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日 뚫은 '오케이.진'…디지털 금융 선봉에 선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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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상고 졸업후 ‘신한 문화’ 기틀 세워
까다로운 문턱 넘어 일본 SBJ은행 설립
‘고객 최우선’ 경영방침으로 신뢰 회복
신한금융 내부에선 진 회장의 이 발언이 그가 금융인으로서 지내온 과거의 여정과 성취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82년 설립된 민간은행인 신한은행을 40여 년 만에 국민은행과 1등을 다투는 ‘리딩뱅크’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에 앞장서온 인물이 바로 진 회장이기 때문이다. ‘최고’를 향한 진 회장의 도전으로 신한금융의 총자산 규모는 2001년 56조3000억원(연결 기준)에서 올해 1분기 676조2000억원으로 12배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진옥동이 1980년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중소기업은행(현 IBK기업은행)이었다. 6년 뒤인 1986년, 진 회장은 국책은행으로서 안정적인 중소기업은행을 떠나 창립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신한은행으로 옮겼다. 진 회장은 당시 신한은행에 대해 “전국에 지점이 40여 개에 불과한 작은 은행으로,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신생 은행인 신한은행에서 진 회장은 누구보다 앞장서 신한은행의 정체성과 문화를 확립·확산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꼽힌다. 신한은행은 창립 초기 구성원들끼리 정체성과 문화를 공유하는 연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87년부터 기업연수에 나섰다. 진 회장은 당시 인력개발실 연수팀에서 일하며 ‘신한 문화의 전도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한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내재되기 시작할 때 신한 문화의 책임자였던 셈이다.
2019년 신한은행장 선임을 위해 열린 ‘신한금융지주 자회사 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가 당시 신한금융 부사장이던 진 회장을 은행장으로 추천하면서 “신한 문화를 향한 열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안정화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 회장이 사장으로서 회사를 이끈 결과 SH캐피탈은 설립 2년 만인 2005년 배당을 실시했을 만큼 기록적인 성장을 이뤘다. 진 회장은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일본에서 증명해냈다. SH캐피탈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진 회장은 2008년 회사의 부름을 받고 다시 신한은행으로 복귀해 오사카지점장을 맡았다. 일본에 지점만 두고 있던 신한은행이 일본에 현지법인 SBJ(Shinhan Bank Japan) 설립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은행업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엄격한 규제를 받는 산업이어서 해외 기업이 현지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은행업을 영위할 라이선스(자격)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 회장은 SH캐피탈을 운영하며 넓힌 일본 내 네트워크를 활용해 결국 SBJ가 2009년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 은행업 라이선스를 획득하도록 이끌었다.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외국계 은행이 현지법인 라이선스를 받아낸 사례는 SBJ와 미국 씨티은행 두 곳뿐이다. SBJ은행이라는 이름도 진 회장이 후보 10개를 만든 뒤 신한은행 창업주인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택을 찾아 낙점받았다.
SBJ 설립을 이뤄낸 진 회장은 2011년 다시 SH캐피탈 사장으로 일하다가 2014년 1월 SBJ 법인장에 부임했고, 2015년 6월 SBJ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승진했다.
SBJ에서 CEO로서의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진 회장은 일본에서도 신한 문화의 전도사로 활약했다. 영업총괄 책임자와 집행 임원에 일본 현지인을 보임해 철저한 현지화를 추구하는 한편 개인주의적인 일본 현지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대표적으로 직원 사이의 끈끈한 관계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직원 네 명이 모이면 은행이 회식비를 지원하는 ‘4S제도’를 만들었다. 모든 직원 스스로가 강사가 돼 강의하면서 서로 배우는 ‘SBJ 아카데미’도 세웠다. 신한 문화를 공유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당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로 SBJ의 기업 문화를 새로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 회장의 상징인 ‘오케이.진(OK.Jean)’ 맞춤 셔츠와 커프스도 일본 근무 시절 만들어졌다. 그는 업무차 글로벌 IB 모건스탠리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하지만 콧대 높은 모건스탠리 직원들은 진 회장을 ‘잡상인’ 취급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던 진 회장의 눈에 멋진 양복을 빼입은 모건스탠리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시할 필요는 없지만 뱅커로서 신뢰감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진 회장은 그길로 맞춤 양복점에 가서 고급 원단으로 양복을 맞춰 입었다. 셔츠 소매에 오케이.진(OK.Jean)이라는 이니셜도 새겼다. 커프스를 착용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진 회장은 “이후 잡상인 취급도 받지 않았고, 모건스탠리와의 업무도 술술 풀렸다”고 했다.
