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3바퀴 이동, 현장방문 70번…'열정맨'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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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과 동시에 TF 106회 개최하며 정책 점검
주말마다 한은·금융위·금감원과 회의해 위기 대응
재정준칙 법제화 추진하며 '재정 정상화' 힘써
기재부 직원들은 처음엔 ‘정치인 장관’의 ‘본인 홍보’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추 부총리는 해당 직원 연락처와 함께 이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한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이름과 사진을 ‘매칭’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항상 사진을 찍는다는 후문이다. 추 부총리가 200여 명에 달하는 기재부 출입 기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하는 것도 이런 ‘셀카’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한참 나이 어린 후배들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기재부 직원들의 반응도 좋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의 첫 경제사령탑이 된 추 부총리에 대한 기재부 직원들의 신망은 매우 두텁다. 2014년 1차관을 마지막으로 기재부를 떠났던 추 부총리는 작년 5월 8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오자마자 조직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정치권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추락했던 기재부의 위상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1년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후엔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당시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해 금융시장 안정화, 금융사 건전성 제고, 가계부채 연착륙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13년 친정인 기재부 1차관으로 복귀해 당시 현오석 부총리를 보좌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당시 핵심 과제였던 규제개혁을 앞장서 주도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와 현안을 두루 처리하면서 관계 부처와의 조율을 잘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국무조정실장을 마지막으로 관료 생활을 끝낸 뒤 그해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다.
국회 내에서도 여야를 떠나 대부분 의원과 두루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군소정당의 청년 정치인들이 존경을 표시하는 의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사석에서 추 부총리를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 보좌진의 설명이다. 이처럼 원만하고 온화한 성품 덕분에 국회 당직자들로부터 ‘추사랑’ ‘추블리’ 등으로 불리며 이른바 ‘팬덤’을 형성할 정도다.
추 부총리는 수행 보좌진으로부터도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 당선 직후부터 보좌진에게 불필요한 의전과 수행 등 잡무를 최소화하라고 주문했다. 직원들의 경조사도 세세히 챙긴다. 추 부총리 내외는 한 보좌진 결혼식에 참석해 혼주에 버금갈 정도로 손님맞이를 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한 젊은 보좌관이 사의를 밝히자 ‘필요한 만큼 쉬고 정리되면 언제든지 다시 복귀하라’고 말해 국회 보좌진과 당직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수행비서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고 한다. 주말에 공식 일정이 있으면 수행비서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몰고 운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전날 늦게까지 대기한 수행비서를 배려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에 택시를 타고 의원실로 온 일화도 국회 내에선 소문이 자자하다. 설과 추석 명절 때마다 사비를 들여 수행비서를 비롯한 보좌진에게 한우세트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23일 취임 후 첫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추 부총리는 “보고서를 만든 과장·사무관도 보고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기재부의 옛 보고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취지였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기재부는 보고서 작성자인 과장급 간부가 부총리에게 직보하는 조직문화를 유지했다. 보고서를 처음 기안한 사무관도 보고 자리에 종종 배석했다. 공직사회의 허리를 맡은 과장급과 함께 실무자인 사무관까지 부총리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엔 실무 간부가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는 광경은 거의 사라졌다. 부총리와 실무진 간 소통도 희미해졌다. 8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추 부총리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도 조직 내 소통문화 회복이었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한 추 부총리의 행보도 쉴 틈이 없었다. 취임과 동시에 경제운용을 비상 대응체계로 전환한 후 비상경제장관회의 26회, 기재부 1차관 주재 비상 경제태스크포스(TF)를 106회 개최하면서 정책 점검에 나섰다. 기재부가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거시·금융정책 당국 간 비공식 간담회(F4 회의)도 신설했다. 추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함께하는 자리다. 이들은 일요일마다 회의하며 경제 현안에 대해 이견을 조율하고,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추 부총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경제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장과 마트 등 현장을 70여 차례 방문했다. 세일즈맨을 자처한 추 부총리는 1년에 70회에 이르는 활발한 경제외교를 벌였다. 1년간 지구 3바퀴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며 국제회의에 참석했고, 출장과 콘퍼런스콜을 틈틈이 활용해 45차례의 양자 면담을 했다. 재정 기조를 ‘건전 재정’으로 전환하고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는 등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재정 정상화를 꾀한 것도 추 부총리의 최고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기재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고질적인 인사 적체 해소에도 적극적이었다. 추 부총리가 취임한 지난해 5월 이후 고위공무원단 17명, 부이사관 18명, 서기관 25명이 잇따라 승진하며 인사 숨통이 그나마 트였다. 이 정도의 승진 인사는 2014~2016년 당시 ‘실세 장관’으로 불렸던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처음이라는 것이 기재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직전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고공단 승진 인사는 11명, 부이사관은 13명이었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기재부 직원들의 투표에서 ‘최고의 상사’로 뽑혔다. 기재부에서 현직 장관이 ‘베스트 상사’로 선정된 건 2015년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7년 만이었다. 앞서 추 부총리는 2005년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일 때도 같은 투표에서 ‘닮고 싶은 상사’로 뽑혔다.
