제로 CFD 거래는 절반 이하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증권사는 사실상 CFD 사업부를 구조조정하거나 서비스를 종료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들은 CFD 거래금액이 2019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익성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전산 시스템 정비 등에 필요한 비용만 늘어나기 때문에 수지를 분석해 아예 철수하는 곳이 생겨날 것이란 예상이다. CFD 관련 레버리지를 증권사 신용한도에 포함하기로 한 점도 영업에 부담이 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CFD 수익 비중이 0.1~0.2%에 불과한 상태에서 부담만 늘어나는 구조”라며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CFD 수익 비중이 매우 낮기 때문에 서비스를 종료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CFD 제도 개편 이후엔 세법상 대주주 요건에 해당하는 주식 투자자나 해외 주식 투자에 나서는 개인 전문투자자 등만 CFD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법상 대주주나 해외 주식 투자자에겐 양도소득세 22%가 부과되지만 CFD는 절반 수준인 11%만 부과된다.

이동훈/선한결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