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 호수에 퍼진 시…"오, 경이로운 빛의 인간"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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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국제시축제' 참가記
사흘간 7개국 시인 12명 초청
오래된 성당·광장·학교서 낭송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관객들
"깊은 사유와 통찰의 빛 공감"
학생들은 각국 시인 작품 읽고
연극·그림·영상 선보이며 토론
고두현 시인
사흘간 7개국 시인 12명 초청
오래된 성당·광장·학교서 낭송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관객들
"깊은 사유와 통찰의 빛 공감"
학생들은 각국 시인 작품 읽고
연극·그림·영상 선보이며 토론
고두현 시인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록의 빙하호를 품은 호반 도시 코모. 유서 깊은 건축물과 명사들의 별장이 몰려 있는 이곳에서 지난 19~21일 제13회 국제시축제 ‘유로파 인 베르시(Europa in versi)’가 열렸다.
올해 초대 시인은 7개국 12명. 최동호 김구슬 고두현 등 한국 시인 3명을 비롯해 베트남과 러시아, 미국, 콜롬비아, 헝가리에서 각 1명, 주최국 이탈리아에서 4명이 참가했다. 코소보 시인 1명은 교통사고 때문에 동참하지 못했다.
축제위원장이자 ‘코모 시(詩)의 집’ 창립회장인 라우라 가라바글리아 시인은 이들 시인과 함께 인수브리아대와 3곳의 고교, 17세기 유적지인 빌라 갈리아, 도심 광장, 두오모 등에서 사흘 동안 시에 관한 대화와 낭송을 펼쳤다.
“선생님의 시를 주의 깊게 듣고 감명받았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의 신비로움을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인데, 빛에 대한 이런 민감함은 어디에서 오는가요?”
“저는 빛을 오래 생각해 왔습니다. 석가는 2500년 전, 예수는 2000년 전에 인간에게 빛을 전해주었죠. 동서양의 두 위대한 성인을 저는 빛의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석가의 깨달음, 예수의 가르침 모두 빛을 통해 전달됐지요. 빛은 생명이요, 어둠은 죽음입니다.”
“이탈리아도, 한국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시에서 말한 빛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요?”
“이탈리아는 경제적 어려움, 한국은 정치적 어려움이 있지요. 이 모든 문제는 인간에게 귀속됩니다. 빛의 인간은 현실의 난관을 충만한 빛으로 극복하고 그것을 통해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며 영원으로 가는 길을 열 줄 압니다. 그 힘을 저는 경이로운 빛이라고 부릅니다.”
“선생님의 깊은 사유와 시적 통찰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시인과 청중의 대화는 성당에서 야외 테이블로, 각국 시인들의 ‘식탁 토론’으로 이어졌다. 학생들과 만나는 프로그램도 풍성했다. 첫날 방문한 곳은 전지 발명자 알렉산드로 볼타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였다. 이곳 태생으로 시인을 꿈꿨던 볼타의 후예답게 학생들은 톡톡 튀는 질문과 창의적인 독후감으로 시인들을 놀라게 했다.
인수브리아대 학생들과 두 곳의 다른 고교 학생들도 다양한 시적 체험을 무대공연으로 선보였다. 학생들이 초대 시인들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비디오와 음악, 그림, 연극 등은 여러 차례 박수를 받았다.
유서 깊은 건물과 공원 주변을 거닐며 시를 나누는 낭독 산책도 다채로웠다. 코모 시내 중심가 두오모 광장에서 열린 낭독회는 현지 시인과 여행객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둘러서서 경청했다. 가족 단위 관객 중에는 전날 고교에서 만난 학생과 그 부모도 있었다.
고풍스러운 빌라 갈리아에서 열린 주말 행사에는 강형식 주(駐)밀라노총영사가 참석해 “이탈리아 대학과 고교에서 한국어 과정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양국 문화 교류가 더 늘어나길 바란다”고 축사했다.
이번 축제에서 미국 시인 윌리엄 월락은 감각적인 리듬과 유려한 몸짓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헝가리 시인 아틸라 발라즈의 멋진 목소리, 러시아 출신 율리아 피칼로바의 경쾌한 암송, 콜롬비아 시인 카를로스 벨라스케스 토레스의 역동적인 낭송도 주목받았다.
베트남 시인 키우 빅 하우의 독특한 성조와 이탈리아 시인 에밀리오 코코, 주세페 보바의 부드러운 운율, 데보라 진가엘로와 라우라 카프라의 창의적인 표현법 또한 인상적이었다.
김구슬 시인의 ‘시를 쓴다는 것’을 듣고 짧은 시극을 펼치거나 최동호 시인의 ‘빨래’를 듣고는 한글이 적인 셔츠를 빨랫줄에 너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고두현 시인의 ‘튤립 뿌리에선 종소리가 난다’가 낭송될 때는 큰 종이에 튤립꽃을 그려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인수브리아대 학생 대표들은 행사 마지막 날까지 주최 측과 동행했다. 이들 청년 세대의 열정뿐 아니라 현지 문인의 참여 열기도 대단했다. 도심과 호숫가를 거닐며 시와 호흡하는 동안 빗방울이 흩날려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문화강국 이탈리아의 속살을 보는 듯했다. 사흘 동안 시인들과 교감한 학생, 시민이 500명을 넘었다.
초대 시인들의 작품을 자국어와 영어, 이탈리아어로 편집해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이를 공유하면서 지구촌을 하나로 잇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번 축제를 총괄한 라우라 시인은 첫날 나눠준 작은 상자 속 종이를 상기시키며 “그 종이에 약간의 씨앗이 들어 있는데 짧은 시를 써서 함께 묻고 물을 줘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란 식물이 모든 곳으로 퍼질 당신 시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의 씨앗’만큼 소중한 덕담이었다.