기재부 노조가 주관하는 닮고 싶은 상사 투표는 후배들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평가로 유명하다. 기재부는 베스트 상사를 선정할 때 직원에게 인기가 없는 ‘워스트 상사’도 함께 뽑는다.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을 뿐이다. 추 부총리는 이런 평가가 오히려 부담스럽다며 “직원들이 믿고 잘 따라주는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추 부총리가 과거 카리스마 넘치던 부총리들처럼 굵직한 경제 정책을 내놓고 다른 부처를 휘어잡고 그 방향으로 끌고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처럼 그런 리더십이 통하기 어렵고, 한두 가지 커다란 정책을 통해 경제를 끌고갈 수도 없는 시대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 점에서 추 부총리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안정적인 경제 운영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 부총리는 고물가와 경기 하강, 미국발 은행 불안,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전쟁 등 복잡한 이슈가 얽힌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경제의 방향을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로 되돌리고, 건전재정을 정착시키고, 지난 정부의 ‘징벌적’ 부동산 세제를 정상화한 점 등도 성과로 꼽힌다.
추 부총리가 특유의 친화력과 부드러운 리더십, 안정적인 경제 운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낸 만큼 기재부 내에선 ‘포스트 추경호’ 체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후임 부총리로 누가 오더라도 과연 추 부총리만큼 잘 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내년 4월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3선 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정치권과 관가에선 추 부총리가 올 연말께 내년도 예산안까지 처리한 뒤 부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주말마다 한은·금융위·금감원과 회의해 위기 대응
재정준칙 법제화 추진하며 '재정 정상화' 힘써
지난달 13일 충남 천안 관세인재개발원 운동장에선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춘계 체육대회가 열렸다. 체육대회가 끝나갈 무렵 운동장 한쪽에선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의 사진 촬영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추 부총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재부 공무원과 가족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섰다. 추 부총리는 이들과 일일이 스스럼없이 사진 촬영을 했다. 일부 가족은 추 부총리에게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이런 광경은 체육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추 부총리가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 등장하면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퉈 줄 서서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재부 내 최고의 ‘스타’는 단연 추 부총리라는 것이 기재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추 부총리는 업무 보고를 마친 사무관과도 종종 ‘셀카’를 찍는다.
