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두 전시…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가 보여주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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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 (3)
170여 개의 박물관이 있는 도시 베를린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까.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므로 잊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자는 효율주의적 사고와 태도를 지니고 역사를 대할 수도 있지만, 이곳 독일,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역사를 반추해야 새로운 미래와 맥락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여기는듯 하다.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 추모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사과한 일이나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 지난 역사를 아프도록 정확하게 가르치는 일, 2020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철거 요청에도 설치허가를 연장한 사례 등은 독일의 역사에 대한 태도를 보여 준다.
그뿐 아니라 바로 베를린 중심에 위치한 유대인 추모공원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ahnmal)은 그들의 태도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재현한다.
전시는 구상과 추상,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에 대한 독자적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리히터의 예술 궤적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마리안네 이모 (Tante Marianne)>(1965/2019)는 작가의 이모 사진을 1965년에 회화로 제작했지만 2019년에 다시 사진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리히터는 이 과정을 통해 회화와 사진이라는 매체를 오가며 시각적 재현성을 탐색한다. 또한 비교적 최근 작품인 <4900가지 색채 (4900 Colours)>(2007)와 <스트립 (Strip)>(2013/2016)에서는 다채로운 색채의 스펙트럼을 그 어떤 위계도 없이 표현하며 주관성을 탈피한 회화 언어를 모색해온 그의 예술적 실천을 나타낸다. Installation view of Tante Marianne, 1965/2019, photograph. Photo by Hyunjoo Byeon.
Installation view of Strip, 2013/2016, digital print on paper between aluminum and Perspex. Photo by Hyunjoo Byeon.
리히터의 수십 년 동안의 예술 궤적을 보여 주는<베를린을 위한 100점의 작품>의 중심에는 그가 2014년부터 작업한 <비르케나우 (Birkenau)>가 있다. ‘비르케나우’는 유대인 수용소가 있었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kenau) 지역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다. 리히터는 수용소에서 몰래 찍힌 충격적인 4장의 사진—시체를 태우는 남자, 가스실에 넣어지는 여자, 몰래 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위험을 보여 주듯 흔들리게 찍힌 나무의 사진 등—을 접한 후 오랜 기간 이미지에 사로 잡혀 있다가 독일의 어두운 시기를 직면하며 이를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여러 겹으로 칠해진 그림은 더 이상 원래의 사진 이미지를 찾아보기 힘든 추상성을 보이지만, 여러 층위의 색과 작가의 축적된 붓질 및 캔버스의 두꺼운 표면을 통해 유추되는 작업 시간과 과정에서 그가 과거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볼 수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전시품 보존과 레노베이션을 위해 올해 10월부터 2027년까지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처럼 긴 숙면의 시간에 앞두고 있는 문화 유산을 재조명하기 위해 동시대의 주요한 아티스트인 길릭은 <여과된 시간>을 제작했다. 바빌론의 상징적인 아쉬타르 문(Ishtar Gate)과 현재의 시리아 지역에서 발굴 및 복원된 텔 할라프(Tell Halaf) 등 박물관의 기념비적인 유물에 소리와 빛, 색채를 추가하는 시청각적 설치 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길릭의 장소특정적 작업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와 연결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이 두 전시는 역사를 기억하는 다른 방식과 접근을 보여 준다. 독일의 대표 작가 리히터는 어두운 과거를 직면하는 작품을 신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동시에 타 국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페르가몬 박물관에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배려 없이 이를 재조명하는 예술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예술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가치관에 따라 두 전시에 대해 서로 다른 감상을 말하고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으며, 예술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 역시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과거와 역사를 돌아보고 반추해야 한다고 여기는 자세는 어쩌면 앞만 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 추모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사과한 일이나 학교의 교육 과정에서 지난 역사를 아프도록 정확하게 가르치는 일, 2020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철거 요청에도 설치허가를 연장한 사례 등은 독일의 역사에 대한 태도를 보여 준다.