진 회장은 모건스탠리 직원들과 친해지면서 ‘겉으론 화려하면서도 내부는 실용적인 문화’도 배웠다고 했다. 멋진 양복과 고급스러운 사무실은 외부 손님용이었고, 실제 직원들이 일하는 내부 공간은 철제 캐비닛과 책상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한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보이는 것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진 회장은 이후 SBJ 사무실 공간 등을 조성할 때 고객 상담 장소는 고급스럽게 꾸미고 대신 일하는 공간은 소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진 회장은 행장 취임 이듬해인 2020년 기존 성과평가제도인 핵심평가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전면 개편해 ‘같이 성장 성과평가제도’를 도입했다. 핵심은 단순 상품 판매 중심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영업점의 환경에 맞는 자율적인 영업을 추진하도록 함으로써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판매하고 적절한 사후관리를 하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다. 진 회장의 도전과 개혁으로 신한은행의 총자산 규모는 2018년 말 418조원에서 지난해 말 581조원으로 4년 새 163조원(39%) 증가했다.
은행장 취임 이후 진 회장은 디지털 역량 강화를 줄곧 강조해왔다. 진 회장 자신을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에 비유하면서까지 무모하더라도 도전적인 자세로 디지털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2019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존에는 상경계 출신을 뽑아 정보기술(IT) 인력으로 양성했지만 이제는 IT 전문가를 뽑아 은행 영업사원으로 육성해야 하는 시대”라며 “이런 돈키호테적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진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대내외 경제 여건 속에서 고객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라임펀드를 비롯한 일부 사모펀드의 불완전 판매로 인해 신한금융 소속 일부 자회사가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는 등 내홍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진 회장은 회장 내정자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선 재무적 이익보다는 기업이 사회에 필요하고 오래가기 위한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믿고 거래해준 많은 고객에게 (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큰 상처를 드렸기 때문에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진 회장은 임직원 사이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통한다. 직원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연을 클릭해 기부하는 ‘사랑의 클릭’과 승진 생일 등에 기부하는 ‘좋은날 좋은기부’ 등에 진 회장이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어서다. 지난달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진 회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이들의 꿈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남몰래 ‘조용한 기부’를 이어왔다. 지난 3월 사랑의열매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 진 회장의 선행이 알려졌으며 주변의 권유로 가입식을 했다. 진 회장은 2020년에도 굿네이버스 누적 기부금이 1억원을 넘기는 등 지금껏 개인적으로 기부한 금액이 2억2500만원에 달한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까다로운 문턱 넘어 일본 SBJ은행 설립
‘고객 최우선’ 경영방침으로 신뢰 회복
“언제든지 (회사를) 뛰쳐나갈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물론 진 회장의 말이 실제로 회사를 떠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주변 사람 모두의 뇌리에 각인됐을 진 회장의 이 발언은 ‘최고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좋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선 우선 현재 직장에서 최고로 인정받을 만큼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62)이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하던 2020년, 신입 행원 환영식에서 한 말이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을 모아 놓고 격려와 환영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당장 퇴사를 준비하라는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에 당시 직원들은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더구나 진 회장 자신은 1986년 신한은행에 입사한 이후 30년 넘도록 ‘신한맨’으로 지내왔다. 애초에 애사심이 없는 신입 행원이라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신한금융 내부에선 진 회장의 이 발언이 그가 금융인으로서 지내온 과거의 여정과 성취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82년 설립된 민간은행인 신한은행을 40여 년 만에 국민은행과 1등을 다투는 ‘리딩뱅크’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에 앞장서온 인물이 바로 진 회장이기 때문이다. ‘최고’를 향한 진 회장의 도전으로 신한금융의 총자산 규모는 2001년 56조3000억원(연결 기준)에서 올해 1분기 676조2000억원으로 12배 성장했다.
