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어느 날, 봄의 하이라이트인 재즈 페스티벌을 하루 앞두고 있다. 몇 개월 전, 아직 아침 공기가 차가울 무렵 과거 대학시절 수강신청의 노하우를 발휘해 광클릭으로 예매에 성공했다. 이날을 위해 피크닉에 최적화된 캠핑 의자와 간이 테이블, 조명, 와인과 간단히 요기할 안주를 준비했다.

저녁에는 선선한 맞바람을 고려해 약간의 바람막이 옷도 챙겼다. 부엌 찬장에서 도시락 박스를 꺼내 가지런히 잘라 넣은 과일 조각도 잊지 않았다. 예전에 공연이 끝나고 쓰레기 산더미를 보고 거슬렸던 것을 떠올리며, 올해는 분리수거 비닐봉지와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캠핑 식기류도 챙겼다.

인파가 많을 것을 대비해 이 많은 준비물을 배낭 하나에 다 넣어 두 손이 자유롭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공연 전 날에 이렇게 철저한 나의 준비에 스스로 뿌듯해하며 냉장고에서 시원한 탄산수를 꺼내들고 창밖으로 보이는 달을 본다. 오늘따라 유독 달무리가 짙어 보인다. (설마, 내일 비가 오는 건 아니겠지…)
“같이 재즈 페스티벌 가실래요?”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한창 정상을 되찾아가는 공연업계. 내한 아티스트 라인업이 바뀌지 않았는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내일 직접 들을 아티스트들의 최근 앨범을 복습한다. 얼리버드로 예약한 덕분에 할인받은 표를 호기심에 중고시장 시세와 비교해 본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매진되었던 표가 왜 판매 가격보다 저렴하게 나와 있는 걸까? 뭔가 불길한 마음에 공연 당일 날씨를 검색해 본다. 아뿔싸. 낮에는 강수확률 70%, 밤에는 90%까지 올라갈 예정이라고 한다. 고대했던 피크닉 모습 대신 모두가 우비와 장화를 신고 있는 모내기 풍경이 연출될 게 뻔하다.

하지만 표 취소 기한은 이미 지난 상황. 10여 년 전 천둥 번개 속에서 듣던 영국의 한 아티스트의 실황 공연이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그 당시를 떠올리며 결국 다음 날 공연을 가기로 다짐한다. 다만 야무지게 준비한 배낭은 다음 주말 나들이를 위해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두기로 했다.

2000년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각종 음악 페스티벌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떼창으로 유명한 한국 팬을 그리워해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을 찾는다는 세계적인 Z세대 아티스트 내한공연부터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라인업으로 구성된 DJ 페스티벌, 그리고 서울과 가평 등 지역을 단위로 하는 ‘재즈 페스티벌’을 많이 볼 수 있다.

많은 이들로부터 평소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재즈 장르인데, 그렇다면 재즈 페스티벌에 그토록 모두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 뒤에는 ‘페스티벌에 온 사람들은 과연 재즈를 좋아할까?’라는 질문 또한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 우아한 피크닉>

일반 대중에게 재즈 음악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세련되고 감성적이며 멋지다고 답변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5성급 호텔 라운지뿐만 아니라 고급 건물의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에서도 재즈 음악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부는 재즈 음악을 들음으로써 스스로를 조금 더 고급스럽고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아티스트가 무대에 등장하면 가장 열성적인 팬들이 무대 앞을 차지한다. 비트가 있는 음악이라면 눈을 감고 리듬에 몸을 맡기는 강성 음악팬들이 맨 앞을 차지하고, 돗자리와 캠핑 의자에 앉아 음악을 배경으로 한 채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는 관객이 그 뒤로 이어진다. 초저녁에는 분위기 연출을 위해 은은한 캠핑 조명이나 캔들이 등장한다. 피크닉 식탁보 위에는 와인잔과 와인병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최근에는 위스키도 종종 보인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주 병이나 막걸리 병은 연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재즈 바에서는 음악이 연주되는 중에도 관객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실황 공연 음원을 들어도 음악 뒤에는 관객들의 대화와 건배 소리, 바텐더의 셰이커 소리가 종종 들린다.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이런 독특한 재즈 공연 문화를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재즈 애호가들에게 이러한 소음은 음악에 집중하는 데 큰 방해가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재즈의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기꺼이 비싼 표 값을 내면서 자신의 일부로 내재화하려고 한다.