기재부 직원들은 처음엔 ‘정치인 장관’의 ‘본인 홍보’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추 부총리는 해당 직원 연락처와 함께 이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한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이름과 사진을 ‘매칭’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항상 사진을 찍는다는 후문이다. 추 부총리가 200여 명에 달하는 기재부 출입 기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하는 것도 이런 ‘셀카’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한참 나이 어린 후배들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기재부 직원들의 반응도 좋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의 첫 경제사령탑이 된 추 부총리에 대한 기재부 직원들의 신망은 매우 두텁다. 2014년 1차관을 마지막으로 기재부를 떠났던 추 부총리는 작년 5월 8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오자마자 조직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정치권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추락했던 기재부의 위상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물경제·금융에 두루 밝은 경제전문가
추 부총리는 1960년 7월 2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83년 총무처에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에 들어선 뒤 환경청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1987년 지금 기재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EPB)으로 옮겼다.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해 재정경제원으로 개편되기 전까지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경제기획국 등에서 근무했다. 추 부총리는 통상 재무부(MOF)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뿌리는 EPB다. 재정경제원에서도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 서기관을 지내며 거시경제 정책을 다뤘다. 세계은행(IBRD) 시니어 이코노미스트(1999~2002년)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공사참사관(2006~2009년)으로 근무하면서 국제경제에 관한 전문성을 쌓았다. 2009년에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을 지냈다. EPB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과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을 역임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다.2011년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후엔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당시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해 금융시장 안정화, 금융사 건전성 제고, 가계부채 연착륙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13년 친정인 기재부 1차관으로 복귀해 당시 현오석 부총리를 보좌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당시 핵심 과제였던 규제개혁을 앞장서 주도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와 현안을 두루 처리하면서 관계 부처와의 조율을 잘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국무조정실장을 마지막으로 관료 생활을 끝낸 뒤 그해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다.
국회 보좌진으로부터 추블리 인기 폭발
추 부총리는 국회의원이 된 뒤 기존 지역구 국회의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선된 후 매달 첫째 토요일을 달성군민과의 소통의 날로 정하고 주말마다 한 주도 빠짐없이 달성군으로 내려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구 전체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달성군 9개 읍·면을 누비며 주민들과 소통했다. 기존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에 달성군민들의 호응도 폭발적이었다는 평가다. 초선임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아 전문성을 발휘했다. 김기현 원내대표 체제에선 원내 수석부대표로 20대 대선 승리의 기틀을 닦았다. 대선 기간에 대구시당위원장을 맡아 TK(대구·경북) 민심 결집에 기여했다. 윤석열 후보 캠프 정책조정본부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회 간사 등을 거치며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책 방향 수립을 설계했다.국회 내에서도 여야를 떠나 대부분 의원과 두루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군소정당의 청년 정치인들이 존경을 표시하는 의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사석에서 추 부총리를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 보좌진의 설명이다. 이처럼 원만하고 온화한 성품 덕분에 국회 당직자들로부터 ‘추사랑’ ‘추블리’ 등으로 불리며 이른바 ‘팬덤’을 형성할 정도다.
추 부총리는 수행 보좌진으로부터도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 당선 직후부터 보좌진에게 불필요한 의전과 수행 등 잡무를 최소화하라고 주문했다. 직원들의 경조사도 세세히 챙긴다. 추 부총리 내외는 한 보좌진 결혼식에 참석해 혼주에 버금갈 정도로 손님맞이를 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한 젊은 보좌관이 사의를 밝히자 ‘필요한 만큼 쉬고 정리되면 언제든지 다시 복귀하라’고 말해 국회 보좌진과 당직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수행비서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고 한다. 주말에 공식 일정이 있으면 수행비서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몰고 운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전날 늦게까지 대기한 수행비서를 배려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에 택시를 타고 의원실로 온 일화도 국회 내에선 소문이 자자하다. 설과 추석 명절 때마다 사비를 들여 수행비서를 비롯한 보좌진에게 한우세트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기재부 직원들은 입모아 “최고의 상사”
