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고의 기억의 힘] 나의 몰랑몰랑한 여수 사용설명서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일주일간 여수를 다녀왔다.

낯선 곳에서 한 달을 살면 책을 쓰고, 해외에서 몇 년을 살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기에, 짧은 체류에도 여수 사용설명서라는 다소 도발적인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여수에서의 일주일은 우연처럼 다가왔다.

시작은 행정안전부의 '다시 활짝' 재도전 프로젝트이다. 서울의 50플러스 중장년 10명이 여수의 청년 10명과 함께 멘토링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에서는 '세컨드투모로우'가, 여수에서는 '여수와'가 공동 기획하여 중장년과 청년이 서로에게 묻고 대답하면서, 결국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현지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장소에 대한 기억은 사람과 함께하여야 더욱 강렬해진다. 사람이 없고, 장소만 있는 여행은 휘발성이 강하다. 장소와 사람에 대하여 모두 이야기 하려고 한다.
여수의 풍경은 낮과 밤이 다르고, 평일과 주말이 다르다.

일주일 단기 체류자의 설익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여수의 속살을 경험하고 싶으면 평일의 여수를 방문하고, 주말이 오기 전에 여수를 떠나라.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여수 주민들의 삶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주말 여수의 밤바다는 열정과 젊음의 장소이지만, 외지인들의 홍수로 진정한 여수를 즐기기 어렵다.

여수의 보통 사람들

여수의 사람들을 만나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여수의 버스는 서울과는 다르다. 한번 버스를 놓치면 15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30분 이상을 기다리기도 한다. 버스는 엄청나게 많은 정류장을 빠르게 지나간다. 인구 27만의 여수는 지방에서는 큰 도시이지만, 현실적으로 버스가 자주 다니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정류장마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어느 곳인지 알려주기에, 시티투어 버스보다도 더욱 흥미롭다. 문제는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깜박하였을 때이다. 그런데도 걱정은 없다. 버스에 있는 승객들이 다시 그 장소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준다. 당황해하는 외지인에게 같이 있는 어르신들은 “그럴 수 있는 일이야”라는 느긋함으로 다가선다. 단,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님은 항상 바쁘게 승객들이 내리기를 독촉한다.

여수의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인다. 여수에서 묵었던 호텔 1층에 '스콘' 가게가 있었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에서 저녁 6시까지이고, 주말에는 문을 닫는다. 그 집의 스콘은 굽는 시간이 있기에, 갓 구운 스콘과 드립 커피를 마시려면 9시 30분이 되어야 한다. 9시에 오픈하면 바로 스콘을 먹을 수 있는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여수에서, 저녁시간과 주말에 장사하지않는 가게라니! 서울 촌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여수 시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저녁에는 집에 가서 가족과 있어야지” 라고 하면서.

현지인이 많이 오는 식당은 저녁 7시경이면 문을 닫는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은 6시가 넘으면,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외지인이 여수의 생활에 익숙할려면, 그리고 하루 세끼를 모두 먹으려면, 아침 일찍 움직이고, 저녁 식사는 7시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

여수의 새벽 전통시장과 횟집

혹시 당신이 일찍 잠들고, 새벽형 인간이라면 여수의 새벽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여수의 원도심에는 전통시장이 많다. 만약 도심에 숙박지를 정하였으면, 여수 수산물특화시장, 서시장, 수산시장, 중앙선어시장, 교동시장등 5~6개의 전통시장이 모두 (몇 번은 아니고) 몇십번의 발걸음으로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이럴 때는 'Walking distant'라는 영어 표현이 더욱 더 편리하다. 몇 번의 걸음이나 몇십번의 걸음이나 영어로는 같은 뜻이다.

전통시장은 물리적인 입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 밖에도 좌판이 펼쳐져 시장의 초입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디. 하나의 시장이 다른 시장과 연결되어 있고, 골목길 중간에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백반 식당이 있다. 그럴 때면 바쁘게 움직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백반을 먹는 것도 좋다. 여수는 남도음식이지만, 디른 곳에 비하여 간이 진하지 않고 슴슴하다. 여수 가까이에 순천, 광양이라는 도시도 있지만, 음식 맛은 조금씩 다르다.

