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계가 공화당 대선 후보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력 후보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이 모두 전통적인 보수 이념에서 벗어난 정치인이라서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재계 리더들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내 잠룡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력 후보로 떠오른 디샌티스 주지사와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자유시장주의라는 보수의 이념을 따르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지난 3월 초등학교 동성애 교육 금지법을 발효하며 '문화 전쟁'을 촉발했다. 디즈니가 이에 반발하자 디샌티스는 세제 혜택 등을 박탈하겠다고 디즈니에 대응했다. 권한을 남용해 기업을 겁박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지지율도 예상만큼 높지 않은 모습이다. 트럼프를 대체할 인물로 떠올랐지만, 최근 실시된 공화당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에 30%포인트가량 격차를 보이며 2위에 머물렀다. FT는 재계 지도자들이 디샌티스가 낙태 제한 등 사회 이슈에 집착하는 모습에 질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인우월주의를 지지하거나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는 등 돌발 언행으로 불안정성이 큰 후보로 평가된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선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가 줄줄이 낙마하며 정치적 입지가 축소됐다. 최근에는 성 추문 스캔들에 얽히며 지지세가 줄어드는 모습이다.

오랜 공화당 지지자인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욕포스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패자(Loser)'로 칭하며 그의 성 추문 스캔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재계 리더들이 대안으로 내세운 인물로는 글렌 영킨 버지니아주지사와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가 꼽힌다. 두 주지사 모두 최근 고위급 기부자들과의 회의를 주최한 바 있다. 다만 영킨 주지사는 출마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공화당 주요 기부자들은 그에게 계속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



증권사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창업자 토머스 페터피는 최근 디샌티스에 대한 기부를 중단하고 영킨 주지사에게 100만달러를 후원했다.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공화당 고액 기부자들은 디샌티스와 회동했지만 후원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사실상 지원을 철회했다는 해석이다.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임원인 브라이언 달링은 "트럼프처럼 시장 경제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 정치인이자 자유시장 정책에 따라 대기업을 악마화하지 않고 지원할 수 있는 레이건 같은 정치인이 경선에 참여하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크리스 스누누 뉴햄프셔주지사와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햄프셔 주지사도 잠룡으로 평가받는다. 스누누 주지사는 최근 디샌티스 주지사가 디즈니를 공격한 것을 두고 여러 차례 비판해왔다. 자유를 중시하는 공화당 이념에 반대된다는 이유에서다. 크리스티 전 주지사는 실용적인 보수주의자를 내세우며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내세운 후보가 고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이 두터워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서다 패배하게 되면 정치생명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히려 반(反) 트럼프 후보들이 난립해서 지지율이 분산되면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니엘 파라치 공화당 정치전략가는 "트럼프에 맞설만한 체급의 정치인이 나오질 않고 있다"며 "올해 경선 구도는 사실상 2016년 경선과 가깝다"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