행사 마지막 날, 사흘간 흐렸던 날씨가 환하게 갰다. 드넓은 코모호수 위로 ‘경이로운 빛’이 가득 쏟아졌다.
올해 초대 시인은 7개국 12명. 최동호 김구슬 고두현 등 한국 시인 3명을 비롯해 베트남과 러시아, 미국, 콜롬비아, 헝가리에서 각 1명, 주최국 이탈리아에서 4명이 참가했다. 코소보 시인 1명은 교통사고 때문에 동참하지 못했다.
축제위원장이자 ‘코모 시(詩)의 집’ 창립회장인 라우라 가라바글리아 시인은 이들 시인과 함께 인수브리아대와 3곳의 고교, 17세기 유적지인 빌라 갈리아, 도심 광장, 두오모 등에서 사흘 동안 시에 관한 대화와 낭송을 펼쳤다.
이탈리아에 한국어 과정 늘어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작은 성당에서 한 시낭송과 대화였다. 빌라 소르마니 마르조라티의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을 배경으로 최동호 시인이 ‘경이로운 인간, 석가’를 낭송하자 빛과 인간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선생님의 시를 주의 깊게 듣고 감명받았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의 신비로움을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인데, 빛에 대한 이런 민감함은 어디에서 오는가요?”
“저는 빛을 오래 생각해 왔습니다. 석가는 2500년 전, 예수는 2000년 전에 인간에게 빛을 전해주었죠. 동서양의 두 위대한 성인을 저는 빛의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석가의 깨달음, 예수의 가르침 모두 빛을 통해 전달됐지요. 빛은 생명이요, 어둠은 죽음입니다.”
“이탈리아도, 한국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시에서 말한 빛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요?”
“이탈리아는 경제적 어려움, 한국은 정치적 어려움이 있지요. 이 모든 문제는 인간에게 귀속됩니다. 빛의 인간은 현실의 난관을 충만한 빛으로 극복하고 그것을 통해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며 영원으로 가는 길을 열 줄 압니다. 그 힘을 저는 경이로운 빛이라고 부릅니다.”
“선생님의 깊은 사유와 시적 통찰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시인과 청중의 대화는 성당에서 야외 테이블로, 각국 시인들의 ‘식탁 토론’으로 이어졌다. 학생들과 만나는 프로그램도 풍성했다. 첫날 방문한 곳은 전지 발명자 알렉산드로 볼타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였다. 이곳 태생으로 시인을 꿈꿨던 볼타의 후예답게 학생들은 톡톡 튀는 질문과 창의적인 독후감으로 시인들을 놀라게 했다.
인수브리아대 학생들과 두 곳의 다른 고교 학생들도 다양한 시적 체험을 무대공연으로 선보였다. 학생들이 초대 시인들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비디오와 음악, 그림, 연극 등은 여러 차례 박수를 받았다.
유서 깊은 건물과 공원 주변을 거닐며 시를 나누는 낭독 산책도 다채로웠다. 코모 시내 중심가 두오모 광장에서 열린 낭독회는 현지 시인과 여행객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둘러서서 경청했다. 가족 단위 관객 중에는 전날 고교에서 만난 학생과 그 부모도 있었다.
고풍스러운 빌라 갈리아에서 열린 주말 행사에는 강형식 주(駐)밀라노총영사가 참석해 “이탈리아 대학과 고교에서 한국어 과정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양국 문화 교류가 더 늘어나길 바란다”고 축사했다.
이번 축제에서 미국 시인 윌리엄 월락은 감각적인 리듬과 유려한 몸짓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헝가리 시인 아틸라 발라즈의 멋진 목소리, 러시아 출신 율리아 피칼로바의 경쾌한 암송, 콜롬비아 시인 카를로스 벨라스케스 토레스의 역동적인 낭송도 주목받았다.
베트남 시인 키우 빅 하우의 독특한 성조와 이탈리아 시인 에밀리오 코코, 주세페 보바의 부드러운 운율, 데보라 진가엘로와 라우라 카프라의 창의적인 표현법 또한 인상적이었다.
시인들, 학생·시민 500명과 교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초대 시인들과 교감하는 학생들의 태도였다. 이들은 시인의 문장과 단어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 문학을 전공하고 싶은데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달라고도 했다.김구슬 시인의 ‘시를 쓴다는 것’을 듣고 짧은 시극을 펼치거나 최동호 시인의 ‘빨래’를 듣고는 한글이 적인 셔츠를 빨랫줄에 너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고두현 시인의 ‘튤립 뿌리에선 종소리가 난다’가 낭송될 때는 큰 종이에 튤립꽃을 그려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인수브리아대 학생 대표들은 행사 마지막 날까지 주최 측과 동행했다. 이들 청년 세대의 열정뿐 아니라 현지 문인의 참여 열기도 대단했다. 도심과 호숫가를 거닐며 시와 호흡하는 동안 빗방울이 흩날려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문화강국 이탈리아의 속살을 보는 듯했다. 사흘 동안 시인들과 교감한 학생, 시민이 500명을 넘었다.
초대 시인들의 작품을 자국어와 영어, 이탈리아어로 편집해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이를 공유하면서 지구촌을 하나로 잇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번 축제를 총괄한 라우라 시인은 첫날 나눠준 작은 상자 속 종이를 상기시키며 “그 종이에 약간의 씨앗이 들어 있는데 짧은 시를 써서 함께 묻고 물을 줘 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란 식물이 모든 곳으로 퍼질 당신 시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의 씨앗’만큼 소중한 덕담이었다.
행사 마지막 날, 사흘간 흐렸던 날씨가 환하게 갰다. 드넓은 코모호수 위로 ‘경이로운 빛’이 가득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