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결딴날 뻔한 '초유의 위기'…그 현장 한가운데 있던 청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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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미국 대표 화가' 윈즐로 호머
그림으로만 말했던 '침묵의 화가'
작품세계로 보는 그의 마음속 파도
그림으로만 말했던 '침묵의 화가'
작품세계로 보는 그의 마음속 파도
이제 끝인 걸까요.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남자는 폭풍을 만났습니다. 돛을 찢고 돛대를 부러트릴 정도로 강렬한 바람과 파도. 그래도 남자는 뱃전을 움켜잡은 손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폭풍도 걷히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의 목숨은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남자의 피와 살을 탐내는 식인 상어들이 몰려들어 뛰어오르기 시작했거든요. 상어 밥이 되지 않더라도 그가 말라 죽는 건 시간 문제. 그런데…. 바다 저 멀리 지나가는 큰 배가 눈에 들어옵니다. 안타깝게도 남자를 발견하기엔 너무 거리가 멀군요. 과연 그는 구조될 수 있을까요? 배가 다가올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까요? 지금 보신 그림은 미국 화가 윈즐로 호머(1836~1910)의 걸작 ‘Gulf Stream(걸프 스트림)’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라면, 호머는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역대 최고의 미국 해양화가’로 꼽힙니다. 여름의 초입을 맞아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바다를 주로 그린 호머의 삶을 소개합니다.
전장에는 죽음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삽화 특파원들은 그 피 튀는 현장을 그대로 그림에 옮겼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편’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돋보이게 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호머는 달랐습니다. 방금 보신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1863)처럼, 병사들의 평범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림 속 군인들은 저녁노을이 지는 가운데 군 악대가 연주하는 ‘홈 스위트 홈’을 들으며 고향에 둔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극적이지도 가슴을 벅차게 하는 영광도 없는 그림이었지만 작품을 본 사람들은 알게 됐습니다. 전쟁이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비극이고, 적개심에 가득 차 죽고 죽이는 군인들은 사실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호머는 미국인들의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드는 잔잔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에 있는 ‘The Veteran in a New Field(새로운 땅에 선 퇴역 군인)’(1865년) 작품에서 오른쪽 아래 놓인 군복은 농부가 전쟁에서 막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농부가 전쟁터를 떠도는 동안 고향의 들판에는 수풀이 무성해져 있었네요. 이를 정리하는 농부의 뒷모습에서는 지나간 나날에 대한 슬픔과 함께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이 작품 ‘Snap the Whip(스냅 더 휩)’(1872년)도 마찬가지로 희망을 그린 작품입니다. 아이들의 옷은 낡을 대로 낡아 있지만, 천진난만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며 뛰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이지요.
인간에 대한 호머의 애정에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앞에서 본 대표작 ‘걸프 스트림’을 비롯해 그는 평생 흑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A Visit from the Old Mistress(늙은 여주인의 방문)’(1876년)는 노예 해방 이후 흑인과 백인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그린 그림입니다. 옛 주인을 본 흑인 여성들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가 어찌 됐든 이제 이들은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입니다. 좀 불편하긴 해도, 미국이 새로운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는 메시지를 호머는 이 그림에 담았습니다. 훗날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흑인을 우습게 만들거나 과장하지 않고 제대로 그린 이 시대의 몇 안 되는 그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속세에서 멀어지고 싶어서였을까요, 1883년 50대에 들어선 호머는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북동부의 바닷가 마을에 정착해 바다를 그리기 시작한 겁니다. 바다는 변덕스러웠습니다. 호머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다가도 때로는 거친 폭풍이 내면에 몰아쳤거든요. 마음의 파도가 잔잔할 때 호머는 위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 풍경(‘Summer Night’, 1890년)이나 바닷가 마을의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늘 죽음의 위협에 노출돼 있고 가난하지만, 대자연에 맞서 용감히 살아가는 위대한 인간을요. 수채화는 바다 특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습니다. ‘Shark Fishing(상어 잡기)’(1885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호머의 수채화에 대해 “그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수채화가로 평가받는다. 수채화 특유의 대담한 붓놀림과 종이에 스며든 투명한 물 번짐 효과만 봐도 안다”고 했습니다. 반면 마음속 폭풍이 몰아칠 때는 작품도 암울해졌습니다. 위 그림 ‘Ship's boat(배에 실은 작은 배)’(1883년)가 대표적입니다. 호머는 이 그림의 습작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망막에 각인된 장면”이라는 섬뜩한 설명을 달았습니다. 이 그림 속 사람들도 결국 목숨을 잃을 운명이라는 뜻이지요.
