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세이노의 가르침>…인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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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출간했는데 벌써 40만부
인기 비결은 솔직, 직설적인 '팩폭'
부자 되는 법, 재테크 기법 없이 삶의 자세 강조
700페이지에 7200원... 돈 벌려고 낸 책 아냐
인기 비결은 솔직, 직설적인 '팩폭'
부자 되는 법, 재테크 기법 없이 삶의 자세 강조
700페이지에 7200원... 돈 벌려고 낸 책 아냐
“세이노의 글을 책으로 내면 무조건 밀리언셀러일 텐데…”
오랫동안 출판사 기획자들 사이에선 세이노의 책을 내는 게 숙원이었다. ‘세이노(Say No)’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1000억원대 자산을 일군 것으로 알려진 한 남성의 필명이다.
1955년생인 그는 2000년 동아일보에 ‘세이노의 부자아빠 만들기’란 칼럼을 연재하며 이름을 알렸다. 팬들도 생겨났다. 이들은 인터넷 포털 다음에 팬카페 ‘세이노의 가르침’을 열고 그의 글을 차곡차곡 모았다. PDF 파일로 만들고, 제본해서도 읽었다.
‘인생 책’이란 입소문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졌던 그 책이 올해 초 종이책으로 정식 출간돼 14주 연속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14주 연속 1위는 2019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이후 4년 만이다. 판매량은 벌써 40만부를 넘었다. 올해 베스트셀러 1위가 거의 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출판계가 눈독 들인 책, 20여 년 만에 정식 출간
<세이노의 가르침>은 7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책값은 7200원에 불과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10% 할인받아 사면 6480원이다. 전자책은 아예 무료다. 종이책 PDF 파일도 책을 펴낸 출판사 데이원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다. 저자도, 출판사도 돈을 벌기 위해 책을 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세이노는 책에서 “50개가 훨씬 넘는 출판사에서 출판을 권유했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심사가 뻔히 보여 거절했다”고 밝혔다.
2021년 데이원이 낮은 가격에 책을 내겠다고 제안하면서 출간이 성사됐다. 세이노도 인세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옛날 글에 최근 생각을 덧붙인 개정판 형식으로 책을 완성했다. 데이원 관계자는 “2019년 출간한 <부의 수레바퀴> 저자가 세이노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긴다고 해서 <세이노의 가르침> 제본서를 구해 읽어보게 됐다”며 “그야말로 재야의 비급을 만난 기분이었고, 정식 출간해서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보존되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은 지난 1월 예약판매를 걸자마자 온라인 1위를 찍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금도 판매 둔화 조짐은 보이지 않아 100만부 돌파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주 구매층은 30대와 40대다. 각각 전체 구매자 중 31.4%와 32.2%를 차지했다. 50대는 18.1%, 20대는 10.9%였다. 남성이 54.6%로 여성(45.4%)보다 조금 더 많았다. 직장인이나 사업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을 많이 담고 있어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30~40대에게 유독 인기가 많다는 분석이다.
◆독자들 “차갑고 직설적인 조언이 좋다”
책은 부자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재테크 기법 같은 것도 없다. 대신 삶의 자세에 대해 말한다. 상당히 직설적이다. 이른바 ‘팩폭(팩트 폭격)’을 가한다. 그러면서도 꽤 상식적이다. 떼돈 벌었다는 사람들 말에 솔깃하지 말라고 말한다. 허드렛일부터 제대로 하라고 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고 하고,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세이노는 한국경제신문의 이메일 질의에 “적나라하고, 그 어떤 책에서도 못 본 얘기들이 많은 게 책의 인기 요인이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데이원 관계자는 “얇은 시집 가격에 700쪽 넘는 두툼한 책을 살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며 “차갑고 직설적인 조언이 오히려 좋았다는 독자들의 전화와 메일을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실용적인 팁도 많다. 장사할 때, 사업할 때, 영업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사기꾼 판별법, 좋은 의사와 변호사 만나는 법, 협상 능력을 기르는 법, 공무원 상대하는 법까지 설명한다. 세이노는 의류업·정보처리·컴퓨터·음향기기·유통업·무역업 등으로 자산을 모은 후 그 자산을 외환 투자·부동산 경매·주식 등으로 불렸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책에서 내공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가 없지는 않다. “세상이 변했는데 자기 확신 가득한 옛날 사람이 본인이 살던 시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평도 나온다. 책이 훈계조인데다 무조건 노력할 것만 강조하는 게 거슬린다는 것이다.
◆부자 얘기에 귀 기울이는 요즘 흐름과 이어져
부자들이 쓴 책이 유행하는 요즘 출판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 급락을 거치며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재테크 전문가들에 한 번 데인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번 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다. <1퍼센트 부자의 법칙>, <사장학개론>, <역행자> 등이 그런 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똑같은 얘기라도 내가 그런 책을 냈다면 아무도 사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이노는 왜 자기 인생 노하우를 대가도 없이 공개하는 걸까. 그는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엉뚱하게 헛발질하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보았기에 안타까워서요. 제대로 된 부자는 나눔의 정신을 가져야 되지 않나요? 내가 나눠 준 글로 인해 인생이 변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 멋지게 사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공유해 줘도 혐오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읽는다고 해도 계속 실천하는 자는 5%도 안 될 겁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정치 쪽에서 내 편이냐 아니냐 흑백논리에 빠져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던데 이 세상은 사실 회색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오랫동안 출판사 기획자들 사이에선 세이노의 책을 내는 게 숙원이었다. ‘세이노(Say No)’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1000억원대 자산을 일군 것으로 알려진 한 남성의 필명이다.