식사를 주문하면, 7~8가지의 반찬과 국,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양푼이 밥이 나온다. 후식으로도 엄청난 대접크기의 숭늉이 주어진다. 새벽부터 일하는 경매 상인들이 많고, 그들의 아침 허기를 달래주기 위하여 밥 인심은 넉넉하다고 한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식당 사장님은 더욱 일찍 나와야 하기에, 지금 먹는 밥은 또다른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한끼이다. 나에게 '파인다이닝 식당'이란 '먹고나면 졸릴듯한 노곤한 행복감이 계속 밀려오는 식당'이다. 바로 이곳이 파인다이닝 식당이다.

여수를 방문하는 시기에 바람이 많이 불거나 큰 비가 오면, 시내 횟집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배가 안 들어와서 수산물이 없다고 한다. 악천후에도 심지어 태풍이 불어와도, 회를 먹을 수 있는 서울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풍경이다. 단 하나의 예외는, 외지인인 많이 오는 바닷가 낭만포차에서는 언제든지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

예술의 섬 장도, 그리고 웅천 바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물때를 맞추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 '장도'가 있다. 대중 교통으로도 접근이 가능하고, 멋진 카페들이 바닷가에 있다. 평일의 장도는 고즈넉하게 섬을 한바퀴 돌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섬에서 '홍합(지중해 담치)' 바다 양식장도 볼 수 있고, “아~ 이곳에 계속 머물렀으면 좋겠다”라는 느낌이 오는 곳이다.

장도섬의 중간, 약간 높은 곳에는 방문객이 쉬어갈 수 있는 '장도 아트카페'가 있다. 달달한 바닐라 라떼도 마실 수 있고, 시원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잔하면서, 쉬어가기에는 딱 맞다. 시간만 맞으면 주인장이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감상도 할 수 있다. 물론 길손들의 반응이 좋으면, 몇곡의 앵콜 신청도 가능하다.

여담이지만, 터키 이스탄불에서 4년을 사는 동안, 명절이 되면 교민회 주최로 초청행사가 이루어졌다. 당시에 교민회장님의 친한 지인이 대학가요제 출신의 유명한 가수여서, 가수 한 명만 모셔놓고 추석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가수 혼자서 MR반주에 계속 열다섯 곡을 불러서, 참석한 청중도 힘들어하고 노래 부르는 가수도 힘들어 한적이 있다. 그 가수의 마지막 인사말 “한국에서는 3~4곡만 부르고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간다고 하면 되는데, 여기는 해외라서 그런 변명도 통하지 않아서 정말 미안합니다”

장도로 들어가는 초입은 '웅천'이라는 부도심이다. 젊은 부부들이 살고있는 아파트와 식당도 많고, 가족 피크닉도 가능한 곳이다. 바닷가 잔디밭에서 가족과 함께 바비큐를 먹으면서 자연을 만끽하는 것도 좋다. 우리가 상상하는 영화 속 가족의 휴일 풍경과 거의 비슷하다.

장군섬이 보이는 여수 감성 숙박지

여수는 호텔이 많다. 여수 도심에도 있고, 돌산도에도 멋진 호텔이 있다. 도심의 비즈니스호텔을 이용하면 지리적으로 편리한데, 이순신 광장과 전통시장이 가까이에 있어 둘러보기에도 좋다. 바다가 보이는 숙박지를 찾는다면, 해양공원 인근의 벽화마을, 바다 조망이 가능한 산증턱의 펜션에서 하루 묵는 것도 추천한다. 여수는 섬으로 둘러싸여 있고 돌산도와의 사이에 바닷가 마을이 발전하여, 한낮 오후에도 그 풍경은 적막하기만 하다.

장소가 높다는 것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고,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끌고 가야하는 수고로움도 필요하다. 가족을 위하여 독채 펜션을 빌려서, 하루종일 '바다 멍'을 때리는 것도 좋다. 가족끼리 경연대회를 하면서 기술점수와 예술점수로 평가하여, '오늘의 멍때리기 우수자'를 시상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제는 여수를 떠날 시간이다.

일주일간의 짧은 여정이지만, 나의 감성도 조금은 몰랑몰랑해짐을 느낀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최상은 아니었지만, 최선인 순간들은 많았다. 우리는 다시 일상에 익숙하여지겠지만, 5월의 여수로 돌아가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날들이 될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동고 이모작생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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