마치 재즈의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주 특성을 반영하듯, 공연도 공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와인과 분위기에 취해 순간 나도 모르게 어깨에 그루브를 탄다고 해도 주변 다른 관객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재즈 페스티벌의 매력이기도 하다. 난 이렇게 음악(과 술)에 흥겨워하는 타인의 구경할 권리(?)도 표값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중급자를 위한 가이드: 내가 좋아하는 재즈 아티스트가 라인업에?>

재즈에 보다 진심인 관객이라면 페스티벌의 아티스트 라인업을 미리 확인해 볼 것이다. 세계적인 재즈 거장들이 보인다면, 비싼 가격임에도 예약할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최근 재즈 페스티벌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3일 행사라고 가정하면, 탑 네임드 아티스트가 일자마다 가장 프라임 타임인 저녁 8~10시에 메인 스테이지를 차지한다. 그 앞 시간에는 2~3개의 작은 무대가 마련되고, 여기에는 국내 재즈 애호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익숙한 한국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등장한다.

그보다 더 앞 시간,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간에는 재즈씬에 막 입문한 인디 아티스트들이 처음으로 오른 무대가 가끔 펼쳐지기도 한다. 이처럼 재즈 페스티벌은 다양한 무대에서 다양한 아티스트, 음악적 스타일을 한자리에서 모두 체험해 볼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서브 장르 음악을 맛보면 재즈가 얼마나 큰 장르인지, 그 안에 얼마나 파생되는 서브 장르가 많은지 알 수 있다.

물론 일부는 페스티벌의 상업화로 재즈와는 무관한 아티스트가 가장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어쩌면 대중에게 재즈라는 장르를 끌어들이기 위해, 혹은 주최 측이 공연의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재즈와 무관한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초대는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재즈의 다양성에 조금 더 관심이 있거나, 떠오르는 차세대 아티스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면 이른 시간에 진행되는 공연장 앞자리를 채워 호응을 해보자. 음악 활동을 하면서 첫 무대에 오른 신생 아티스트에게 관객 한 명 한 명의 응원은 너무나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고급자를 위한 가이드: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은 5월부터 7월 사이에 개최되는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는 몽트뢰, 베를린, 코펜하겐 등지의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며, 미주권에서는 몬트리올, 아시아권에서는 자바 재즈 페스티벌 등이 있다. 한국 내 재즈 페스티벌처럼 야외에서도 진행되기도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은 도시 전체가 다양한 실내외 공연장에서 1~2주에 걸쳐 진행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반 시민에게 무료로 진행되는 공연 비중도 커서 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1967년 처음 생겨난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 엘라 피츠제랄드, 빌 에번스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거쳐간 페스티벌이다. 규모로는 최대를 자랑하는 캐나다의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엔 매년 200만 명의 관객이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수 백 가지의 공연을 보러 오며, 비(非) 재즈 장르 아티스트도 다수 찾아오니 음악적 다양성도 누릴 수 있다.

물론 강성 재즈 팬이 아닌 이상 재즈 페스티벌 일정을 보면서 휴가 여행지를 결정짓지는 않을 테지만, 도시 전체가 음악으로 가득한 채 주민과 관광객, 음악가 모두 모였을 때의 생동감과 에너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혹시라도 여행 일정과 단 반나절이라도 맞출 수 있다면 꼭 시도해 보길 추천한다.

코로나 시대가 마침내 끝나고, 음악가들이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재즈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추천한다. 주중 내내 모니터만 바라본 눈에게 휴식을, 출퇴근길에 실리콘 이어버드로 숨 못 쉬는 귀를 위한 호강을,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계절을 만끽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