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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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크본드 시장의 회복세에 대해 "알 수 없는 미스테리"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긴축(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가 가지시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투기등급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되살아나고 있어서다.

미국 정크본드 지표인 ICE BofA US 하이일드 지수의 평균 채권 수익률은 1일(현지시간) 9% 미만선에 머물러있다. 채권 수익률과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수익률 하락은 정크본드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경제의 건전성에 대한 잇단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크본드 수익률은 작년 10월 고점(9.5%) 이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최근 몇 달 동안 국채 스프레드(금리 격차)도 460bp대로 좁혀졌다"고 전했다.

정크본드 스프레드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한다. 경기침체 전망이 우세한 경우 안전 자산인 미 국채에 자금이 몰리는 반면 재무 여건이 열악한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의 금리는 올라가는 경향이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정크본드 스프레드가 줄어들면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경기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 투자분석업체인 리만리비안프리드슨의 마티 프리드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는 '현재진행형 미스테리'라고 볼 수 있다"며 "지금으로선 시장이 경기 침체에 대비하고 있다고 볼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 회복의 원인으로는 공급 부족, 채권 등급 상향조정 증가 등이 꼽힌다.
되살아난 美 정크본드의 '미스테리'…"국채 빅쇼트 반사이익?"
최근 정크본드 발행이 제한적인 것은 코로나19 열풍의 기저효과 때문이다. 당시 기업들은 초저금리를 활용해 정크본드 발행을 대폭 늘리고 만기일자를 조정했다. 이후 작년부터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강도 긴축에 나서면서 시장은 급랭했다. 프리드슨 CIO는 "지금은 정크본드 발행사 우위의 시장"이라며 "향후 1~2년 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이 많지 않고, 실제로 상환해야 할 필요성도 없다"고 말했다.

딜로직에 따르면 올들어 현재까지 미국의 정크본드 발행 규모가 671억달러로 늘어나긴 했지만, 이마저도 3분의2 가량이 리파이낸싱(차환) 물량이다. 또 이는 지난해 동기간 500억달러에 비하면 '소폭 증가'에 불과하다. 작년은 Fed의 고강도 긴축과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해 채권 시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는 점에서다. 연간 기준으로 미국 기업의 정크본드 발행액은 2021년 4040억달러에서 지난해엔 910억달러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딜로직 자료대로면 올들어 현재까지 정크본드 발행을 통한 신규자금조달은 1999년 이후 가장 낮다고 FT는 분석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신용전략가인 로피 카루이는 "올해 시장에 나온 대부분의 공급량은 리파이낸싱에 투입됐기 때문에 대차대조표에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부채를 대체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베어링자산운용의 션 필리 정크본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에 모든 것을 압도하는 기술적 요인이 있다"며 "정크본드 시장 크기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규 발행 물량이 자연적인 소진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ICE데이터서비스에 의하면 미국 정크본드 시장 전체 규모는 지난 1년새 약 1100억달러가 감소해 현재 1조3700억달러로 떨어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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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도 정크본드 시장의 호재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11일 "올해 투자적격 등급을 얻어낸 '라이징스타' 채권의 규모가 벌써 560억달러에 이른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골드만삭스는 "반면 회사채가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는 기업의 수는 늘었지만, 규모 기준으로는 166억달러에 불과했다"고 분석했다.

해리스어소시에이츠의 아담 아바스 채권 공동 책임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신규 발행과 예상보다 견조한 고용시장 상황도 정크본드 가격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더불어 정크본드는 국채에 비해 만기가 짧아 금리 변동에 덜 민감하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정크본드 시장 문을 두드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이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는 데 합의한 것도 '국채 빅쇼트(대량매도)'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날 마켓워치는 맥쿼리 거시전략팀 보고서를 인용해 "워싱턴의 부채 협상 타결은 국채 대홍수(Le deluge)를 일으킬 것"이라고 전했다. 부채한도 증액으로 미국 국채 발행이 1조달러 가량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자 투자자들이 미 국채 선물 시장에서 5월 말 기준 300만건(2년, 5년, 10년 만기 국채 총합)에 달하는 빅쇼트 베팅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2000년 이후 사상 최고치다.

정크본드 시장이 결국 거시경제를 반영할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골드만삭스는 "정크본드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진 않겠지만, 하반기엔 일종의 정상화를 겪을 것"이라며 "수익 성장 둔화와 늘어나는 이자 비용 등 거시적 현실이 압도하고 말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