신한 정체성 확립한 ‘고졸 행원’
진 회장의 삶 자체가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진 회장은 서울 덕수상고를 졸업했다. 유년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청년기를 보낸 진 회장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원이 됐다. 진 회장이 ‘고졸 신화의 산증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진옥동이 1980년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중소기업은행(현 IBK기업은행)이었다. 6년 뒤인 1986년, 진 회장은 국책은행으로서 안정적인 중소기업은행을 떠나 창립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신한은행으로 옮겼다. 진 회장은 당시 신한은행에 대해 “전국에 지점이 40여 개에 불과한 작은 은행으로,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신생 은행인 신한은행에서 진 회장은 누구보다 앞장서 신한은행의 정체성과 문화를 확립·확산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꼽힌다. 신한은행은 창립 초기 구성원들끼리 정체성과 문화를 공유하는 연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87년부터 기업연수에 나섰다. 진 회장은 당시 인력개발실 연수팀에서 일하며 ‘신한 문화의 전도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한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내재되기 시작할 때 신한 문화의 책임자였던 셈이다.
2019년 신한은행장 선임을 위해 열린 ‘신한금융지주 자회사 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가 당시 신한금융 부사장이던 진 회장을 은행장으로 추천하면서 “신한 문화를 향한 열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안정화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SBJ은행 설립의 주역
진 회장은 금융업계에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불린다. 신한맨으로 근무한 지난 37년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18년을 일본에서 일했을 정도다. 1997년 신한은행 오사카지점에서 차장으로 근무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진 회장은 2004년 신한은행과 재일상공인이 출자해 일본에 설립한 기업재생전문회사인 SH캐피탈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여신 심사역으로 근무하며 여신 사후관리와 부실채권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쌓은 데다 일본에서의 근무 경험까지 있어 초대 사장의 적임자로 꼽혔기 때문이다.진 회장이 사장으로서 회사를 이끈 결과 SH캐피탈은 설립 2년 만인 2005년 배당을 실시했을 만큼 기록적인 성장을 이뤘다. 진 회장은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일본에서 증명해냈다. SH캐피탈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진 회장은 2008년 회사의 부름을 받고 다시 신한은행으로 복귀해 오사카지점장을 맡았다. 일본에 지점만 두고 있던 신한은행이 일본에 현지법인 SBJ(Shinhan Bank Japan) 설립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은행업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엄격한 규제를 받는 산업이어서 해외 기업이 현지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은행업을 영위할 라이선스(자격)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 회장은 SH캐피탈을 운영하며 넓힌 일본 내 네트워크를 활용해 결국 SBJ가 2009년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 은행업 라이선스를 획득하도록 이끌었다.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외국계 은행이 현지법인 라이선스를 받아낸 사례는 SBJ와 미국 씨티은행 두 곳뿐이다. SBJ은행이라는 이름도 진 회장이 후보 10개를 만든 뒤 신한은행 창업주인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택을 찾아 낙점받았다.
SBJ 설립을 이뤄낸 진 회장은 2011년 다시 SH캐피탈 사장으로 일하다가 2014년 1월 SBJ 법인장에 부임했고, 2015년 6월 SBJ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승진했다.
‘오케이.진’ 맞춤 셔츠와 커프스
SBJ를 이끌게 된 진 회장은 사장 취임 이후 전략·인사·감사 등 기본적인 은행 조직을 갖춘 현지법인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일본 틈새 시장인 주택론 시장에 진출해 단기간 내에 리테일(소매) 특화 은행으로 SBJ의 입지를 다졌고, 기업·투자은행(IB) 시장까지 진출해 외형과 수익을 크게 키웠다. 현재 SBJ가 신한은행 글로벌 수익의 21%를 차지하는 주요 해외 거점이 된 것은 진 회장이 초석을 다진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SBJ에서 CEO로서의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진 회장은 일본에서도 신한 문화의 전도사로 활약했다. 영업총괄 책임자와 집행 임원에 일본 현지인을 보임해 철저한 현지화를 추구하는 한편 개인주의적인 일본 현지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대표적으로 직원 사이의 끈끈한 관계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직원 네 명이 모이면 은행이 회식비를 지원하는 ‘4S제도’를 만들었다. 모든 직원 스스로가 강사가 돼 강의하면서 서로 배우는 ‘SBJ 아카데미’도 세웠다. 신한 문화를 공유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당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로 SBJ의 기업 문화를 새로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 회장의 상징인 ‘오케이.진(OK.Jean)’ 맞춤 셔츠와 커프스도 일본 근무 시절 만들어졌다. 그는 업무차 글로벌 IB 모건스탠리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하지만 콧대 높은 모건스탠리 직원들은 진 회장을 ‘잡상인’ 취급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던 진 회장의 눈에 멋진 양복을 빼입은 모건스탠리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시할 필요는 없지만 뱅커로서 신뢰감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진 회장은 그길로 맞춤 양복점에 가서 고급 원단으로 양복을 맞춰 입었다. 셔츠 소매에 오케이.진(OK.Jean)이라는 이니셜도 새겼다. 커프스를 착용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진 회장은 “이후 잡상인 취급도 받지 않았고, 모건스탠리와의 업무도 술술 풀렸다”고 했다.