그뿐 아니라 바로 베를린 중심에 위치한 유대인 추모공원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ahnmal)은 그들의 태도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재현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ahnmal)
그리고 최근 열린 2개의 현대미술 전시는 베를린에서 역사를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첫 번째는 노이에 내셔널갤러리(Neue Nationalgalerie), 즉 신국립미술관에서 4월 1일부터 열리고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베를린을 위한 100점의 작품 (Gerhard Richter: 100 Works for Berlin)>으로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자신의 작품 100점을 2026년까지 위탁해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이 선보일 수 있게 한 전시이다.전시는 구상과 추상,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에 대한 독자적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리히터의 예술 궤적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마리안네 이모 (Tante Marianne)>(1965/2019)는 작가의 이모 사진을 1965년에 회화로 제작했지만 2019년에 다시 사진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리히터는 이 과정을 통해 회화와 사진이라는 매체를 오가며 시각적 재현성을 탐색한다. 또한 비교적 최근 작품인 <4900가지 색채 (4900 Colours)>(2007)와 <스트립 (Strip)>(2013/2016)에서는 다채로운 색채의 스펙트럼을 그 어떤 위계도 없이 표현하며 주관성을 탈피한 회화 언어를 모색해온 그의 예술적 실천을 나타낸다. Installation view of Tante Marianne, 1965/2019, photograph. Photo by Hyunjoo Byeon.
Installation view of 4900 Colours (excerpt), 2007, 196 square panels in lacquer on Alu Dibond. Photo by Hyunjoo Byeon.
Installation view of Strip, 2013/2016, digital print on paper between aluminum and Perspex. Photo by Hyunjoo Byeon.
<비르케나우>를 제작하게 한 사진 중 하나
Alberto Errera, attributed to Auschwiz-Birkenau, 1944. Photo by Hyunjoo Byeon.
Installation view of Birkenau, 2014, oil on canvas, four parts. Photo by Hyunjoo Byeon.
한편, 과거를 새롭게 재조명한 또 다른 전시로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에서 4월 6일부터 10월까지 열리는 영국 출신 작가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여과된 시간 (Filtered Time)>을 살펴볼 수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1930년 개관한 오랜 역사를 지닌 박물관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이슬람, 중동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출토 모습 그대로 옮겨 실제 크기로 재건해 전시한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처럼 전시품 소유권에 관한 법적 논쟁이 이뤄지고 있지만, 중요한 문화 유산들이 전시되고 있기에 베를린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박물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Exhibition view: Liam Gillick, Filtered Time, Pergamonmuseum, Berlin, 2023. Photo © Andrea Rossetti Courtesy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Paris/Seoul.
페르가몬 박물관은 전시품 보존과 레노베이션을 위해 올해 10월부터 2027년까지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처럼 긴 숙면의 시간에 앞두고 있는 문화 유산을 재조명하기 위해 동시대의 주요한 아티스트인 길릭은 <여과된 시간>을 제작했다. 바빌론의 상징적인 아쉬타르 문(Ishtar Gate)과 현재의 시리아 지역에서 발굴 및 복원된 텔 할라프(Tell Halaf) 등 박물관의 기념비적인 유물에 소리와 빛, 색채를 추가하는 시청각적 설치 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길릭의 장소특정적 작업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와 연결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Exhibition view: Liam Gillick, Filtered Time, Pergamonmuseum, Berlin, 2023. Photo © Andrea Rossetti Courtesy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Paris/Seoul.
과거를 다른 시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는 분명 흥미로우나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에서 그의 작품은 비판을 받고 있다. 타 국가에서 가져온 유물을 서구의 박물관과 식민주의적 맥락에 관한 작업을 거의 해오지 않은 큐레이터들 및 작가가 ‘재조명’한다는 점은 논란과 비평의 소지를 낳고 있으며, 역사를 재해석하기 위한 접근에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이 두 전시는 역사를 기억하는 다른 방식과 접근을 보여 준다. 독일의 대표 작가 리히터는 어두운 과거를 직면하는 작품을 신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동시에 타 국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페르가몬 박물관에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배려 없이 이를 재조명하는 예술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예술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가치관에 따라 두 전시에 대해 서로 다른 감상을 말하고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으며, 예술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 역시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과거와 역사를 돌아보고 반추해야 한다고 여기는 자세는 어쩌면 앞만 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