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화가] 고통 가득한 삶 속에서 밝은 그림만 그린 뒤피
프랑스 예술가 라울 뒤피(1877~1953)는 ‘흙수저’였다. 가난한 음악가 집안의 아홉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그는 10대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커피 수입회사 종업원으로 일했다. 고통은 계속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의 고향을 파괴했다. 손가락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던 관절염은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

하지만 뒤피의 그림에선 삶의 고통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화사한 색채 덕분이다. ‘고통을 딛고 어떻게 이런 밝은 그림을 그렸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것을 지우도록 돼 있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그린 가로 60m, 세로 10m의 대형 프레스코 벽화 ‘전기 요정’은 이런 뒤피의 경쾌한 색채를 잘 보여준다. 그는 파스텔톤 물감으로 고대부터 중세, 현대까지 전기와 관련된 인물 111명을 그렸다. 문명의 발전을 이끈 전기의 역사를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낸 것이다.

이 벽화를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뒤피의 전시가 각각 열리고 있다. 두 곳에서 ‘전기 요정’의 석판화를 볼 수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