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최고價 작가 김환기, 그보다 더 값진 '점' 보게 되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 점 하늘’ 전시는 출품작의 양과 질, 구성 모두 역대 김환기 전시 중 최고 수준이다. 모처럼 열린 대규모 김환기 회고전을 위해 모두 한마음으로 전시 준비에 도움을 준 덕분이다. 전시 결정부터 개막까지 걸린 시간은 1년 반. 이 과정에서 리움 외 6개 기관과 40여 명의 개인 소장가가 이번 전시를 돕기 위해 작품을 흔쾌히 대여해 줬다. 여러 화랑과 경매사 관계자도 정보 제공 등을 통해 이번 전시를 아낌없이 도왔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만난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어떤 작품을 뺄지 결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못다 한 이야기도 많아 보였다. 그에게 김환기의 작품세계와 전시의 막전 막후에 관한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김환기는 왜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인가요.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라는 수사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한국 작가로서 식민지 시대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구 미술 사조를 흡수하면서도 전통 미술을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1950년대 파리와 1960~1970년대 뉴욕이라는 20세기 국제 현대미술의 중심지에서 예술의 길을 찾아간 작가이기도 합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경계를 넘어, 김환기라는 작가를 통해 20세기 세계 현대미술과 아시아 근현대미술의 관계를 조명해볼 수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상과 중요성에 비해 이때까지 연구 결과는 두텁지 않았습니다.”
달과 나무(1948년)
달과 나무(1948년)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작가 연구의 기본 바탕은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1930년대와 1950년대의 다양한 초기작 등을 충실히 살펴볼 수 있는 회고전이 거의 없었습니다. 소장처 파악, 높은 작품값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작가와 작품을 파악할 만한 부가적인 자료가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김환기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그림값’에만 쏠렸고, 특히 2000년대 이후 경매에서 점화들이 고가에 낙찰되면서 점화에만 관심이 집중됐죠. 김 화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점화를 그리게 됐는지, 그의 작품이 후배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시들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세운 목표가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다시 제대로 알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를 마친 뒤에는 충실한 연구서를 낼 계획입니다.”

▷이번 전시, 어떻게 봐야 하나요.

“리움미술관 소장품은 물론 환기재단 등 각 기관, 여러 개인 소장가에게 시기별로 중요한 작품을 공간이 허락하는 한 많이 대여해왔습니다. 출간된 김환기의 일기와 글뿐만 아니라 최근 발견된 유족 소장 자료들을 곁들여 그가 어떻게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갔는지 총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전시를 볼 때는 김환기의 초기작과 아카이브, 벽에 적힌 김환기가 남긴 글을 꼼꼼히 보는 걸 권합니다. 그렇게 김환기를 이해하고 나서 전시 마지막 부분의 점화를 보면 감동이 몇 배로 커질 것입니다.”
12-V-70 #172(1970년)
12-V-70 #172(1970년)
▷‘한 점 하늘’이란 전시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김환기에게 하늘은 영감의 원천입니다. 하늘의 달을 그렸고, 달항아리를 그 달과 동일시해 그렸죠. 후기에는 별에서 정서적 영감을 받았습니다. 말년에 가서는 예술과 삶과 세상을 모두 함축하는 의미로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김 화백은 이를 점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추상이 점으로 집약되는 과정, 점이라는 작은 요소에 예술과 삶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는 뜻을 제목으로 표현했습니다. 압축적인 제목인데, 다행히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관람객들이 제가 의도한 바를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전시 관람 전 ‘예습’은 어떻게 해 가면 좋을까요.

“가능하면 김환기의 글과 일기를 읽어보고 오는 걸 추천합니다. 전시장 벽에 몇몇 문구를 발췌해 적어두긴 했지만, 일기 전문을 읽고 나면 훨씬 더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겁니다. 김환기의 진솔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보면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 어떤 의미인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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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이미지=환기재단·환기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