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저출산은 가족 가치관의 문제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21년 17개 주요국 1만9000명을 대상으로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를 주제로 국제 설문조사를 했다. 압도적으로 꼽힌 의미 있는 삶의 원천은 가족과 아이들이었다. 가족을 1순위로 꼽지 않은 나라는 세 나라뿐이며, 이 중 한 곳이 한국이다. 물질적 풍요가 한국인의 삶의 의미 1위였고, 가족은 세 번째였다.

가족의 출발점은 결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17.6%에 불과했다. 1996년 첫 조사에서 36.7%였던 이 응답 비율은 조사 때마다 지속해서 떨어졌다. 가족은 출산을 통해 확장한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작년 말 세계 주요 도시 15곳 시민 1만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서울 시민의 81.0%가 ‘자녀는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도시 중 단연 최고 비율이었다.

이 세 조사 결과는 한국인은 가족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느끼고, 그러다 보니 결혼도 잘 하지 않고, 설령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아이 낳기를 꺼린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세계 최저 합계 출산율 0.78명은 이런 가치관의 당연한 귀착이다.

인구문제 전문가인 이성용 한국인구학회장이 “양육 부담을 줄이는 것만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가족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한 것은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의 표현대로 출산의 본질적 동기는 ‘출산과 양육에서 나오는 부모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다. 학창 시절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돌면서 자란 우리 젊은 세대는 부모와 마주 앉아 식사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TV와 유튜브 등에는 소확행, 욜로(YOLO)를 미화하고 혼밥·혼술·혼자 여행을 조장하는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그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세트도, 필수도 아니다.

애초 결혼할 마음도 없는 이들에게 출산 인센티브를 약속하는 것은 번지수가 한참 잘못된 대책이다. 저출산은 청년 가치관 변화, 곧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바꾸게 하느냐의 문제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