진 회장은 모건스탠리 직원들과 친해지면서 ‘겉으론 화려하면서도 내부는 실용적인 문화’도 배웠다고 했다. 멋진 양복과 고급스러운 사무실은 외부 손님용이었고, 실제 직원들이 일하는 내부 공간은 철제 캐비닛과 책상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한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보이는 것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진 회장은 이후 SBJ 사무실 공간 등을 조성할 때 고객 상담 장소는 고급스럽게 꾸미고 대신 일하는 공간은 소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고객 우선 경영으로 ‘신뢰’ 회복
일본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한 진 회장은 2017년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부임했고, 같은해 신한금융 부사장을 거쳐 2019년 3월 신한은행장에 올랐다. 은행장 취임 이후 진 회장은 신한은행 창립 당시 최우선 원칙인 ‘고객 중심 가치 창조’를 토대로 경쟁사와 외형 및 손익을 비교하며 1등을 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대신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일류(一流) 은행’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은행의 전략과 추진 사업은 물론 상품과 서비스 전반을 고객의 관점에서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대표적인 사례로 진 회장은 행장 취임 이듬해인 2020년 기존 성과평가제도인 핵심평가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전면 개편해 ‘같이 성장 성과평가제도’를 도입했다. 핵심은 단순 상품 판매 중심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영업점의 환경에 맞는 자율적인 영업을 추진하도록 함으로써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판매하고 적절한 사후관리를 하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다. 진 회장의 도전과 개혁으로 신한은행의 총자산 규모는 2018년 말 418조원에서 지난해 말 581조원으로 4년 새 163조원(39%) 증가했다.
은행장 취임 이후 진 회장은 디지털 역량 강화를 줄곧 강조해왔다. 진 회장 자신을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에 비유하면서까지 무모하더라도 도전적인 자세로 디지털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2019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존에는 상경계 출신을 뽑아 정보기술(IT) 인력으로 양성했지만 이제는 IT 전문가를 뽑아 은행 영업사원으로 육성해야 하는 시대”라며 “이런 돈키호테적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몸집 불리기 대신 ‘질’로 승부
지난 3월 신한금융 회장으로 취임한 진 회장은 ‘아시아 1위’나 ‘글로벌 톱10’과 같은 거창한 외형 확장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자산 규모 등 외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취임 이후 신한은행 등 자회사 목표 성장률을 놓고도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치는데 은행이 7~8% 성장률을 목표로 제시한 게 타당하냐”는 이유에서다. 은행이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출을 크게 늘리는 방법밖에 없는데, 결국 부실 대출과 국가 경제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게 진 회장의 시각이다. 진 회장은 취임 초 회장 비서실도 축소했다. 비서실 직원들을 영업 현장으로 내려보냈다.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수행원도 없이 혼자 다닐 때가 많다. 회장 취임 이후 골프도 치지 않기로 했다.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주말이면 남산 등 서울 근교 산에 올라 지난 한 주를 정리하고, 다음주 계획을 세우곤 한다.진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대내외 경제 여건 속에서 고객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라임펀드를 비롯한 일부 사모펀드의 불완전 판매로 인해 신한금융 소속 일부 자회사가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는 등 내홍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진 회장은 회장 내정자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선 재무적 이익보다는 기업이 사회에 필요하고 오래가기 위한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믿고 거래해준 많은 고객에게 (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큰 상처를 드렸기 때문에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진 회장은 임직원 사이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통한다. 직원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연을 클릭해 기부하는 ‘사랑의 클릭’과 승진 생일 등에 기부하는 ‘좋은날 좋은기부’ 등에 진 회장이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어서다. 지난달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진 회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이들의 꿈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남몰래 ‘조용한 기부’를 이어왔다. 지난 3월 사랑의열매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 진 회장의 선행이 알려졌으며 주변의 권유로 가입식을 했다. 진 회장은 2020년에도 굿네이버스 누적 기부금이 1억원을 넘기는 등 지금껏 개인적으로 기부한 금액이 2억2500만원에 달한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