1955년생인 그는 2000년 동아일보에 ‘세이노의 부자아빠 만들기’란 칼럼을 연재하며 이름을 알렸다. 팬들도 생겨났다. 이들은 인터넷 포털 다음에 팬카페 ‘세이노의 가르침’을 열고 그의 글을 차곡차곡 모았다. PDF 파일로 만들고, 제본해서도 읽었다.
‘인생 책’이란 입소문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졌던 그 책이 올해 초 종이책으로 정식 출간돼 14주 연속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14주 연속 1위는 2019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이후 4년 만이다. 판매량은 벌써 40만부를 넘었다. 올해 베스트셀러 1위가 거의 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출판계가 눈독 들인 책, 20여 년 만에 정식 출간
<세이노의 가르침>은 7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책값은 7200원에 불과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10% 할인받아 사면 6480원이다. 전자책은 아예 무료다. 종이책 PDF 파일도 책을 펴낸 출판사 데이원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다. 저자도, 출판사도 돈을 벌기 위해 책을 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세이노는 책에서 “50개가 훨씬 넘는 출판사에서 출판을 권유했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심사가 뻔히 보여 거절했다”고 밝혔다.
2021년 데이원이 낮은 가격에 책을 내겠다고 제안하면서 출간이 성사됐다. 세이노도 인세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옛날 글에 최근 생각을 덧붙인 개정판 형식으로 책을 완성했다. 데이원 관계자는 “2019년 출간한 <부의 수레바퀴> 저자가 세이노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긴다고 해서 <세이노의 가르침> 제본서를 구해 읽어보게 됐다”며 “그야말로 재야의 비급을 만난 기분이었고, 정식 출간해서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보존되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은 지난 1월 예약판매를 걸자마자 온라인 1위를 찍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금도 판매 둔화 조짐은 보이지 않아 100만부 돌파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주 구매층은 30대와 40대다. 각각 전체 구매자 중 31.4%와 32.2%를 차지했다. 50대는 18.1%, 20대는 10.9%였다. 남성이 54.6%로 여성(45.4%)보다 조금 더 많았다. 직장인이나 사업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을 많이 담고 있어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30~40대에게 유독 인기가 많다는 분석이다.
◆독자들 “차갑고 직설적인 조언이 좋다”
책은 부자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재테크 기법 같은 것도 없다. 대신 삶의 자세에 대해 말한다. 상당히 직설적이다. 이른바 ‘팩폭(팩트 폭격)’을 가한다. 그러면서도 꽤 상식적이다. 떼돈 벌었다는 사람들 말에 솔깃하지 말라고 말한다. 허드렛일부터 제대로 하라고 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고 하고,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세이노는 한국경제신문의 이메일 질의에 “적나라하고, 그 어떤 책에서도 못 본 얘기들이 많은 게 책의 인기 요인이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데이원 관계자는 “얇은 시집 가격에 700쪽 넘는 두툼한 책을 살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며 “차갑고 직설적인 조언이 오히려 좋았다는 독자들의 전화와 메일을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실용적인 팁도 많다. 장사할 때, 사업할 때, 영업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사기꾼 판별법, 좋은 의사와 변호사 만나는 법, 협상 능력을 기르는 법, 공무원 상대하는 법까지 설명한다. 세이노는 의류업·정보처리·컴퓨터·음향기기·유통업·무역업 등으로 자산을 모은 후 그 자산을 외환 투자·부동산 경매·주식 등으로 불렸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책에서 내공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가 없지는 않다. “세상이 변했는데 자기 확신 가득한 옛날 사람이 본인이 살던 시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평도 나온다. 책이 훈계조인데다 무조건 노력할 것만 강조하는 게 거슬린다는 것이다.
◆부자 얘기에 귀 기울이는 요즘 흐름과 이어져
부자들이 쓴 책이 유행하는 요즘 출판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 급락을 거치며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재테크 전문가들에 한 번 데인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번 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다. <1퍼센트 부자의 법칙>, <사장학개론>, <역행자> 등이 그런 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떤 사람이 말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똑같은 얘기라도 내가 그런 책을 냈다면 아무도 사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이노는 왜 자기 인생 노하우를 대가도 없이 공개하는 걸까. 그는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엉뚱하게 헛발질하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보았기에 안타까워서요. 제대로 된 부자는 나눔의 정신을 가져야 되지 않나요? 내가 나눠 준 글로 인해 인생이 변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 멋지게 사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공유해 줘도 혐오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읽는다고 해도 계속 실천하는 자는 5%도 안 될 겁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정치 쪽에서 내 편이냐 아니냐 흑백논리에 빠져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던데 이 세상은 사실 회색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