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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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5일 장하준 영국 런던대 경제학 교수의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추천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제학을 전문가에게만 맡겨두면 우리의 운명은 신자유주의 같은 지배 이데올리기에 휘둘리게 된다”거나 “1원 1표의 시장 논리 함정에 빠지지 않고 1인 1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등 반시장·반기업적 이데올로기를 설파해서다.

문 전 대통령의 추천사는 주류 경제학 및 경제 전문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여실히 드러낸 9개의 문장으로 이뤄졌다. 지난 정부 5년간 누적된 경제정책 실패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문 전 대통령은 경제를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았다. “경제 관료들에게 굴복해선 안 된다”는 청와대 참모들의 말만 듣고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였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 관료의 반대에도 6·25전쟁 이후 가장 빈번하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 등 주요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정치 추경’을 실시하기도 했다.

2020년 7월에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반대를 누르고 임대차 3법을 시행했다. 바로 전셋값이 급등해 2020년 12.5%, 2021년에 13.1% 올랐고, 이에 따른 역전세난은 올해 하반기 가장 큰 거시경제 불안 요인 중 하나가 됐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경제를 전문가가 아니라 감성에 맡겼을 때 엉망이 된 것을 문 정부 5년간 우리는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다짜고짜 '1원1표' 시장 논리 대신 '1인1표'주의로 가자는 문재인

소주성 실패·집값 폭등 덮어두고…文 "전문가에만 경제 맡겨선 안돼"
문재인 전 대통령(사진)은 추천사에서 “1원 1표의 시장논리 함정에 빠지지 않고 1인 1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깨어있는 주권자가 되기 위해 건강한 경제학 상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1인 1표의 민주주의’와 대비해 ‘1원 1표의 시장논리’를 비판한 건 주주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표현이자 정치적 민중주의를 노골화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재벌개혁, 소득주도성장, 친노조, 탈원전, 재정중독 등의 정책이 모두 이 같은 이념의 소산이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 “재벌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밝힌 이후 기업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데 매달렸다. 처벌 기준도 모호한 일감 몰아주기, 부당 내부거래를 막겠다며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등을 동원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078일간 수감됐다. 그사이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 대만 TSMC와 삼성전자의 격차는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최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주주들의 권리와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권리가 등가될 수 없다”며 “감성에 의해 경제를 바라보면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은 추천사에서 ‘잘 설계된 복지국가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노동 관행에 대한 사람들의 저항을 줄여서 자본주의 경제를 더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책의 한 소절을 인용했다.

인공지능(AI) 등 혁신에서 밀려난 이들을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잘 갖추면 혁신적 기술이 도입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정반대로 움직였다. 2020년 7월 국회를 통해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람들의 저항’이 두려워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노동 관행’을 막은 것이다. 지난 1일 대법원은 타다에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문 전 대통령의 책 추천은 강성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다. 2021년 출간된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난해 10월 문 전 대통령의 소개와 함께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해 25만 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잊혀지듯 조용히 살고 싶다”는 본인의 말과 달리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이 경제 현안 등에까지 미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여당 한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책임은 없고 권력만 행사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본인이 본인 함정에 빠져 신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보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이라며 “자본주의와 시장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말고는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렵고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목/원종환 기자 autonomy@hankyung.com