호머는 말수가 적었습니다. 그의 삶 이야기를 쓰겠다는 사람에게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일기를 남기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도 대부분 태워버렸습니다. 미국 언론은 그를 ‘은둔의 화가’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그림만 그리던 호머는 1910년 9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니 자식이 없었고, 그의 삶에 대해 말해줄 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는지 그 여부조차 모를 정도로 사생활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작품과 몇 안 되는 작품 관련 메모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재난 앞에 선 무력한 존재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유명한 구절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작품을 통해 화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이 그림 ‘After the Hurricane, Bahamas(허리케인 이후, 바하마)’는 처음 보셨던 작품 ‘걸프 스트림’과 같은 1899년 작품입니다. 작가의 설명은 없지만, 일종의 뒷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야속하게도 저 멀리 지나가던 배는 남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결국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 같네요. 곧 정신이 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국 이겨낼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져서 바다 그림을 그린 호머의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어떠셨나요. 시원한 바다 그림들 보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재충전을 잘 해야 다음주도 힘차게 살아나갈 용기가 생겨날 테니까요.
*(참고자료) 이번 기사의 내용은 ‘Winslow Homer: American Passage’(William R. Cross 지음)와 지난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의 도록 ‘Winslow Homer: Crosscurrents’를 참조했습니다.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남자는 폭풍을 만났습니다. 돛을 찢고 돛대를 부러트릴 정도로 강렬한 바람과 파도. 그래도 남자는 뱃전을 움켜잡은 손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폭풍도 걷히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의 목숨은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남자의 피와 살을 탐내는 식인 상어들이 몰려들어 뛰어오르기 시작했거든요. 상어 밥이 되지 않더라도 그가 말라 죽는 건 시간 문제. 그런데…. 바다 저 멀리 지나가는 큰 배가 눈에 들어옵니다. 안타깝게도 남자를 발견하기엔 너무 거리가 멀군요. 과연 그는 구조될 수 있을까요? 배가 다가올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까요? 지금 보신 그림은 미국 화가 윈즐로 호머(1836~1910)의 걸작 ‘Gulf Stream(걸프 스트림)’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라면, 호머는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역대 최고의 미국 해양화가’로 꼽힙니다. 여름의 초입을 맞아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바다를 주로 그린 호머의 삶을 소개합니다.
100만명 죽은 전쟁, 그 한가운데서
‘세계 최강국’ 미국도 나라가 결딴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노예 제도를 폐지하려는 북부 지역과 이에 반대하는 남부 지역이 한 판 붙은 남북전쟁(1861~1865년)입니다. 전쟁이 벌어진 4년간 목숨을 잃은 사람은 100만명 이상. 그 참혹한 현장 한가운데에 젊은 20대 청년인 호머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주간지(하퍼스 위클리)의 삽화 특파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종군 기자였지요. 화가였던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20대 초반부터 그림으로 두각을 드러냈던 호머. 그 실력을 눈여겨본 주간지가 호머를 고용한 뒤 전쟁터로 파견해 삽화를 그려 보내게 한 것이었습니다. 위 그림 ‘Sharpshooter(샤프슈터)’(1863년)는 호머가 버지니아주의 최전선에서 그린 그림입니다.전장에는 죽음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삽화 특파원들은 그 피 튀는 현장을 그대로 그림에 옮겼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편’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돋보이게 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호머는 달랐습니다. 방금 보신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1863)처럼, 병사들의 평범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림 속 군인들은 저녁노을이 지는 가운데 군 악대가 연주하는 ‘홈 스위트 홈’을 들으며 고향에 둔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극적이지도 가슴을 벅차게 하는 영광도 없는 그림이었지만 작품을 본 사람들은 알게 됐습니다. 전쟁이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비극이고, 적개심에 가득 차 죽고 죽이는 군인들은 사실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호머는 미국인들의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드는 잔잔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에 있는 ‘The Veteran in a New Field(새로운 땅에 선 퇴역 군인)’(1865년) 작품에서 오른쪽 아래 놓인 군복은 농부가 전쟁에서 막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농부가 전쟁터를 떠도는 동안 고향의 들판에는 수풀이 무성해져 있었네요. 이를 정리하는 농부의 뒷모습에서는 지나간 나날에 대한 슬픔과 함께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이 작품 ‘Snap the Whip(스냅 더 휩)’(1872년)도 마찬가지로 희망을 그린 작품입니다. 아이들의 옷은 낡을 대로 낡아 있지만, 천진난만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며 뛰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이지요.
