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 추모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사과한 일이나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 지난 역사를 아프도록 정확하게 가르치는 일, 2020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철거 요청에도 설치허가를 연장한 사례 등은 독일의 역사에 대한 태도를 보여 준다.
그뿐 아니라 바로 베를린 중심에 위치한 유대인 추모공원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ahnmal)은 그들의 태도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재현한다.
전시는 구상과 추상,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에 대한 독자적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리히터의 예술 궤적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마리안네 이모 (Tante Marianne)>(1965/2019)는 작가의 이모 사진을 1965년에 회화로 제작했지만 2019년에 다시 사진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리히터는 이 과정을 통해 회화와 사진이라는 매체를 오가며 시각적 재현성을 탐색한다. 또한 비교적 최근 작품인 <4900가지 색채 (4900 Colours)>(2007)와 <스트립 (Strip)>(2013/2016)에서는 다채로운 색채의 스펙트럼을 그 어떤 위계도 없이 표현하며 주관성을 탈피한 회화 언어를 모색해온 그의 예술적 실천을 나타낸다.
Installation view of Strip, 2013/2016, digital print on paper between aluminum and Perspex. Photo by Hyunjoo Byeon.
페르가몬 박물관은 전시품 보존과 레노베이션을 위해 올해 10월부터 2027년까지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처럼 긴 숙면의 시간에 앞두고 있는 문화 유산을 재조명하기 위해 동시대의 주요한 아티스트인 길릭은 <여과된 시간>을 제작했다. 바빌론의 상징적인 아쉬타르 문(Ishtar Gate)과 현재의 시리아 지역에서 발굴 및 복원된 텔 할라프(Tell Halaf) 등 박물관의 기념비적인 유물에 소리와 빛, 색채를 추가하는 시청각적 설치 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길릭의 장소특정적 작업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와 연결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이 두 전시는 역사를 기억하는 다른 방식과 접근을 보여 준다. 독일의 대표 작가 리히터는 어두운 과거를 직면하는 작품을 신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동시에 타 국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페르가몬 박물관에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배려 없이 이를 재조명하는 예술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예술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가치관에 따라 두 전시에 대해 서로 다른 감상을 말하고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으며, 예술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 역시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과거와 역사를 돌아보고 반추해야 한다고 여기는 자세는 어쩌면 앞만 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