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우려가 클수록 금리가 올라가는 정크본드가 미국에서 오히려 안정적인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크본드의 공급 자체가 줄고 있는 데다 미국의 견조한 노동시장이 정크본드 발행 기업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회복력 있는 미국 정크본드 시장이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미국의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 신호가 감지되는데도 미국 국채 금리와 부도 위험이 큰 정크본드의 금리 차이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예상과 반대인 정크본드 시장

경기둔화 우려에도…美정크본드 인기 '미스터리'
정크(junk)본드는 ‘쓰레기’라는 단어 뜻 그대로 신용등급이 아주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다. 부도 위험이 큰 만큼 금리도 높아 고수익 채권으로 분류된다. 보통 경기 회복 신호가 감지되면 정크본드로 투자자들이 몰려간다. 해당 기업이 경기 상황에 맞춰 실적이 좋아지면 정크본드 가치도 덩달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 침체기에 진입할 때는 정크본드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리가 올라가고, 경기 회복기에 들어갈 때는 반대로 움직인다. 과거 우리나라도 1998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 당시 정크본드 투자로 고수익을 올린 사례가 많았다.

FT는 현재 미국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정크본드 시장이 회복세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FT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건전성에 대한 잇단 우려에도 정크본드 금리는 작년 10월 13일 고점(연 9.5%) 이후 현재 연 9% 밑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최근 몇 달 동안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의 스프레드(금리 격차)가 4.60%포인트대로 좁혀졌다.

○美국채와 금리 격차 4.60%P 불과

FT는 정크본드 공급이 줄어든 데서 원인을 찾았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현재까지 미국의 정크본드 발행 규모는 671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0억달러보다 소폭 늘었다. 이마저도 대부분 리파이낸싱(차환) 물량이다.

로피 카루이 골드만삭스 수석신용전략가는 “올해 시장에 나온 대부분의 공급량은 리파이낸싱에 투입됐기 때문에 대차대조표에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부채를 대체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연간 기준으로 미국 기업의 정크본드 발행액은 2021년 4040억달러에서 지난해엔 910억달러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크본드 발행량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영향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초저금리를 틈타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만기 연장을 마무리한 영향으로 당분간은 발행 수요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FT는 “올 들어 현재까지 정크본드 발행을 통한 신규 자금 조달은 1999년 이후 가장 적다”고 분석했다.

반면 국채 투자에 대한 기대치는 떨어지고 있다. 부채한도 증액으로 미국 국채 발행이 1조달러가량 늘어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미 국채 선물 시장에서 5월 말 기준 300만 건(2년·5년·10년 만기 국채 총합)에 달하는 빅쇼트 베팅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2000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고용시장이 떠받쳐

견조한 고용시장도 정크본드를 떠받치고 있다. 풍부한 일자리 덕에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유지되면서 기업들의 부도 가능성을 낮추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다만 정크본드 시장이 결국 거시경제를 반영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정크본드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진 않겠지만 하반기엔 일종의 정상화를 겪을 것”이라며 “수익 성장 둔화와 늘어나는 이자 비용 등 거시적 현실이 상황을 압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