추 부총리의 진정한 역량은 친정으로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지난해 4월 10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추 부총리를 새 정부의 첫 경제사령탑으로 지명했다. 윤 당선인은 “추 의원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국정 현안에 대한 기획조정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온 분”이라며 “국회에서도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와 원내 수석부대표를 맡아 당의 전략기획과 원내 협상을 주도한 만큼 경제 재도약을 위한 토대를 닦고 의회와의 소통도 원만히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지난해 5월 23일 취임 후 첫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추 부총리는 “보고서를 만든 과장·사무관도 보고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기재부의 옛 보고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취지였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기재부는 보고서 작성자인 과장급 간부가 부총리에게 직보하는 조직문화를 유지했다. 보고서를 처음 기안한 사무관도 보고 자리에 종종 배석했다. 공직사회의 허리를 맡은 과장급과 함께 실무자인 사무관까지 부총리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엔 실무 간부가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는 광경은 거의 사라졌다. 부총리와 실무진 간 소통도 희미해졌다. 8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추 부총리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도 조직 내 소통문화 회복이었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한 추 부총리의 행보도 쉴 틈이 없었다. 취임과 동시에 경제운용을 비상 대응체계로 전환한 후 비상경제장관회의 26회, 기재부 1차관 주재 비상 경제태스크포스(TF)를 106회 개최하면서 정책 점검에 나섰다. 기재부가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거시·금융정책 당국 간 비공식 간담회(F4 회의)도 신설했다. 추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함께하는 자리다. 이들은 일요일마다 회의하며 경제 현안에 대해 이견을 조율하고,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추 부총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경제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장과 마트 등 현장을 70여 차례 방문했다. 세일즈맨을 자처한 추 부총리는 1년에 70회에 이르는 활발한 경제외교를 벌였다. 1년간 지구 3바퀴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며 국제회의에 참석했고, 출장과 콘퍼런스콜을 틈틈이 활용해 45차례의 양자 면담을 했다. 재정 기조를 ‘건전 재정’으로 전환하고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는 등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재정 정상화를 꾀한 것도 추 부총리의 최고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기재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고질적인 인사 적체 해소에도 적극적이었다. 추 부총리가 취임한 지난해 5월 이후 고위공무원단 17명, 부이사관 18명, 서기관 25명이 잇따라 승진하며 인사 숨통이 그나마 트였다. 이 정도의 승진 인사는 2014~2016년 당시 ‘실세 장관’으로 불렸던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처음이라는 것이 기재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직전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고공단 승진 인사는 11명, 부이사관은 13명이었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기재부 직원들의 투표에서 ‘최고의 상사’로 뽑혔다. 기재부에서 현직 장관이 ‘베스트 상사’로 선정된 건 2015년 최경환 전 부총리 이후 7년 만이었다. 앞서 추 부총리는 2005년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일 때도 같은 투표에서 ‘닮고 싶은 상사’로 뽑혔다.
기재부 노조가 주관하는 닮고 싶은 상사 투표는 후배들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평가로 유명하다. 기재부는 베스트 상사를 선정할 때 직원에게 인기가 없는 ‘워스트 상사’도 함께 뽑는다.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을 뿐이다. 추 부총리는 이런 평가가 오히려 부담스럽다며 “직원들이 믿고 잘 따라주는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추 부총리가 과거 카리스마 넘치던 부총리들처럼 굵직한 경제 정책을 내놓고 다른 부처를 휘어잡고 그 방향으로 끌고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처럼 그런 리더십이 통하기 어렵고, 한두 가지 커다란 정책을 통해 경제를 끌고갈 수도 없는 시대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 점에서 추 부총리의 부드러운 리더십과 안정적인 경제 운영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 부총리는 고물가와 경기 하강, 미국발 은행 불안,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전쟁 등 복잡한 이슈가 얽힌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경제의 방향을 ‘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로 되돌리고, 건전재정을 정착시키고, 지난 정부의 ‘징벌적’ 부동산 세제를 정상화한 점 등도 성과로 꼽힌다.
추 부총리가 특유의 친화력과 부드러운 리더십, 안정적인 경제 운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낸 만큼 기재부 내에선 ‘포스트 추경호’ 체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후임 부총리로 누가 오더라도 과연 추 부총리만큼 잘 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내년 4월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3선 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정치권과 관가에선 추 부총리가 올 연말께 내년도 예산안까지 처리한 뒤 부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