인간에 대한 호머의 애정에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앞에서 본 대표작 ‘걸프 스트림’을 비롯해 그는 평생 흑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A Visit from the Old Mistress(늙은 여주인의 방문)’(1876년)는 노예 해방 이후 흑인과 백인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그린 그림입니다. 옛 주인을 본 흑인 여성들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가 어찌 됐든 이제 이들은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입니다. 좀 불편하긴 해도, 미국이 새로운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는 메시지를 호머는 이 그림에 담았습니다. 훗날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흑인을 우습게 만들거나 과장하지 않고 제대로 그린 이 시대의 몇 안 되는 그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마음속 바다를 품다
섬세한 청년이었던 호머에게 전쟁의 참상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잘나가는 삽화가로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호머는 순수 예술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미국의 휴양지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 영국의 해변 등을 돌아다니며 몸과 마음을 쉬고 영감도 얻었습니다. 위의 ‘Moonlight(달빛)’(1874년) 등 예쁘고 평화로운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마주했던 끔찍한 기억들은 잊었다 싶으면 불쑥불쑥 떠올라 그를 괴롭혔습니다.속세에서 멀어지고 싶어서였을까요, 1883년 50대에 들어선 호머는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북동부의 바닷가 마을에 정착해 바다를 그리기 시작한 겁니다. 바다는 변덕스러웠습니다. 호머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다가도 때로는 거친 폭풍이 내면에 몰아쳤거든요. 마음의 파도가 잔잔할 때 호머는 위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 풍경(‘Summer Night’, 1890년)이나 바닷가 마을의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늘 죽음의 위협에 노출돼 있고 가난하지만, 대자연에 맞서 용감히 살아가는 위대한 인간을요. 수채화는 바다 특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습니다. ‘Shark Fishing(상어 잡기)’(1885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호머의 수채화에 대해 “그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수채화가로 평가받는다. 수채화 특유의 대담한 붓놀림과 종이에 스며든 투명한 물 번짐 효과만 봐도 안다”고 했습니다. 반면 마음속 폭풍이 몰아칠 때는 작품도 암울해졌습니다. 위 그림 ‘Ship's boat(배에 실은 작은 배)’(1883년)가 대표적입니다. 호머는 이 그림의 습작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망막에 각인된 장면”이라는 섬뜩한 설명을 달았습니다. 이 그림 속 사람들도 결국 목숨을 잃을 운명이라는 뜻이지요.
호머는 말수가 적었습니다. 그의 삶 이야기를 쓰겠다는 사람에게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일기를 남기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도 대부분 태워버렸습니다. 미국 언론은 그를 ‘은둔의 화가’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그림만 그리던 호머는 1910년 9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니 자식이 없었고, 그의 삶에 대해 말해줄 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는지 그 여부조차 모를 정도로 사생활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작품과 몇 안 되는 작품 관련 메모만 남았습니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고들 합니다. 기록은 없어도 작품을 통해 호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가늠해볼 수는 있겠지요. 그가 죽기 1년 전 남긴 마지막으로 남긴 유화 ‘Driftwood(유목)’(1909년)는 좋은 힌트입니다. 그림 속에서는 한 남자가 떠내려온 나무를 주우려 해변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림 속 남자의 행동은 위험할뿐더러 별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죽음을 앞둔 화가 자신,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맞서 싸우는 뱃사람들, 그리고 언젠가는 죽게 되는 모든 인간이 사실 그와 같은 운명입니다.하지만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재난 앞에 선 무력한 존재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유명한 구절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작품을 통해 화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이 그림 ‘After the Hurricane, Bahamas(허리케인 이후, 바하마)’는 처음 보셨던 작품 ‘걸프 스트림’과 같은 1899년 작품입니다. 작가의 설명은 없지만, 일종의 뒷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야속하게도 저 멀리 지나가던 배는 남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결국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 같네요. 곧 정신이 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국 이겨낼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져서 바다 그림을 그린 호머의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어떠셨나요. 시원한 바다 그림들 보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재충전을 잘 해야 다음주도 힘차게 살아나갈 용기가 생겨날 테니까요.
*(참고자료) 이번 기사의 내용은 ‘Winslow Homer: American Passage’(William R. Cross 지음)와 지난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의 도록 ‘Winslow Homer: Crosscurrents’를 참조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2만여명 독자가 선택한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