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다고?"…'소박한 거장' 오즈 야스지로 [누벨바그 워치]
“남녀가 단둘이 저녁 식사를 세 번이나 하고도 아무 일이 없다면 단념하는 게 좋다.”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보다는 이 같은 격언으로 한국 2030 커뮤니티에서 이름을 떨쳤다. 남녀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분석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 상당수는 로맨스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대부분이 '딸의 혼처를 찾는 부모의 소박한 일상'을 담고 있다. 줄거리가 너무 단조롭다보니 그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딴 걸로 영화를 찍을 수 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딸의 시집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부모의 이야기는 고리타분한 영화로 읽힐 수도 있다. 이런 단순하고 뻔한 줄거리를 앞세운 오즈 영화가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본 4대 거장…대표작 <동경 이야기>

1903년 일본에서 태어난 오즈 야스지로는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와 함께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4대 거장으로 꼽힌다. 오즈는 전세계 영화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대만 허우샤오셴, 독일 빔 벤더스, 미국 짐 자무시, 한국 홍상수 등 영화계를 주름잡는 거물들은 하나같이 오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복수는 나의 것>, <나라야마 부시코>처럼 선이 굵고 강렬한 이야기를 펼치면서 오즈와는 판이한 영화를 만든 이마무라 쇼헤이조차도 오즈의 조감독으로 근무하면서 영화를 배웠다.
"그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다고?"…'소박한 거장' 오즈 야스지로 [누벨바그 워치]
오즈는 1927년 시대극 <참회의 칼>로 데뷔한 이후 5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대표작은 1953년작 <동경 이야기>다. 동경 이야기는 시골에 사는 부부가 동경으로 상경해 자식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식들은 불쑥 찾아온 부모를 소홀히 대한다. 반면 2차대전 당시 세상을 떠난 셋째 아들의 아내 노리코(하라 세스코)는 시부모를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이 같은 내용의 동경 이야기는 그의 최고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 가운데 가장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생동감이 있는 이야기가 담긴 <피안화>, <부초>, <늦가을>, <이른봄>, <안녕하세요>, <꽁치의 맛> 등을 추천하고 싶다. 이들 영화는 대단찮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이 든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고군분투 과정에서 빚어진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영화들은 홀로 남은 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을 롱 테이크로 잡고 막을 내린다.

피폐해진 감정…위로되는 오즈의 영화

기자도 오즈 영화를 보다가 종종 존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종종 오즈의 영화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은 오즈를 모른다고 한다. 오즈를 아는 일본인 대부분은 "너무 지루하다"고 한다.

지루하지만 그의 영화는 위로를 전한다는 점에서 계속 찾게 된다. 가족과 일상의 가치와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오즈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케 한 잔, 라멘 한 그릇,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누면서 이야기하고 서로를 보듬는다. 영화는 하나로 뭉친 가족이 딸의 출가로 흩어지고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가족 사이의 애틋함이 관객들에게로 전이된다. 큰 사건이나 서사 없이도 이 같은 애틋함과 감동을 구현하는 능력이 오즈 영화의 힘이다.

오즈의 영화를 분석하는 글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감동을 글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타인의 감정에 치여 피폐해진 날이 오즈의 영화를 보기 최적인 듯하다.
"그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다고?"…'소박한 거장' 오즈 야스지로 [누벨바그 워치]
남녀 관계는 세 번의 저녁 식사로 판가름 난다는 명언을 남긴 오즈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63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즈는 그의 페르소나였던 여배우 하라 세스코를 평생 사랑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다. 하라 세스코는 1963년 오즈의 장례식을 마지막으로 은퇴해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2015년 9월 5일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